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바퀴가 굴러간다. 아이는 엄마가 잡고 있는 줄로만 알고 씩씩하게 페달을 밟고 달려간다. 엄마는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얘야, 그렇게 세상을 향해 나가거라.’ 엄마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져간다. 보조 바퀴를 떼고 두발자전거를 타고 싶다던 막내아이의 말에 나는 TV 광고 같은 이런 장면을 떠올렸다. 큰아이들은 정신없이 키웠지만, 막내만큼은 커가는 순간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어서였을까. 자전거를 타러 나가면서 나는 우리 모자가 연출하는 멋진 장면을 이미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헬멧을 쓰고 무릎 보호대와 팔꿈치 보호대로 중무장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아파트 앞을 두어 바퀴 돌았다. 이 정도면 혼자 탈만도 한데 아이는 아직 감을 잡지 못했다. 땀은 비 오듯이 흘렀고, 계속 자전거 뒤를 잡아주느라 허리마저 아파왔다. 큰 아이들은 제 아빠가 잡아주자 금방 탔었는데, 또래보다 키가 훨씬 큰 여덟 살짜리 막내는 덩치만 컸지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 보였다.

우리 모자는 온몸을 땀에 적신 채 쩔쩔매고 있었다. “야, 준철아! 너 아직도 자전거 못 타니?” 아이 친구가 지나가며 알은체를 했다. 여섯 살 때부터 자전거를 탔던 그 아이는 제 자전거를 가지고 나와 보란 듯이 쌩쌩 달렸다. 아래층 아줌마는 ‘우리 딸은 호수공원에서 딱 한 시간만 잡아줬더니 바로 타더라,’고 하면서 그 때의 감동을 떠올렸다. ‘아빠가 잡아줘야지 왜 힘들게 엄마가 잡아주느냐’며 이웃집 아줌마가 참견을 하기도 했다. 아이가 처음 자전거를 타던 순간은 누구에게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직도 불안하게 뒤뚱거리는 아이를 잡아주느라 나는 점점 지쳐갔다. 옆에서 날아갈 듯 달리는 아이의 친구에게도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자전거가 기울어지면 엉덩이를 옆으로 밀지 말고 핸들을 약간 돌려야지, 봐봐, 지금도 엄마가 안 잡았으면 벌써 넘어졌잖아!” 내 목소리는 자꾸 높아졌고, 땀에 젖은 아이는 절인 배추처럼 점점 움츠러들었다. 어스름해지는 저녁, 우리는 패잔병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 일요일에는 아빠가 데리고 나가 자전거를 태워주었다. 헬멧도 보호대도 모두 벗어버리고 가뿐하게 출발을 했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아빠와 아들의 모습은 내 눈에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래, 큰아이들도 제 아빠가 가르쳐주었으니까 금방 배우겠지. 괜히 내가 잡아준다고 애만 고생시켰잖아.’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있는데, 아빠와 아이가 곧 들어왔다. “엄마, 어제보다는 조금 더 잘 타.” 아이는 제 딴에는 의기양양했지만 끝까지 자전거를 붙들어야 했던 남편은 그날 저녁 허리가 아파 누워 있어야만 했다.

이제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다. TV 광고 같은 장면은 고사하더라도, 아이가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 후,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해도 화를 내지 않겠다고 아이에게 약속을 하고 다시 도전을 했다. 역시 균형을 못 잡고 엉덩이만 뒤뚱거리는 아이와 씨름을 하는데 마침 둘째아이가 학원에 갔다 돌아오고 있었다. “엄마는 이제 힘이 드니까, 네가 동생 자전거 좀 가르쳐 주렴.” 그렇게 둘째에게 동생을 맡기고 앉으려는데, 자전거를 잡아주던 아이가 금방 손을 놓았다. ‘야, 그러면 동생이 넘어지잖아. 더 잡아줘야지.’ 깜짝 놀라서 막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막내는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하면서 혼자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중간에 한 번 넘어지기는 했지만 아이는 혼자서 한 바퀴를 다 돌았다.

그랬었다. 제 형은 동생이 혹시 넘어지더라도 혼자서 탈 수 있을 것 같아 손을 놓았는데, 엄마 아빠는 아이가 넘어질까 봐, 넘어져서 연한 살갗에 생채기라도 날까봐 도저히 손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막내에 대한 부모의 애틋한 마음이 오히려 아이의 자전거를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을, 부모의 지나친 사랑이 아이의 자전거 뒤에 커다란 짐으로 매달려 앞으로 달리려는 아이를 못 가게 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중학생인 큰아이에게도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이에게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절대로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 아이들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엄마가 참견하지 않으면 혼자서 할 줄 모른다고 아이들을 구박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전거 뒤를 붙잡고 핸들을 이리 돌려라 저리 돌려라 잔소리만 하고 있지 않았던가.

결국, 막내의 자전거타기 연습은 엄마의 놓아주기 연습이었다.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말없이 지켜보고, 다시 일어나는 아이에게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 그것은 아이가 할 수 있다고 믿어주고 제 힘으로 홀로 서는 아이를 격려하고 존중해주는 연습이었다. 넘어진 아이를 지켜보는 안타까움을 참아내고, 얼른 붙들어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건 내게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실수하면서 아이들은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야만 했다.

이제 막내는 바람을 가르며 제법 쌩쌩 달린다. 아이의 자전거타기 연습은 이제 끝나가지만, 세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아이들을 끊임없이 믿어주고 놓아주어야 하는 엄마의 ‘놓아주기 연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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