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스토예프스키 마지막 작품이 된, 채 완성하지 못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의 여정은 1846년 발표한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19세기에서 저자는 문학사에 기록될만한 데뷔작이라며 한 장면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네크라소프와 벨린스키가 한밤중에 무명의 작가 지망생인 도스토예프스키를 찾아와서는 자네가 도대체 무슨 작품을 썼는지 알고나 있나?’하고 감격해 서로 껴안고 했답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두고두고 회상하는 장면입니다.(러시아문학강의193p)" 마치 영화처럼 극적인 출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급관리 제부쉬낀과 먼 친척뻘 소녀 바르바라가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서간체 소설이다. 제부쉬끼은 고아와 다름없는 바르바라에게 아버지 역할을 자처하며 보호자로서 애정과 관심을 전하고, 외적인 조건이나 정신적 부조화에도 불구하고 서로 보듬고 의지한다. 편지는 두 주인공은 물론 주변 인물과 사건에 대한 단상도 전하지만 그들 또한 가난에서 빗겨있지 않고, 여유있는 자는 오히려 가난한 그들에게서 이기적이고 냉혹한 착취를 숨기지 않는다.

 

제부쉬낀은 가난한 사람들은 까다로운 법이죠. 선천적으로 그래요.(129p)"라고 말문을 열며 가난한 사람 론()’을 펼친다.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곁눈질로 쳐다보며, 전전긍긍 신경쓰고, 타인의 속마음까지 듣게 된다는 말을 하며 분노를 내비친다. 감정의 상태를 현실에 구체화 한 부분, 다분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장면이 서류 실수로 지적을 받던 순간의 떨어진 단추이야기다. 당황스런 심정의 생생한 묘사가 처음 읽었던 학생때부터 오랫동안 도스토예프스키를 생각할 때마다 아이콘처럼 떠오르곤 했다. 그놈의 책, , ! 도대체 책이 뭡니까? 책은 밑도 끝도 없는 헛소리를 늘어놓은 것에 불과합니다!(133p)" 단언하고 급기야 셰익스피어도 다 엉터리라고 결론내린다.

 

반면 바르바라의 어린시절 수기는 독자를 그녀에게 더 가까이로 이끈다. 나는 책의 무게로 인해 금방이라도 꺽어질 듯 휘어 있는 커다란 선반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화가 났고 슬펐다. 어떤 광기 같은 것이 나를 엄습해 왔다. 나는 그의 책을 마지막 한 권까지 전부 다 읽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꼭 그렇게 하고 말리라며 그 자리에서 마음을 먹었다. 나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나는 그가 아는 것을 나도 다 알아야 그와 우정을 나눌 자격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57p)" 그리고 그녀는 달라진다. 뽀끄로프스끼는 내게 책을 자주 가져다 주었다. 처음 나는 잠이 들지 않기 위해서 책을 읽었고, 시간이 좀 지나자 진지하게, 그리고 나중엔 책 속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내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64p)" 책이 세상 전체가 되어 압도하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그녀도 알게 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결국 가여운 사람들이 되어간다. 겁에 질려 어머니의 품에 파고들며 목 놓아 울었다. 마치 이 세상에 남은 나의 마지막 친구를 그렇게라도 꼭 붙잡아서 죽음에게 내주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죽음은 그때 이미 내 가여운 어머니의 머리맡에 와 있었다!(78p)" 의지나 소망과는 전혀 상관없이 지키고 싶은 것들을 가차없이 빼앗아 간다. 무죄를 판정받은 하숙집의 꼬르쉬꼬프가 꿈이 현실이 된 순간 죽음을 맞듯이, 제부쉬낀은 바르바라를, 바르바라는 처음에는 뽀끄로프스끼와 어머니를, 후에는 원하는 삶의 가치를 빼앗긴 채 내몰린다. 물리적 가난마음이 아플 만큼 안되고 처연하다를 의미하는 가여움에 이르고 희망의 단서조차 발견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이렇게 갑자기, 바로 이게 마지막 편지라니오!(219p)" 수많은 갑작스런 마지막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제부쉬낀의 한탄이 더 애달프게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