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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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아쉬움을 간직한 채 이윤기 역자의 수기와 장미의 이름의 열쇠인용글까지 중요한 무언가라도 발견해야 할 듯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는 서문을 다시 읽어야 제대로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멜크 수도원 출신의 (베네딕트회 수도사) 아드소의 수기는 중세의 산중 수도원 한 가운데로 독자를 초대한다. 아드소는 박식한 윌리엄 수도사의 필사 서기 겸 시종으로 곁에서 모시고 배움을 시작하게 된다. 어렸던 그가 기억을 되새겨 수기를 기록한 시점은 수도원 사건 뿐 아니라 그 자신 생의 모든 시간을 마무리하는 죽음을 눈앞에 둔 생의 종말이었다. 기록이 발견되고 번역되고 읽히기 까지 길고 어려운 과정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황제로부터 밀명을 받고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가 수도원에 도착한 후 7일 동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표면적인 중심축은 수도원 연쇄 살인사건이다. 처참하게 반복되는 살인사건이 요한의 묵시록(요한계시록) 심판을 연상케 하기에 추론과 해석을 반복하며 진실에 접근하고자 애쓴다. 그 과정에서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은 가짜 그리스도, 이단재판, 우월의식 등이 가장 권위적인 집단에서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 숨죽이게 한다. 이런 일들이 과연 가능했던 사실일까 싶어지는 장면들도 꽤 등장한다. 마지막에 비밀은 드러나는데 지금껏 구축해온 기대와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윌리엄 수도사와 호르헤 노인의 대화는 비극의 전말을 독자에게 보여주며 한 사람의 눈먼 악행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나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868)” 윌리엄 수도사는 기호학자인 작가를 대변하며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시종일관 질문한다. 때론 여유롭게, 때론 유머스럽게 고정관념과 일반론을 극복해야 함을 강조했으나 막지 못했던 희생 앞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869)”


지식의 향연과 같이 변화무쌍하고 자유자재로 펼쳐지는 사고의 과정, 개념 전개, 서술 등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모두의 자랑거리인 수도원, 그 중에서도 장서관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본체로 신비롭기까지 하다.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서책을 지키는 장서관 사서계 수도사가 진리의 원수인 파괴와 망각의 도구와의 전쟁에 삶을 바치며, 그 목적을 위해 접근을 차단하는 미궁의 외관을 취하고 있다. ‘장미의 이름의 앞 뒤 면지에 실린 수도원 평면도는 너무 간략해서 읽는 내내 자세하고 정확한 구조를 보고 싶다는 바램을 키웠다. 이 또한 집착일까, 불꽃으로 사라지고 마는 결말은 더 많은 목소리를 전하는 듯 싶다.


부록의 장미의 이름을 여는 열쇠중에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들을 작품에 영향을 끼친 문헌으로 꼽아 놀라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국립 도서관장을 지냈던 보르헤스의 모습이 부르고스 사람 호르헤의 모습으로 등장했다니(900) 시력을 잃은 말년의 보르헤스,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라고 노래했던 그를 오랜만에 떠올린다. 작품의 마지막 문장에서 비로소 제목으로 막을 내린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883)” 아주 오래 전 먼 곳에서 일어난 나와 상관없는 그들의 일일까? 모든 것을 불구하고 이것만은 지켜내겠다 싶은 나만의 장서관, 나만의 서책이 분명 있다. 육신의 눈 뿐만 아니라 정신의 눈을 가리는 비뚫어진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때, 내 틀의 파기를 허용할 때, 조금이나마 자유함 속에서 진리 편에 설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진정한 배움이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해서는 안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184)

-진리는 때로 없을 수도 있습니다. (280)

-하지만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우리 있는 곳 일이나 생각하도록 하자꾸나.(295)

-마찬가지로 과도한 사랑은 서책을 병들게 하고 마침내 그 병으로 명을 다하게 하는 것··. 그러면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서책을 독서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보존의 대상으로만 삼아야 마땅한가? (337)

-우리 시대 사람들은 이름은 사물의 궁극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창세기>는 이 점을 더할 나위 없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631)

-, 내가 보고 싶은 서책은, 당신이 거기에서 읽어 보고는 훔쳐서 이곳으로 가져왔고, 당신은 읽었으면서도 다른 수도사에게는 읽지 못하게 했고, 여기에다 감추어 두었고, 남들에게 죽어라고 읽히지 않으면서도 죽어도 파기는 못하겠다고 버티어 온 그 서책입니다. (825)

-이 영감아, 악마는 바로 당신이야! (중략)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 되어 있는 권능이 아니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이런 게 바로 악마야! (844)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목적을 지닌 질서이지. 그러나 고기를 잡으면 그물을 버리고, 높은 데 이르면 사다리를 버려야 한다. 쓸모 있기는 했지만 그 자체에는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되니깐 말이다. (870)

-그래, 유용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 (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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