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5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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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악령』(열린책들/박혜경옮김/1872)은 작가의 주제의식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작품이다. 5대 소설로는 죄와 벌, 백치 다음 작품이며 10여년 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2부를 시작하지 못하고 미완으로 마무리된다. 악령은 악의 순수한 비극(하권 481p)“을 그리는데 인상깊은 에피그라프(누가복음 8, 악령 들린 돼지떼 예화)로 장대한 이야기는 요약될 수 있다. 병든 러시아, 즉 악령으로 고통받는 자와 악령에 홀려 바다로 뛰어드는 돼지떼가 파멸 이후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상징한다.(하권 452p)

 

 

사로잡힌 자를 누가 돌이킬 수 있을까, 가장 가능성 있는 사람이 찌혼 신부이겠지만 그의 노력 또한 헛되어 사로잡힌 자는 사라지는 것 이외에 또 다른 방법이 없을지 묻게 된다. "실제로 『악령』의 형이상학적 행위 속 주인공은 악에 유혹받은 선이 아니라, 악 그 자체이며, 그것의 비극성은 스따브로긴의 형상 속에서 상징화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악령』은 선의 비극을 목표로 하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는 직접적으로 대비된다. (하권 477p)"는 작품 평론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는다.

 

 

바르바라 뻬뜨로브나에게 중요한 두 인물은 외아들인 니꼴라이 프세볼로도비치 스따브로긴과 아들의 가정교사이자 20년 이상을 후원하고 있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끼 선생이다. 스물 다섯 살 정도의 매우 아름다운 청년으로 처음 등장하는 스따브로긴은 농노 해방 이후 어려워진 여건 속에서도 아들의 지원에 마음을 다하는 어머니에게 새로운 근심을 안긴다. 방탕 행각에 대한 소문 뿐 아니라 몇몇 엽기적인 행동으로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하지만 망상장애를 이유로 사건은 지나간다. 작가를 대변하는 화자는 스쩨빤 선생의 벗으로 나와 전달자이자 기록자 역할을 한다.

 

 

원래 주인공인 베르호벤스끼 부자와 5인조를 제치고 새로운 주인공으로써 인간 전형의 한 획을 그은 스따브로긴이니 만큼 도스토예스끼가 얼마나 혼신을 쏟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스따브로긴이 전면에 나서 이야기를 끌고 가지는 않는다. 빗겨 있으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주동하는 인물로 내적 특징과 외적인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 권위를 보장받는다. 작가는 스따브로긴과 분신적 관계인 세 인물, 뾰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끼, 이반 샤또프, 끼릴로프를 통해 철학적 논제를 던진다.

 

 

끼릴로프는 자신의 생각을 전개한다. 현재의 인간은 아직 진정한 인간이 아닙니다. 행복하고 당당한 새로운 인간이 나타날 것입니다. 살아 있건, 살아 있지 않건 상관없는 인간, 그들이 새로운 인간이 될 것입니다. 고통과 공포를 이겨 내는 인간, 그가 스스로 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중략) 신은 죽음의 공포가 야기하는 고통입니다. 고통과 공포를 이겨 내는 인간, 그가 스스로 신이 될 것입니다. 그때 새로운 삶이, 새로운 인간이, 새로운 모든 것이 생겨날 것입니다.(상권,181p)" 신이 없다면 내가 신이고 나의 의지 즉 자의지를 확신하고 선언하고 표명하는 일련의 행동(하권 265p)은 당연하며, 최고의 자유를 원한다면 감히 자신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표함으로 뾰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끼에게 자진해서 이용당한다.

 

 

샤또프는 단 하나의 민족만이 진정한 신을 가질 수 있고 신의 잉태자인 유일한 민족은 러시아 국민이라는, 러시아에서 새로운 강림이 이루어지리라는 슬라브주의를 스따브로긴으로부터 받아들인다. 자신은 한낱 재능 없는, 불행하고 지루한 책일 뿐이라고 고백하며(중권 80p) 자신의 과거 사상을 불러일으켜 불쾌하다는 그에게 바로 그런 스따브로긴을 2년간 기다려왔으며 자신은 벌거숭이가 되고 희화화 되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스따브로긴과 이야기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스따브로긴이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지.(84p)"라고 속내를 드러낸다. 뾰뜨르 스쩨빠노비치의 표현대로 스타브로긴이 태양이자 신과 같은 존재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쩨판 선생의 아들 뾰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끼는 다른 사람에 대해 이렇다고 제멋대로 단정 지어 놓고는 그걸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중권 253)”이다. 그는 거침없고 영악한 특유의 행보로 신임 현지사와 그의 아내를 불행에 빠뜨린다. 또한 그는 5인조를 구축하고 밑바닥부터 뒤집어지는 혼돈을 야기하기 위해 평등을 목표로 삼는다. 교육과 학문, 재능의 수준을 낮추고 복종이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 그는 스따브로긴을 아무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할 아름다움이자 무섭고도 매력적인 귀족이기에 자신에게 꼭 필요하다며 자네는 지휘자이고, 자네는 태양이며, 나는 자네의 벌레에 불과하네(중략) 자네가 없으면 나는 제로에 불과해. 자네가 없으면 나는 파리이고, 병 속에 든 사상이고, 아메리카 없는 콜럼버스라네(중권 344)”라고 서슴없이 고한다. 자격지심과 열등의식을 교묘히 감추고 은밀히 복수하면서.

 

 

뾰뜨르 스쩨빠노비치와 스따브로긴에게서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스메르쟈코프와 이반의 구도 또한 엿보인다. 뾰뜨르 스쩨빠노비치는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사악하고 야비하고 뻔뻔스러우며 무섭고 얄미워- 두 번의 식사 장면에서는 먹고 있는 음식을 확 빼앗아버리고 싶어진다- 신경이 찌르르해질 정도다. 악의 편에 있어서 일당 백의 인물이며 그가 바라는 사회 저변으로부터의 혼란과 전복은 어쩌면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는다.

 

 

사회는 그때고 지금이고, 그곳이고 이곳이고 (혼란을 목표삼지 않더라도) 충분히 혼란스럽고, 내가 아닌 대다수의 타자에게 노골적인 악의를 분명히 드러낸다. ?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또는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까 등의 답을 하면서. 불명확한 대의를 향해, 뾰뜨르 스쩨빠노비치로부터 전달받은 강령들을 수용하는 5인조 구성원은 눈가림당한 채 도구로 전락하고 서로를 의심하고 두려움에 갇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발을 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사람들이 비단 그들 뿐일까, 스스로를 의심하면서도 맹목적인 공격을 멈추지 않는 일들이 비단 그때만 있었을까.

 

 

스따브로긴에게 사로잡힌 여성들 또한 불행해진다. 아름답고 자존심 강했던 리자베따 니꼴라예브나(리자), 어떤 형태로건 곁에 남아 있기만을 바라고 확신했던 다샤나 그를 왕자님이라 부르던 절름발이 백치인 마리야 찌모페예브나 레뱟끼나도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왕자님은 참칭자였다. 부록 찌혼의 암자에서가 제외되었다면 결코 온전히 스따브로긴에게 다가갈 수 없었을 것이다. 가리워져 있던 스따브로긴의 진면목을 알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장이다.

 

 

스따브로긴은 명료한 이성으로 몰아 붙혀 막다른 순간까지 의식하기를 원한다. 초인이자 인신이 되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증명으로서의 삶, 즉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멈추지 않거나 때론 멈추거나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한 스스로의 능력 확인하기 등의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태도를 견지하는 것과 인간의 삶을 사는 것은 다르다. 그는 태도를 견지하다 보니 사는 법을 잃어버리고 되찾지 못한 채 선택의 여지 없이 내몰렸다는 생각이 든다.

 

 

임종을 앞둔 스쩨판 선생이 소피야에게 낭독을 부탁했던 요한의 묵시록 말씀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하권324p)- 또한 의미심장하다. 일종의 불능상태로 힘으로도 능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4)’, 회복 불가능한 삶을 뒤로한 채 납빛 가면을 쓰고 죽는 배우, 삶과 연기의 경계를 잃어버린 무대 위의 배우를 연상시킨다. 구원은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절대적 아름다움으로 상징되는 스따브로긴은 그림 같은 미남이었지만, 동시에 왠지 혐오스러워 보인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이 가면처럼 보인다고 말했다.(상권 68p)"는 표현처럼 가면안에 감각을 잃고 갇혔을 수도 있겠다.

 

 

처음 악령을 읽었을 때의 감상이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잊을 수 없는 이름, 스따브로긴하며 찬탄했었고 왜 나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나, 나도 자유로운 영혼으로 멋지게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억울하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에 있는 스따브로긴이 충격이었을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무신론 반대의도와는 다르게 악령을 그의 작품들 중 최고작으로 꼽는 또 다른 독자도 책을 읽은 후 자신의 신앙을 버렸다는 글을 읽고 파급력을 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스따브로긴을 다시 만날 생각에 설레었지만 다시 만난 그는 다른 인물이었고 나 또한 그때와 달라졌을 것이다. 바로 이전에 읽은 백치보다 한층 거칠게 질주하는 느낌으로 다가왔으며 어떤 희망적 여지도 거두어가는 어두운 심연을 공고히 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 나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향한 또 한 걸음의 준비라는 의미로서 기념비적일 것이다.

책 속에서>

문제들 중에는 똑똑하게 말해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관해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똑똑하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상권296p)

그런데 의심할 바 없는 진짜 슬픔은 보기 드물 정도로 경박한 사람조차 가끔은 아주 잠깐이나마 견고하고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진정한 진짜 슬픔으로 인해 바보들도 물론 잠시이긴 하지만 영리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슬픔의 속성이다.

(상권318p)

삐에르, 너는 나한테 다르게 말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니, 얘야?(상권319p)

큰길, 이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도 긴 어떤 것으로, 인간의 삶이나 인간의 꿈과 같은 것이다. 큰길에는 관념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역마권에는 무슨 관념이 있는가? 역마권에는 관념의 종말이 내포되어 있다······(큰길 만세)! 그다음 일은 신의 소관이다.(하권2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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