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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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1919/민음사/송무 옮김)』는 1918년 세계는 한창 전쟁 중일 때 스코틀랜드의 요양기관에서 쓰여지고 이듬해에 발표되어 베스트셀러가 된(317p) 작품으로 비참한 현실의 배경을 담아내지 않은 점이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외딴 섬에서 그려내는 그림과도 겹쳐보인다. 인기를 얻은 덕분에 이에 비해 덜 주목받았던 자전적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도 더 읽힐 수 있었고 이후 인생의 베일등 굵직한 장편들을 비롯하여 단편, 희곡과 에세이까지 다양한 작품활동을 지속한다. 알려졌듯이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동시대를 살았던 고갱의 흔적을 꼼꼼히 추적하고 기록이자 헌사이며 동시에 독립적 예술작품으로서 완성시켰다.

 

 

달과 6펜스2년 전에 읽고 이번에 두 번째 만남이다. 서평을 남기지 않았던 첫 번째 독서를 돌아볼 때 나는 분노한다, 뭐 이런 사람이 다(있나)!”로 주인공 스트릭랜드를 향한 감정적 피로감이(물론 후반으로 갈수록 달라지지만)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 독서는 이미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작은 디테일들이 때론 힌트처럼, 다양한 인간 전형의 확립으로, 복선으로 또는 서글픈 상징과 안쓰러움으로도 다가온다.

솔직히 말해서 찰스 스트릭랜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조금도 발견하지 못했다.(7p)” 첫문장을 스트릭랜드에 대한 첫인상으로 시작해 화자인 의 목소리로 시종일관 특별한 사람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한 분석지 또는 인간 탐구 보고서를 들려준다. “달과 6펜스는 첫 페이지에서 거기에 비하면 찰스 스트릭랜드의 위대성은 진짜였다.(7p)”고 결론을 낸 후 그 위대성과 여타의 항목들을 대비시키기 시작한다. 작품의 약 3분의 2 분량인 42편까지는 화자가 스트릭랜드와 직접 대면하거나 소통하지만 그 이후에 재회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를 알았던 제 3의 인물들의 말에 의지해 스트릭랜드를 그려나간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훌륭한 시민,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 정직한 중개인일 수는 있겠지만, 그에게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34p)” 이 훌륭하고 좋고 정직한 사람인 스트릭랜드가 어느날 당신과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소(51p)’라는 짧은 편지만 남긴 채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돌연 파리로 떠난다. 더 이상 아무런 특징이 없는 사람일 수가 없게 되었다. 아내의 부탁으로 스트릭랜드를 찾은 화자는 곧 자신의 첫 판단이 실수임을 알게 된다. 그의 아내를 위한 대변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양심에 호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나 그를 돌이키지는 못한다. 아내를 떠난 이유 역시 나는 그려야 해요.”,“난 그려야 해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69p)” 라고 반복할 뿐이다.

 

 

끊임없이 상처를 입으면서도 워낙 천성이 착하여 앙심을 품는 법이 없었다. (중략) 그의 인생은 익살극의 소란스런 대사로 가득 찬 비극과 같았다. (93p)”라고 그려진 화가 더크 스트로브는 병으로 혼자 누워있던 스트릭랜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간호하고 돌본다. 그러나 그로인해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주변인들을 피폐하게 만들던 스트릭랜드와의 만남이 끊어진 후 화자는 타히티 섬 여행에서 이미 세상에 없는 그의 흔적을 계속 쫓게 된다. 그리고 천천히 더 드러나는 한 인간의 면모를 조금씩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다.

 

 

달과 6펜스를 읽다보면 익숙한 말의 의미를 다시 들여다보거나 하나의 사건을 입장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 사회적 용인이나 비난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 부지런히 묻게 된다. 스트릭랜드는 일상의 안락에 철저히 무관심하고, 관능적인 사람이면서도 관능적인 일에도 무관심하고(108p) 궁핍이나 질병은 물론 죽음 마저도 중요치 않다. 과거와 미래도 없으며 영원한 현재만을 쫓는다.그는 어휘가 빈약한데다 문장 구성력도 없어, 듣는 사람은 그가 내뱉는 감탄사, 얼굴 표정, 제스처, 상투적인 어구 등을 조합하여 그가 말하려는 바를 짐작해내야 한다.(203p)” 오직 예술만을 향한 기이할 정도의 몰입을 위해, 그림을 향한 재능과 예술혼을 얻는 댓가로 그 밖의 인간적 성향이나 상식적인 대응, 능력을 일부러 기꺼이 맞바꾼 것처럼 스트릭랜드의 결핍 요소를 여러 번에 거쳐 보여준다.그의 진짜 생활은 꿈과 잠시도 쉬지 않는 그림 작업, 이 두 가지로만 이루어져 있었다.(219p)” 이를 위해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단일한 정신(217p)’으로 고착시키지 않았을까. “그대의 모든 행동이 보편적인 법칙에 맞을 수 있도록 행동하라(76p)”는 칸트의 명령이 스트릭랜드에게는 무의미하다.

 

 

스트릭랜드 곁에 있었던 세 여성인 스트릭랜드 부인, 블란치 스트로브, 아타의 사랑은 모두 다른 결을 지니고 다른 결말을 맺는다. 몇 가지 인상적인 에피소드도 있다. 화자의 친구 아브라함과의 만남에서 또 한가지 삶의 전환(75p)” 사례를 볼 수 있다. 스트릭랜드에게 삶의 전환이 단숨에 광포하게 왔듯이 아브라함도 그 순간을 포착하고 수용하지만 그의 학교 동기는아브라함에게는 인격이 없었어.(259p)”라고 단정짓는다. 나아가 사람이 자기 인생을 그렇게 망쳐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259p)” 라는 말에 화자는 생각한다.정말 아브라함이 인생을 망쳐놓고 말았을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기사 작위를 가진 사람에게 내가 어찌 감히 말대꾸를 하겠는가. (260p)” 이 물음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고 전심으로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을까. 수많은 주위의 시선과 답변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현대 작가는 서머싯 몸이다. 이야기를 장식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전개하는 힘 때문에 그를 가장 존경한다."고 조지 오웰이 말했다. 윌리엄 포크너를 읽고 제임스 조이스를 읽다가 서머싯 몸을 읽으니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차오른다. 이렇게 편하게 읽을 수 있다니, 나의 이해력을 비난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어, 매끄럽게 속도를 내며 읽는 기쁨이 얼마만인가 싶어 즐거웠다. 유려한 문장, 핵심 문장을 여기가 핵심이야, 밑줄!’ 알려주는 것처럼 선명한 작가의 목소리, 위트 넘치는 유머, 부글부글한 내 속말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화자까지 친절하기 그지 없는 작품이다. 이러니 인기 있을 수 밖에!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스티븐 디덜러스는 인생의 푯대를 발견한다. 삶의 방향이 확고해지는 순간이다. 살아가면서, 실수하기도 하면서, 추락하기도 하면서, 승리하기도 하면서, 삶에서 삶을 재창조하리라! 어떤 야성적인 천사가, 인간적인 활기와 아름다움을 지닌 천사가, 삶의 아름다운 궁전에서 보낸 사자가 실수와 영광의 모든 길로 통하는 대문을 어느 황홀한 순간 활짝 열어주기 위해 그 앞에 돌연히 나타난 것이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지!(282p 젊은 예술가의 초상/문학동네)” 예술을 향하는 젊은 디덜러스가 확신에 차 막 걸음을 뗄 때, 뒤늦게 삶의 전환을 맞은 또 다른 예술가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갔음을 이해하게 된다. ‘모든 것을 불구하고가 필요하고도 적절한 순간이다.

 

 

책 속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특질로 형성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스러움,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85p)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그저 아무것이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옷도 아름답고, 강아지도 아름답고, 설교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아름다움 자체를 만나게 되면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 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신령한 힘을 어쩌다 한번 체험하고선 그것을 늘 체험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이는 돌팔이 의사처럼, 사람들은 가지 것을 남용함으로써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192p)

-세상엔 진리를 얻으려는 욕망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있잖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진리를 갈구하는 나머지 자기가 선 세계의 기반마저 부숴버리려고 해요. 스트릭랜드가 그런 사람이었지요. 진리 대신 미를 추구했지만요.(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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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zinga 2021-06-0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아요를 표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이런일이 거의 없어서용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