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08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이상룡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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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열린책들/이상룡 옮김)』은 5대 소설 중에서 악령을 쓴 지 5년 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쓰기 5년 전, 작가적 역량이 거의 정점에 있을 때 완성한 작품이다.(987p) 러시아 문학가의 양대 산맥 중 한 축이자,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보여주었던 지적인 경지는 미성년또한 특별한 기대로 책장을 넘기게끔 이끈다. 그러나 읽을수록 탄력을 받으며 몰입하기 보다는 내가 뭘 잘못 읽고 있는 걸까스스로를 의심하며 석연치 않은 심정으로 무한 기다림의 챗바퀴를 돌리는 기분이 든다. 후반에 실린 작품 평론에서 역자도 단일한 의미를 담아낼 한 문단 안에서 조차 흐름이 각각인 지향점이 있다, 서술이 통일적이지 않다, 묘사가 명료하지 않다등 지적하며 이 작품은 다른 4대 장편들에 비해서 작가의 고유한 주제 의식이 제대로 형상화 되지 않았다는 문학적 평가를 받아왔다(993p)”고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은 매끄럽지 않아 보이는 모든 구성요소가 그 자체로 꼭 필요한 작가의 의도적 장치, 작품의 목표, 존재 의의임을 이해하게 한다.

 

첫 문장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내용의 글을 꼭 써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더 이상 가슴에 담아 두고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내가 처음으로 인생이라는 무대에 들어설 무렵에 관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록해 두기 위하여 이 글을 쓴다.(상권, 11p)” 이것이 작품의 중심이다. 물론 덧붙임은 계속된다. ‘이제 100살이 되더라도 더 안쓸 것이다, 상세히 내면을 기록하려고 썼다, 기교를 부리지 않고 수식없이 쓰겠다, 작가가 될 생각은 없다, 이런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계속 한다는 것! 무려 1000페이지를 채운다는 것,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미성년 주인공 아르까지 마까르비치 돌고루끼가 1인칭 서술자로 자신이 경험한 시간을 기록하는 성장 일지, 성장 수기다. 작품의 첫 문장 만큼 313장 결말 중 3, 마지막 네 페이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의 목소리임을 누구라도 알아챌 만하게 해설 격의 총정리를 해준다. 톨스토이의 자전적 3부작과의 비교는 물론 작품의 의의와 예상가능한 미래의 쓰임에 대해서까지 마무리를 한다. 시작과 끝은 정연하고도 분명하다. 문제는 그 사이다. 이 사이는 굵은 거미줄과 같으니 그 중에서 자신에게 더 의미있는 가닥을 선택해 줄을 따라가며 숙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제법 간단해질지도 모른다.

 

아르까지 마까르비치 돌고루끼는 지주이자 귀족 미망인인 베르실로프(안드레이 뻬뜨로비치)의 서자로 태어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베르실로프는 전처의 자녀와의 관계 이외에 실질적 가정을 아르까지와 리자의 어머니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꾸린 상태이지만 여행과 방랑의 이유로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아내를 빼앗긴 또는 인류애적 차원에서 내어준 마까르 이바노비치 돌고루끼는 베르실로프의 하인이지만 아르까지 4인 가족의 마음의 지주이자 영적 순례자로 자리매김하고 임종에 이르기까지 정신적 유산을 물려준다. 본인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독특한 처지로 세상에 던져진아르까지는 자의식이 생긴 이후 자기만의 사고와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부모 특히 친부인 베르실로프를 향한 분노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하지만 민감한 영혼인 아르까지는 베르실로프를 점차 동경하고 양가감정의 혼란 속에 조금씩 마음을 연다.

 

 

성년이 아닌 나이, 민법상 만 19세 미만미성년의 사전적 정의다. 부당함에 처한 소년의 성장기로 읽히다 어느 순간 베르실로프와의 대화중 솔직한 고백에 이르면 초첨은 아버지에게로 이동한다. 성인인 베르실로프 또한 불안정한 미성년임이 전면에 드러나기 때문인데 미성년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네 싶어진다. 정말로 마치 내가 둘로 갈라지는 듯해요.(881p)” 베르실로프의 미성숙함은 점진적이고 구체적으로 확대되어 다급하게 쫓기던 분신의 골랴드낀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속 섬망에 시달리며 악마와 대화를 이어가던 이반을 연상케한다. 미성년이라는 호칭은 더 이상 신체적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분열과 부조화, 방랑과 불안, 통제불능의 의지를 상징하며, 반면 통합과 조화, 내적 안정으로의 회귀와 신뢰, 배려는 닿고자 목표하는 극단에 존재한다.

 

그 외 각 인물이 간직한 서사도 다양해서 앞서 말했듯이 거미줄 한 가닥씩을 따로 살펴봄직 하다. 작품 전체에서 인물과 관계를 안정적으로 통찰하고 있는 따찌아나 빠블로브나 여지주는 바보, 이 멍청이야, 광대 같은 녀석······’ 등 아르까지를 향한 답답함을 거친 말로 내뱉으며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때가 되지 않으면 모르는 법, 어쩌면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겠다. 옆에서 숨어 엿듣게 되는 연극적 장면들, 작가의 경험이 묻어난 듯 한 도박 장면, 예언과도 같은 꿈, 옷 안쪽으로 실로 꿰멘 편지와 집착하는 무리들, 카라마조프 부자가 글루셴카를 동시에 사랑하듯 까쩨리나 니꼴라예브나를 향한 베르실로프와 아르까지의 사랑, 아르까지의 어머니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돌고루까야의 삶 뿐만 아니라 느닷없이 뛰어드는 문장들과 에피소드와 인용 작품들 등 살필 것은 무궁무진하다.

 

 

도스토옙스키적 문장이 어떠하리라 짐작했음에도 쉼없는 장광설은 마음을 다잡게 한다. 사건을 전개시키다 직전 또는 직후의 예기치 못한 상황이 기존의 진행 궤도를 바꾸는데 그 사이에 들어갈 퍼즐은 매번 새로운 우연, 새로운 사실이다. 이는 도로의 차선에 서둘러 합류하듯이 겹쳐 들어오곤 한다. 혼돈 상태에서 방향을 잃고 천방지축 사방으로 달리는 인물 아르까지와 함께 달리느라 숨이 찬 시간이었다. 동시에 천방지축도 때가 있다, 늙어서까지, 시간이 많이 지나버린 후에까지 미성년으로 고착되어버린 많은 사람들, 자신의 미숙함은 모른 채 타인을 지적하고 교정하겠다 발벗는 많은 사람들도 떠올라 씁쓸하다. (애쓰는 모두가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정신없음 가운데 내내 불평하며 읽어나가는 독자를 묵묵히 내버려두는 작가의 의도도 조금은 이해된다. 아마 그래서 5대 소설일 것이다. 괄호로 묶는 조건으로,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이 밝았다.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계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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