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요즘은 제주의 소리가 참 좋을 때입니다.”

“네? 소리요?”

“소리요…….”

공항으로 마중 나온 지인의 말이 엉뚱하게 들렸다. 그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제주가 그리워서 뭍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었던 그는 다시 돌아와 제주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는 아마도 제주를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소리로 듣는 모양이었다.

  거친 바람 소리와 간간히 흩뿌리는 빗소리 그리고 굉음 같은 파도 소리뿐, 제주는 내게 도대체 그 ‘소리’라는 걸 들려주지 않았다. 토박이들을 품어주는 제주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제주는 다른 얼굴인 모양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큰 공원이 있는데, 입구에서 돈을 내고 빌리는 4인승 자전거를 탄 가족이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주말 공원의 풍경이 된지 오래이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원은 이른 아침 산책을 하며 사색에 잠기고, 밤공기를 가르며 운동을 하는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다. 비 내리는 공원도 텅 빈 겨울 풍경도 그래서 주민들에게는 변함없이 친근하다. 서로에게 시간을 쌓고 마음을 나누는 만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제주에게 낯선 이방인이었다.

해가 저물면서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전날 소풍가방을 싸놓은 아이처럼 잠결에도 창밖의 소리에 마음을 졸였다. 얼마나 잤을까. 다행히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눈을 뜨자 창밖에는 비대신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곳은 지금 겨울의 한가운데였다. 봄이 그리워서 멀리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다지 춥지 않았던 겨울이 긴 터널처럼 느껴지는 건 잿빛 같은 일상을 빠져나오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을 터이다.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봄이 시작되는 곳, 유채꽃이 봄바람에 춤을 추고 코발트색 바다에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는 곳, 그 곳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걷노라면 어디선가 불어오는 봄바람에 몸도 마음도 봄빛으로 물들 줄만 알았던 제주는 몰아치는 눈보라에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눈 덮인 절물휴양림은 아름다웠지만 뒤로 두고 나올 수밖에. 그렇게 제주의 봄은 꼭꼭 숨어 있었다. 

산간지대를 내려와 평지로 접어드니 눈보라는 크고 작은 빗방울로 바뀌었다. 그리고 보면 제주에 몇 차례 왔을 때마다 날씨가 좋았다. 제주를 다 보겠다고 무리하게 일정을 짜서 온종일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꾸민 공원이나 박물관, 관광 상품으로 가꾸어진 유채밭 등 그 많은 볼거리에 현혹되어 오히려 제주의 본 모습은 느끼지 못하고 포장만 보고 돌아갔던 것 같다. 눈으로 보는 것에만 의존하며 사는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가. 마치 시각장애인들이 예민한 청각으로 시력을 대신하는 것과 반대로,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에 집착함으로서 코도 귀도 무뎌지고 겉모습에 가린 진실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제주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지 못하는 내게 지인이 귀띔을 해준 곳이 있었다. 제주를 잘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숨겨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천연기념물 375호로 지정된 북제주군 애월읍 금산공원, 관광안내도에도 없고 변변한 안내판도 없는 그 곳에는 산신령 같은 거목이 입구에 버티고 서있었다. 숲의 정령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에 살지 않을까. 그 곳에는 범접할 수 없는 서기가 서려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하나같이 돌무더기를 움켜쥐듯 붙들고 있는 뿌리였다. 푸른 잎을 달고 하늘을 가득 메운 아름드리나무의 뿌리는 흙 한줌조차 찾을 수 없는 돌 틈에서 제 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온 힘으로 나무를 지탱하고 있었다. 인간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은 울창한 원시림, 그 원초적인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척박함이었다. 금산공원은 그 옛날 버려진 돌무더기 밭이었던 것이다.  

바위 사이 조그마한 틈이라도 비집고 나무들은 자라나고, 현무암 구멍 속에서도 싹은 돋아났다. 살아남기 위해 어디로든 햇빛을 찾아 몸을 휘고 비틀었다. 덩굴식물들은 드러난 뿌리에도 나무줄기에도 기대며 끝 간 데 없이 올라갔다. 그렇게 수백 년의 세월을 이어오며 금산공원은 돌무덤에서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었고 제 몸을 내주며 부스러지는 바위들은 나무의 일부가 되었다. 척박함에서 오는 강인한 생명력, 절박할수록 서로 등을 기대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조화, 지인은 내게 그런 제주도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리 잘 꾸며놓은 정원도 신기한 박물관도 사실 두 번 볼 것은 못되었다. 끊임없이 물결치는 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있는 산과 오름들, 검은 돌담 사이로 푸릇푸릇한 마늘밭, 그리고 추운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 자연과 삶터는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들은 정직했다. 겉모습으로 현혹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 것은 듣지 못하는 내게 오히려 욕심 가득한 눈을 씻어주고 귀를 열어주고 온 몸의 오감을 깨워주었다.

  그랬을까. 어쩌면 제주에는 봄이 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절물휴양림의 쌓인 눈 속에서 복수초가 노란 꽃 봉우리를 내밀고, 차가운 바닷바람에 몸을 눕히는 마늘과 보리도 봄기운을 온몸으로 꽉꽉 채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황량한 우리 동네 공원에도 새싹이 언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소리, 나무들이 잠깨어 기지개를 펴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봄은 제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잿빛 도시에서 봄을 갈망하는 내 마음에도 어쩌면 봄은 시작되고 있었다. 다만 눈에 안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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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바퀴가 굴러간다. 아이는 엄마가 잡고 있는 줄로만 알고 씩씩하게 페달을 밟고 달려간다. 엄마는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얘야, 그렇게 세상을 향해 나가거라.’ 엄마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져간다. 보조 바퀴를 떼고 두발자전거를 타고 싶다던 막내아이의 말에 나는 TV 광고 같은 이런 장면을 떠올렸다. 큰아이들은 정신없이 키웠지만, 막내만큼은 커가는 순간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어서였을까.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서 나는 우리 모자가 연출하는 멋진 장면을 이미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무릎 보호대와 팔꿈치 보호대로 중무장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아파트 앞을 두어 바퀴 돌았다. 이 정도면 혼자 탈만도 한데 아이는 아직 감을 잡지 못했다. 땀은 비 오듯이 흘렀고, 계속 자전거 뒤를 잡아주느라 허리마저 아파왔다. 큰 아이들은 제 아빠가 잡아주자 금방 탔었는데, 또래보다 키가 훨씬 큰 여덟 살짜리 막내는 덩치만 컸지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 보였다.

우리 모자는 온몸을 땀에 적신 채 쩔쩔매고 있었다. “야, 준철아! 너 아직도 자전거 못 타니?” 아이 친구가 지나가며 알은체를 했다. 여섯 살 때부터 자전거를 탔던 그 아이는 제 자전거를 가지고 나와 보란 듯이 쌩쌩 달렸다. 아래층 아줌마는 ‘우리 딸은 호수공원에서 딱 한 시간만 잡아줬더니 바로 타더라,’고 하면서 그 때의 감동을 떠올렸다. ‘아빠가 잡아줘야지 왜 힘들게 엄마가 잡아주느냐’며 이웃집 아줌마가 참견을 하기도 했다. 아이가 처음 자전거를 타던 순간은 누구에게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도 불안하게 뒤뚱거리는 아이를 잡아주느라 나는 점점 지쳐갔다. 옆에서 날아갈 듯 달리는 아이의 친구에게도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자전거가 기울어지면 엉덩이를 옆으로 밀지 말고 핸들을 약간 돌려야지, 봐봐, 지금도 엄마가 안 잡았으면 벌써 넘어졌잖아!” 내 목소리는 자꾸 높아졌고, 땀에 젖은 아이는 절인 배추처럼 점점 움츠러들었다. 어스름해지는 저녁, 우리는 패잔병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 일요일에는 아빠가 데리고 나가 자전거를 태워주었다. 헬멧도 보호대도 모두 벗어버리고 가뿐하게 출발을 했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아빠와 아들의 모습은 내 눈에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래, 큰아이들도 제 아빠가 가르쳐주었으니까 금방 배우겠지. 괜히 내가 잡아준다고 애만 고생시켰잖아.’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있는데, 아빠와 아이가 곧 들어왔다. “엄마, 어제보다는 조금 더 잘 타.” 아이는 제 딴에는 의기양양했지만 끝까지 자전거를 붙들어야 했던 남편은 그날 저녁 허리가 아파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이제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TV 광고 같은 장면은 고사하더라도, 아이가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 후,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해도 화를 내지 않겠다고 아이에게 약속을 하고 다시 도전을 했다. 역시 균형을 못 잡고 엉덩이만 뒤뚱거리는 아이와 씨름을 하는데 마침 둘째아이가 학원에 갔다 돌아오고 있었다. “엄마는 이제 힘이 드니까, 네가 동생 자전거 좀 가르쳐 주렴.” 그렇게 둘째에게 동생을 맡기고 앉으려는데, 자전거를 잡아주던 아이가 금방 손을 놓았다. ‘야, 그러면 동생이 넘어지잖아. 더 잡아줘야지.’ 깜짝 놀라서 막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막내는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하면서 혼자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중간에 한 번 넘어지기는 했지만 아이는 혼자서 한 바퀴를 다 돌았다.

그랬었다. 제 형은 동생이 혹시 넘어지더라도 혼자서 탈 수 있을 것 같아 손을 놓았는데, 엄마 아빠는 아이가 넘어질까 봐, 넘어져서 연한 살갗에 생채기라도 날까봐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막내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마음이 오히려 아이의 자전거를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을, 부모의 지나친 사랑이 아이의 자전거 뒤에 커다란 짐으로 매달려 앞으로 달리려는 아이를 못 가게 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중학생인 큰아이에게도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이에게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대로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 아이들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엄마가 참견하지 않으면 혼자서 할 줄 모른다고 아이들을 구박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전거 뒤를 붙잡고 핸들을 이리 돌려라 저리 돌려라 잔소리만 하고 있지 않았던가.

결국, 막내의 자전거타기 연습은 엄마의 놓아주기 연습이었다.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말없이 지켜보고, 다시 일어나는 아이에게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그것은 아이가 할 수 있다고 믿어주고 제 힘으로 홀로 서는 아이를 격려하고 존중해주는 연습이었다. 넘어진 아이를 지켜보는 안타까움을 참아내고, 얼른 붙들어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건 내게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실수하면서 아이들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야만 했다.

이제 막내는 바람을 가르며 제법 쌩쌩 달린다. 아이의 자전거타기 연습은 이제 끝나가지만, 세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아이들을 끊임없이 믿어주고 놓아주어야 하는 엄마의 ‘놓아주기 연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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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뜨거운 한낮의 햇살이 서서히 베란다에 들어온다. 물풀과 다슬기 두어 마리 그리고 금붕어 한 마리가 살고 있는 항아리에도 햇살이 쏟아진다. 그늘 한 구석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금붕어는 간간이 가슴지느러미만 살랑거릴 뿐, 한가롭게 헤엄을 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고기는 그 안에서 잠을 자는 듯 꿈을 꾸는 듯 하다.

이 금붕어는 어린이날 선착순으로 받은 무료 사은품이었다. 동네 대형 할인판매점에서 ‘어린이들에게 금붕어 세 마리를 무료로 나누어 준다’는 방송이 나가자 우리 아이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었다.

순간 망설였다.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우리 집에 살아 들어왔다가 죽어나갔던가. 앵무새, 금화조, 장수풍뎅이, 물고기 등등, 아파트 화단 후미진 곳에 아예 지정 묘지가 있을 정도이지 않은가. 시골에서 올챙이라도 잡아오면 그 다음날부터 배를 허옇게 뒤집고 둥둥 떠다니는 그 것들을 건져 올리는 건 내 몫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 가져와서 키울 욕심으로 더 이상 애매한 생명들을 죽이지는 말자고 아이들과 다짐을 했던 터였다.

그런데 ‘선착순’, ‘무료’라는 말이 화근이었다. 줄을 서서 금붕어를 받아가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안절부절못했다. 마치 금붕어를 받아가지 않으면 우리만 손해를 보는 그런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죽더라도 공짜인데 뭐 어떤가!’ 나도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어느덧 아이들에게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막내 책상 위에 세 마리, 둘째 책상 위에 세 마리. 그렇게 알록달록하고 앙증맞은 금붕어들이 커다란 유리병 안을 헤엄쳐 다니는 걸 보면서 즐거워했던 것도 한때였다. 이틀쯤 지났을까, 자고 일어나면 한 마리씩 죽어 있었다.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둘째와 막내의 어항에서는 아침이면 금붕어들이 둥둥 떠올랐고,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죽은 물고기들을 치우고 물을 갈아주었다. 어쩌자고 금붕어를 받아왔단 말인가. 물고기를 키우려면 제대로 된 어항과 산소공급기까지 사왔어야 했는데 물고기 먹이만 달랑 사들고 온 것도 후회스러웠다.

막내의 유리병에 마지막 한 마리만 남았을 때, 남편은 그 금붕어를 베란다 한쪽에서 물풀을 키우던 항아리에 넣어버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항아리에서 금붕어가 보이질 않았다. 아이가 금붕어를 찾으면 나는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하고, 남편은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하면서 우리는 서로 죽은 물고기를 아이 몰래 치운 줄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금붕어는 사라져갔다.

어느 일요일 아침, 베란다에서 화분에 물을 주던 남편이 탄성을 질렀다. “얘들아, 여기 금붕어 아직 살아 있어!” 그 동안 어느 구석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죽은 줄로만 알고 밥도 안줬는데, 일주일도 넘게 그냥 내버려두었는데, 금붕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느러미까지 흔들며 작은 입을 뻐끔거렸다.

이 기적과도 같은 사실에 우리 식구들은 모두 흥분했다. 막내는 정말 운 좋은 물고기라면서 물고기 이름을 ‘럭키’라고 지어주었다. 남편과 나는 흙으로 빚은 질그릇 항아리의 효능과 물풀의 자정 작용에 대해 새삼 감탄을 했다. 지나친 관심과 보살핌보다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항아리와 물풀의 효능을 굳게 믿고 용기를 내어 ‘럭키’의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금붕어 두 마리를 다시 사들고 온 것이다. 하나는 머리에 까만 점이 있고 또 하나는 등에 빨간 얼룩이 있는 이 꼬물꼬물하고 귀여운 생명의 값어치는 한 마리에 고작 오백 원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숨쉬는 항아리도 오염 물질을 빨아들이는 물풀도 럭키의 새 친구들에게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결사적으로 버텨 온 럭키와는 다르게 그들은 너무도 쉽게 생명을 내놓았다.

다른 금붕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환경에서 럭키는 지금 석 달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활기차게 헤엄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는 것일까, 물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간간이 더 채워주는 신선한 물도, 조금씩 넣어주는 밥에도 도무지 관심이 없다.

한때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생명을 부지하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라면 그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베란다를 들락거릴 때마다 느껴지는 이 작은 생명의 존재감이 이제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항아리 안에서 가만히 있는 럭키가 작은 암자에서 홀로 명상을 하는 도인같이 여겨진다면 나의 지나친 상상일까.

똑같은 환경인데도 어떤 물고기는 하루 만에 죽고, 어떤 물고기는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건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또 럭키가 기적적으로 생명을 유지해가는 데 우리 식구들이 특별히 해준 것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럭키는 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내맡기는 애완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덤으로 주는 무료 사은품인 럭키는 ‘재미로 키우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자연(自然)’이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다슬기 두어 마리가 친구가 되었다. 머리에 빨간 점이 있는 금붕어 럭키는 지금도 명상을 하는 듯 꿈을 꾸는 듯 가슴지느러미만 이따금씩 살랑거린다.

 

(2006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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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의 부엌 창가에는 거울이 하나 놓여 있다. 갑자기 누가 초인종이라도 누르면 어머니는 얼른 거울을 보고 매무시를 고친 다음, 방문객을 맞이한다. 또 부엌일을 하는 틈틈이 거울을 들여다보시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부엌에 거울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연세가 칠십 중반에 가까운 요즘은 더욱 그 거울이 눈길을 끈다.

나도 부엌 창가에 거울을 하나 걸어 두었다. 어머니처럼 자주 들여다보며 모습을 단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뭘 해 먹나’ 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가다가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심코 쳐다 본 거울 속에서 머리는 부스스하고 누구에겐가 잔뜩 화를 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한바탕 야단을 치거나 남편과 말다툼을 한 날에는 어김없이 잔뜩 심통이 나고 일그러진 얼굴이 나를 바라보았다.

화장대 앞이나 욕실에서처럼 거울을 의식하고 바라본 모습은 내가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나 보다. 그리고 나조차도 이런 모습을 나의 이미지로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문득 대면한 내 모습은 생소했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얼굴이었다. 쌓인 집안일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힘겨워하고, 꺾여버린 날개가 아쉬워 다시 날기를 갈망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이었다.

그 동안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살아왔다. 늘 바깥으로만 눈을 돌렸지 정작 스스로를 돌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이제 와서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정작 아이들과 남편은 식구라는 이유로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내 적나라한 모습을 늘 보아왔을 것이 아닌가.

부엌에 걸린 거울은 그래서 내 마음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했다.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는 날에는 ‘내가 오늘은 기분이 안 좋구나, 왜 그럴까?’ 하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려 노력했다. 어머니도 그랬던 것일까, 부엌에 놓인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머리를 매만진 것이 아니라, 당신의 표정을 살피고 마음을 비춰보신 것은 아니었을까.

혼자만의 내 얼굴에 점점 익숙해질 무렵, 거울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거울이 가스렌지 옆에 걸려 있어서, 유난히 더러움을 탔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머니의 거울은 한 번도 더러웠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수시로 거울을 닦아내셨던 것이다.

거울에 낀 기름때며 먼지를 닦아내면서 어머니는 생활의 때와 마음의 먼지도 닦아내셨는지 모르겠다. 그 누구에게 때에 찌들어 더럽게 보이거나 일그러져 보이지 않게, 당신의 마음 창도 말끔하게 하신 건 아닐까. 연세가 많으신 데도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안주려고 늘 노력하는 어머니, 매일 기도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티 없이 맑은 어머니의 거울과도 같이 느껴진다.

끝없는 집안 살림에 지겨워하고, 모든 일을 짜증스럽게 바라보던 내 마음은 어쩌면 뿌연 거울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남편과 아이들의 단점만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내 마음이 말갛지 못한 때문인 것을……. 세상을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흙탕물이 튀기도 하고, 내가 원하지 않은 더러움이 묻을 때도 있을 것이다. 또 일상이라는 먼지가 수북이 쌓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그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대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매일 되돌아보며 마음의 거울을 맑게 유지할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으리라.

오랜만에 친정에 갔더니 어머니가 부엌에서 분주하시다. 동갑내기 친구가 아파서 누워 있다고 한다. 아직 장가도 안 간 막내아들하고 둘이 사는데 불쌍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병원에서도 어찌할 수 없어 퇴원하라고 했다면서 눈시울을 붉히신다. 친구 먹을 죽이랑, 그 집 아들이 먹을 밑반찬을 주섬주섬 챙긴 어머니는 부엌에서 거울 한 번 보고는 문을 나선다. 곧 돌아올 테니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시면서.

부엌에 들어가자 창가에 놓인 어머니의 거울이 말갛게 웃고 있다.

200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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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모험가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진다. 빗소리에 놀라 창밖을 내다보니, 학교에 가는 둘째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비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목발을 짚은 아이는 서너 걸음 가다가 잠깐 쉬고 다시 걸음을 뗀다. 아이의 머리 위로, 비옷 위로, 빗줄기는 사정없이 내리꽂힌다.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 아이는 2주 전부터 목발을 짚고 다닌다. 학교에 가다가 자전거에 부딪혀 발을 다쳤기 때문이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인대가 늘어나 3주 동안 깁스를 해야 했다. 평소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거울이나 유리에 제 모습을 비추어보며 브레이크 댄스를 연습하던 아이가 꼼짝없이 목발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목발을 짚고 학교에 가던 첫날부터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모험이었을 것이다. 짧은 등교길은 가다가 몇 번을 쉬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었을 테고, 실내화를 갈아 신고 운동화를 신발주머니에 넣는 간단한 일조차 제게는 힘겨웠을 것이다. 교실이 있는 5층까지 계단을 올라가다가 넘어져 무릎에 퍼렇게 멍이 들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학교에 갔다 온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10분이면 걸어갈 거리지만 목발을 짚고 가기엔 아무래도 먼 것 같아 택시를 불렀다. 기사는 가까운 거리인데도 택시를 타는 사람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아이가 다쳐서 그런 줄 알면서도 기사의 불평은 계속 이어졌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집에 갈 일이 걱정이었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읽었는지 아이는 목발 짚고 걷는 것을 연습해야 한다면서 그냥 걸어가자고 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데 옆에 가던 한 아이가 할머니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저 형아 왜 저래?”, “몰라, 저 형은 엄마 말 안 듣고 말썽부려서 그래.” 길을 가는 내내 온몸에 가시가 돋는 기분이었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마구 화가 났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확인하는 듯 했다.

가까운 거리를 40분이나 걸려 집에 돌아왔지만,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아무리 깨워도 아이가 일어나지를 않았다. “목발 짚고 가야 하니까 더 빨리 일어나야지…….” 하니까, 겨우 일어나더니 다시 소파에 얼굴을 파묻고 누웠다. 엄마가 성화를 부릴수록 아이는 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기가 싫은 것이었다. “엄마, 어제 병원에서 집에 올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팔도 아프고, 겨드랑이도 아프고, 그리고 학교 준비물도 사야 되고, 오늘 체육 들었는데, 그럼 또 계단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한단 말이야.”

배가 아프다든지 감기가 심한 경우라면 학교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힘들어할수록 이겨내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이 정도에서 포기하면 어떻게 하냐며 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고 혼내고 윽박지르기까지 해도 막무가내였다. 등짝을 때리며 험한 말을 퍼붓는 엄마를 제법 쏘아보는 눈빛에는 반항심마저 일렁거렸다. 급기야는 학교에 가든지 말든지 학교 끝날 때까지 문 열어주지 않겠다고 하면서 아이를 문 밖으로 내쫓았다. 책가방과 목발과 함께.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을까. 정작 힘든 건 아이일 텐데…….’ 하루 종일 자책감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애써 웃어 보이려 하는 아이를 보자 왈칵 눈물이 났다. “준우야, 미안해. 안 그래도 힘든 너를 엄마가 더 힘들게 했지? 막 소리 지르고 때리고 해서 얼마나 아프고 속상했니?” 가슴 속에 맺힌 말들을 풀어놓으며 부둥켜안고 우는데, 아이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 후로 아이는 목발을 짚고 생활하는 데 점차 익숙해져 갔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이 가방을 들어다주고, 집에 오면 동생이 심부름을 도맡아했다. 목발로 총 쏘는 시늉을 하면서 노는 아이의 장난기도 여전했다. “엄마, 나 이제 목발 짚고 날아 다녀…….”

오늘은 새벽부터 간간히 비가 흩뿌렸다. 전날 일기 예보에서는 비가 조금만 온다고 했는데, 비는 계속 내렸다. 걱정이 되어 학교에 데려다 주겠다고 하자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엄마, 괜찮아, 갈 수 있어.” 둘째는 늘 씩씩했다. 형과 동생의 중간에서 엄마가 힘들까봐 마음을 썼고, 엄마의 관심을 절실히 원하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안 그런 척 했다.

결국 비옷을 입혀서 혼자 학교에 보냈는데, 아이가 나간 직후부터 장대비가 쏟아진다. 몰아치는 바람에 비옷의 모자까지 벗겨지고 야속한 빗줄기는 사정없이 아이의 머리를 내려친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아이의 뒷모습은 결연해 보이기까지 하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아이는 세찬 눈보라를 이겨내면서 고지를 향해 올라가는 모험가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래, 준우야, 지금 네가 내딛는 발걸음은 비록 힘들지만, 네 마음이 성장하는 한 걸음이란다.’ 어렵게 제 길을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아이에게 힘이 되어주는 엄마인지, 험한 세상으로 그저 등짝만 떠미는 모진 엄마인지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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