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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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너무도 유명한 작품 전쟁과 평화를 이제야 비로소 완역으로 읽었다.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이 특별한 역사소설이자 전쟁소설에 바쳤던 많은 분석과 찬사를 역자의 세심한 해설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곤차로프의 살아 있는 거장이 쓴 러시아판 일리아드입니다.(4581p)”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작품인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러시아다.(4583p)”라고 했던 투르게네프의 글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4권의 에필로그 제 2부는 작가의 집필기간동안 참고 자료들로 완전한 하나의 도서관을 이루었다(4544p)고 술회한것에 걸맞게 본격적인 전쟁관, 역사관, 민족관 등을 집대성한다. 전쟁이라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사고와 행동, 변화와 성장, 후회와 깨달음, 관계와 선택의 문제 등이 세밀하게 그려진다. 이야기의 끝을 향해 가며 시간이 흐른 것처럼 인생의 굴곡은 한 인간을 저마다의 결을 갖춘 채 형상화 한다.

 

나이와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같은 사회에 살고 있는 페테르부르크 상류사회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모여들었다.(122p)” 안나 파블로브나의 화려한 객실에서 장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안드레이 공작은 왜 전쟁에 나가려 하느냐는 질문에 지금 여기서 보내고 있는 나의 삶이, 내 삶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55p)이라고 답한다. 행동의 동기, 선택의 원인은 모두 다르고 각자의 마음 속 목적을 간직한 채 거대한 수레바퀴를 돌리는데 부지불식간에 참여한다. 선두에 서서 역사의 궤도를 조정하는 인물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 사이를 촘촘하고 빼곡하게 메꾸고 있는 개인적이고 민감한 에피소드들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또 다른 공기를 호흡하게 함으로 길고 긴 시간이 마치 꿈처럼 흘러감을 느끼게 된다.

 

혹시라도 바보짓을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자기를 지도해주는 사람들의 의지(1158p)”에 맡기겠다 결심하고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시선을 쫓던 피예르는 베주호프 백작이 된 후에도 반복해서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추구할 대상을 찾느라 신경을 곤두세운다. 첫 번째 결혼 또한 분위기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실현될 것이라는 강박적인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대체 언제 시작되고, 언제 이렇게 됐단 말인가?(1409p)” 이 결혼은 오래 그를 괴롭힌다. 정확한 마음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때, 들었을지라도 외면했을 때 아무리 스스로 합리화 할 지라도 그만큼 오래 댓가를 치르게 된다. 나를 돌아볼때도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 이랬더라면······이런류의 자문은 얼마나 자주 되풀이되는지 계속 멈추게 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삐예르가 훗날 포로 생활 중에 만난 플라톤 카라타예프는 추구하고 따를 최고의 선으로서 남게 되고 독자에게 상징하는 바 역시 크다.

 

전쟁 한복판은 때로 슬로모션 정밀묘사가 초단위로 모든 순간을 읽어낼 것 같아진다. 아군과 적군으로서의 집단적 대결 국면과 그 안에 개별적 인간들이라는 원소는 삶과 죽음을 따로 취하고 홀로 부조리 앞에 드러난 채 당혹감을 느낀다. 호두를 흩뿌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마자 바로 곁 병사가 쓰러지고 들것에 실려나가는 찰라들, 전쟁이 현실인 한 니콜라이 로스토프의 눈에 들어온 도나우강과 하늘과 태양의 아름다움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멀리 도나우 강 뒤쪽에 푸르게 보이는 산들, 수녀원, 신비로운 골짜기, 우듬지까지 안개가 낀 소나무 숲은 더한층 훌륭했다······저곳은 고요하고 행복에 가득차 있다······‘내가 저기에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중략) 그런데 여기에는······(중략) 아아, 바로 저것이, 저것이, 지금 내 머리 위와 내 주위에 있는 저것이, 그렇다, 죽음이다······눈 깜짝하는 순간에 나는 저 태양도, 저 강물도, 저 골짜기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1290p)” 처음 죽음에 근접할 때 감정은 반복해서 그려지고 독자 또한 위태로운 가운데에서 묻기 시작한다.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꺼내들게 된다. 안드레이 공작은 마음을 정한다. 그러나 만약 죽음밖에 다른 길이 없다면? (중략) 글쎄,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죽음을 맞으리라.(1321p)” 그 다운 각오다. 그는 처음 죽음에 직면한 전장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다 부질없다는 것과,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대단히 중요한 무언가가 확실히 위대하다는 것뿐이다.!(1564p)“ 라는 결론을 얻고 이 깨달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겪을 일들을 통해 가장 완결에 가까운 볼콘스키 사고의 성숙으로까지 나아간다.

 

4, 15361, 에필로그 228장의 장면과 55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니 상상을 넘어선다. 완전한 단편의 형식을 갖추는 각각의 장은 완벽히 연결되어 거대한 장편소설을 완성한다(4583p)는 해설에 백배 공감한다. 책장을 넘기고 다음 권으로 들어간 후에도 계속 어떤 장면의 인상은 뚜렷하게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안드레이 공작과 투신의 장면, 꾸투조프의 뚝심, 군을 시계의 장치에 비유하거나(1497p) 데니소프와 로스토프의 지갑 에피소드(1249p), 인생을 지탱하는 너무도 중요하지만 헛돌기만 하는 한 개의 나사 앞 인간의 무력감을 절감하는 삐예르(2112p), 로스토프가의 겨울 숲 속 꿈만 같았던 늑대사냥 장면(1386p), 공작영애 마리야와 노공작의 죽음(3217p), ‘공공의 복지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라스톱친 백작의 잔혹함(3517p), 꾸투조프가 한 말들(4289p) 등 끝이 없다.

 

전쟁은 계속 진행중이고 틈틈이 작가의 목소리 또한 이해하기 쉬운 어조로 드러난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도 개인은 자신의 실리를 분명히 하고, 피할 길을 내고, 모함하거나 모른척하거나 덮어씌운다. 이 모두를 꿰뚫어보지만 대응하지 않는다는 선택으로 일관하거나 기꺼이 일정량의 수모를 감당하는 인물도 있다. 일종의 식후 기분(352p)에 너무 오래 빠지는 인물도 있다. 전쟁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 대입하더라도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닮아있고, 다양하게 맺는 관계들이나 관계 지속을 위한 조건 감수, 스치는 듯 짧은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짙은 감동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생활하지만, 역사적이고 전인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무의식적인 도구 역할을 한다. 일단 실행된 행위는 돌이키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이의 무수한 행위와 합쳐지며 역사적 의미를 띠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단계의 높은 곳에 설수록,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수록 다른 사람에 대해 더 큰 권력을 갖게 되고, 또 개개 행동의 숙명과 필연성이 더 명백해진다.(317p)”

 

물론 그들은 나타샤 속에서 빛나고 있는 보물을 털끝만큼도 이해 못하지만, 시적이고도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돋보이게 하는 실로 완벽한 배경이 되는 사람들이다!(2333p)” “그러나 이런 흥과 몸놀림은 모방할 수도 배울 수도 없는 러시아적인 것이며, 아저씨도 그것을 그녀에게 기대하고 있었다.(2424p)” 안드레이 공작에게 없는 특별한 세계, 희열이 넘치는 세계, 별세계(2333p)를 간직하고 있는 나타샤는 쾌활함으로 반짝일 뿐 아니라 현명한 딸이기도 하기에 니콜라이와 백작부인의 소냐로 인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도, 백작부인의 생명 절반을 앗아갔다고 표현한 슬픔을 위로하기도 한다. 의도치 않게 약혼을 파기하고 자신과 안드레이 공작에게 상처를 주지만 운명의 수레바퀴에 감사해야 하나, 공작의 마지막을 지키며 온전한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녀가 소냐와 공작영애 마리야와 안드레이 공작과 베주호프 백작 등과 맺는 관계는 사려깊기도 진심을 다하기도 해서 아름답다. 불편한 인물로는 소냐도 꼽을 수 있다. 희생을 강요당한 적도 없고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면서도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나타샤가 부럽다고 고백하는 소냐(452p). 그녀는 어릴때부터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지만 이 또한 받아들인다. 오래전 기억으로는 니콜라이의 변심을 탓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에 소냐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나타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4404p)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없는 사람, 어쩌면 이기심이 없는 사람, 딸기와 같은 헛꽃, 마치 고양이처럼 사람이 아니라 집에 애착을 가지는 그녀의 특성들에 대해서.

 

수많은 죽음과 그를 감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선 아들과 딸, 마냥 사랑스런 어린 막내아들의 죽음을 맞는 어머니, 바실리 공작의 두 자녀는 악을 끼치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죽음을 맞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죽음이라면 단연 볼콘스키 공작의 죽음일 것이다. 생각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신비로움까지 느껴지는 그러나 결코 감상적이지 만은 않은 바로 그 다운 죽음이다. 그는 빗장을 걸어 닫기 위해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간다. 문을 제때 닫느냐 못 닫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4102p)“ 그가 꿈 속에서 바깥쪽에서 밀어대는 문을 닫으려 애쓰나 결국 막지 못해 들어오고 만 죽음“. 그날부터 안드레이 공작은 잠에서 깨어나는 동시에 삶에서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온 시간에 비해 삶에 대한 각성의 시간이, 꿈꾼 시간에 비해 잠으로부터의 각성의 시간보다 느리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4103p)“ 그에게 가장 가까운 추억인 육체를 남기고 떠난 그를 나타샤와 마리야는 애도한다. 죽음의 과정을, 애도의 방식을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너무 잘 표현한 것 같다. 그들은 안드레이 공작이 점점 더 깊이, 천천히, 조용히 그들을 떠나 어디론가 내려가는 것을 보았고, 그래야 하고, 그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4104p)“ 그래야 하고, 그것이 좋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서게 될 때 나 역시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포로생활을 통해 삐예르는 소중한 것을 배운다. 전에 그의 모든 지적인 구축을 파괴했던 왜? 라는 무서운 의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왜?라는 의문에 대해 그의 마음속에는, 신이 있기 때문에, 그의 의지 없이는 머리카락 한 올도 사람의 머리에서 그냥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었다.(4321p)” 나의 상황이 매끈하지도 질서정연하지도 않고 그저 복잡하고 불만족스러워서 어쩌다 내가, 아무것도 의도치 않았던, 아무 잘못 없는 내가 바로 이런 모양으로 굴러 떨어졌나 싶을지라도 원망하지 말고 당면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하겠다는, 그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안드레이가 피예르가 나타샤가 기꺼이 감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마치 목욕탕에서 나온 사람처럼 산뜻하고 반질반질하고 생생해지셨어. 마리도 느꼈어?-정신적인 목욕탕에서, 그렇지?(4348p)” 전쟁과 평화는 독자에게 바로 이런 정신적인 목욕탕을 경험케 해준다. 익숙한 감정과 재회하고 그 안에서 지금껏 깨닫지 못했던 낯선 보석을 캐내고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히며 내면의 평화를 향하는 설레이는 여정, 다시 걷고 싶은 길이 된다.

 

 

 

책 속에서

-이따금 피예르는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싸움터에서 적의 포탄 아래 엄폐호에 있는 병사들은 아무 일이 없을 때 그 상황을 조금이라도 쉽게 견디기 위해 악착같이 일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피예르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이 병사들처럼 생활에서 도피하려는 것처럼, 누구는 허영으로, 누구는 카드놀이로, 누구는 법안 작성으로, 누구는 여자로, 누구는 술로, 누구는 국무로 도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2478p)

-그들이 권력자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그들을 위해 천재론이 위조된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전투의 승리에 기여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대오 속에서 틀렸다! 혹은 우라! 하고 외치는 자들이고, 이러한 대오 속에서야말로 나는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근무할 수 있는 것이다!(384p)

-인간은 행동을 할 때 언제나 그 행동의 목적을 생각해내려고 한다. 천 베르스타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천 베르스타 앞에 뭔가 좋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움직이는 힘을 얻기 위해서는 약속의 땅이라는 관념이 필요하다. (4182p)

-“그렇죠, 슬픔이 없는 가정이 있겠습니까?” 피예르는 나타샤를 향해 말했다. (4336p)

 

 

-난로 위에 누워 지내도 인간은 어차피 죽는 법입니다.(1131p)

-밤샘 뒤에 이렇게 훌륭한 러시아 차를 마시는 것처럼 기운을 회복시켜주는 것도 없습니다.(1167p)

-의논은 아내와, 이야기는 장모와 하라지만, 친어머니처럼 좋은 건 없지요!(476p)

-땀이 밴 손은 넉넉하고 건조한 손은 인색하다 (4152p)

-몸이 어떠냐고요? 병에 걸렸다고 울고불고하면 하느님이 제대로 죽게 해주시지 않습니다. (42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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