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4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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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의 『고양이와 쥐(1961/문학동네/박경희 옮김)』 는 작가의 잃어버린 고향을 기억하는 단치히 3부작 중 한 권으로 첫 소설 양철북 다음에 출간되었다. 올해가 귄터 그라스가 세상을 떠난 지 육 년, “고양이와 쥐”가 발표된 지 육십 년이 되는 해(194p)라는 말에 조금 더 일찍 귄터 그라스를 접하지 않았고, 못했던 스스로가 아쉽다. 출간 후 환영보다는 비판과 논란에 시달렸다는 “고양이와 쥐”는 1999년 노벨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가 내내 집중했던 주제를 담아낸다. 살만 류슈디의 “홀로코스트를 두고, 독일인이 스스로 선택했던 맹목성에 대해 반 유대주의자라면 결코 쓸 수 없었을 역대 최고의 반나치 걸작들을 쓴 작가”라는 설명(193p)을 앞으로 읽어갈 귄터 그라스를 위해 기억하려 한다.

 

 

“그러나 나, 너의 쥐를 한 마리의 그리고 모든 고양이의 눈에 띄게 했던 나는 이제 써야만 한다. 설사 우리 둘마저 허구라 해도 나는 그래야 할 것이다.(8p)” 자책 같기도 고백 같기도 한 문장이 스스로에게 선고를 내린다. 문제의 발단은 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숨고 싶은 쥐는 내내 등장하고 발톱을 드러낸 고양이 앞에 때로 속수무책으로 움츠리고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압도하기도 하고, 혹은 무심한 척 기다린다. 말케의 울대뼈, 후두는 눈에 띄는 공격 대상이었고, 단지 그 이유로 무리는 태연히 자신들의 행동을 은연중에 정당화한다. 의도치 않은 시선집중을 피하고자 말케는 특별한 의미로 포장한 물건들을 치렁거리며 걸어보고 가려본다.

 

 

“수영을 할 줄 알기 전에, 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따금 호명되면 대체로 정답을 말하며, 요아힘 말케라 불렸을 뿐. (중략) 그 무렵 큰 사건들이 세계를 뒤흔들었으나 말케의 시간은 자유롭게 수영하기 이전과 자유롭게 수영하게 된 이후로 나뉘었다.(36p)” ‘아무것도 아니었던 소년’이 ‘매우 특별한 말케(32p)’가 되어 모순된 의미를 지닌 갈채를 받기도 하다가 ‘위대한 말케’가 되기까지의 팽팽한 시간을 기록자인 필렌츠의 목소리로 듣게 된다. “실제 마주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는, 두려움이 깃들고 물기어린 눈(53p)”을 가진 말케의 적극적인 대응과 소리 없는 견딤은 마지막 장을 덮고 회상하는 이 시간 더 아프게 다가온다.

 

 

경외의 대상이었던 말케는 “부풀어오르는 소음의 한가운데서 경탄은 뒤집혔다. 우리는 그가 혐오스러웠고 그를 외면했다.(81p)” 더 이상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학교 졸업생이자 해군 대위의 훈장 분실 사건과 말케의 대응, ‘전대 미문의 사건’이라며 내린 학교의 퇴학 조치, 어느날 다시 나타난 그는 조금 달라져 있다. 보지 못하는 동안에도 결코 잊히지 않았던 그에 대해 “무엇보다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잿빛이든, 검정이든, 얼룩무늬든 고양이만 보면 내 눈앞에는 쥐가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나는 계속 머뭇거리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작은 쥐를 보호해야 할지, 고양이들을 부추겨 사냥하도록 해야 할지.(134p)”라고 회상하며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말케를 쫒던 필렌츠는 선망과 질시 사이에서 감정의 극단을 오가다 말케의 소망이었던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서의 멋진 강연이 좌절되는 것을 지켜본다. 대신 한 사람의 관객 앞에서 들려주는 강연은 먹먹한 울림을 준다. “그러나 가장 큰 고요를 만들어낸 것은 너 요하임 말케였다. 내가 내는 소음에도 답할 줄 모르던.(180p)” 이어지는 ‘그러니까’, 하지만 ‘그러니까’가 백 번 이상 반복되어도 회복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간적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부터 패전한 1945년 무렵까지라는 특수성을 배제한다면 소년들의 성장소설로도 읽힐 것이다. 내내 연상되는 작품이 존 놀스의 “분리된 평화”나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이었듯이 소년들, 특히 주인공 말케와 서술자 필렌츠의 역학관계에 이끌렸다. 동시에 중반 부터는 본격적으로 예상하는 결말이 다가오겠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다만 그 결말이 너무 참담하지 않기를 바랬다. 건조하고 사실적인 문장, 때론 시같고, 노래같은 반복이 인상깊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자 애도의 서로써 말케 뿐만 아니라 광기어린 시대와 후에는 웃어넘길 지언정 아슬아슬한 통과의례로써의 찬란함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유년의 시기를 엿볼 수 있었다. 필렌츠는 말케의 심중을 예상해 “너는 생각했을 것이다. (중략) 어서 이 겨울이 지나갔으면. 나는 다시 잠수해서 물속에 머물고 싶다.(70p)”고 말한다. 물 속으로, 물 속으로 인간의 조건을 벗어난 공간만을 자신의 기지로 삼아야 했던 소년의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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