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 - 성격 급한 뉴요커, 고대 철학의 지혜를 만나다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석기용 옮김 / 든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태도(자세)100이다, 태도(자세)가 모든것이다 라는 말에 동의한다는 이유로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할 것을 아이들에게도 요구한다. 자연히 열심은 미덕이고 쉼은 죄책감을 불러온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 할 일들과 어렴풋하지만 만일을 대비한 투 두 리스트가 다람쥐 챗바퀴처럼 이어지는 일상에 피로감이 커지는 요즘이다. ‘그리고 나는 스토아주의자가 되었다라는 제목은 무신경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고리를 어쩌면 끊게 해 주리라는, 다중의 욕망을 한 템포 늦춰주거나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지혜를 전해주리라는 기대를 품게 했다.


스토아주의에서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과 저자의 전개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마지막 옮긴이의 글에 이르러 비로소 그 차이가 명확해졌다. 에피쿠로스와 정반대에 위치하는, 나 또한 역자처럼 스토아-금욕-아파테이아를 암기했던 시절, 쉽지 않겠지만 매력 있다고 생각했던 그 이미지로서의 스토아주의에 여전히 고착되어 있었다. 책의 첫 부분부터 이것이 스토아주의였다니...’하며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실제로 스토아주의는 감정을 억누르거나 숨기는 일과 관련이 없다. 오히려 스토아주의는 감정을 수긍하고,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반성하고, 그 감정을 유익한 방향으로 바꾸어나가는 일과 관련이 있다.(12)‘고 설명하며 그 핵심 신조중 하나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의 차이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라(12)고 분명히 밝힌다. 꽤나 쿨하고 현명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책 전체를 조망하고 통찰하기는 사실 어려웠다. 저자가 세운 안내자 에픽테토스와의 동행이 여행을 한층 부드럽게 해줬다. 다행히도 솔깃한 여러 예화에 귀 기울이고 현재의 삶에 적용하는 방법들을 눈여겨 볼 수 있었다. 키케로가 과녁의 실제 명중은 결심은 하되 욕구될 일은 아니다.” 라고 결론 내린 이유(59)에서도 우리가 힘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주의와 노력을 집중하되, 그런 다음에는 우주가 원래 하던 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에너지 소모와 많은 걱정을 둘 다 덜어줄 것이다.(58)”고 말한다. 명료하게 이해되는 부분들은 시간의 간극을 넘어 무척이나 신선하고 청량하다.


7품성(그리고 덕)이 전부다는 헬비디우스 프리스쿠스의 인상적인 예화로 시작한다. 최연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말랄라, 디오게네스의 예화 등 모두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장의 마지막은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둔다. 곱씹어 새겨볼 만하다. 아마도 대청소는 집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행동, 편의를 위해 원칙을 타협하는 우리의 너무도 잦은 무신경한 성향, 꼭 필요할 때에 부족한 우리의 용기, 대개는 이론적인 차원에 그치고 마는 우리의 정의감, 종종 허영에 휘둘리는 자제력, 그리고 인생이 우리에게 툭 내던진 일들을 처리할 때 심한 한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우리의 지혜에 대해서 말이다.(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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