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요즘은 제주의 소리가 참 좋을 때입니다.”
“네? 소리요?”
“소리요…….”
공항으로 마중 나온 지인의 말이 엉뚱하게 들렸다. 그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제주가 그리워서 뭍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었던 그는 다시 돌아와 제주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는 아마도 제주를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소리로 듣는 모양이었다.
거친 바람 소리와 간간히 흩뿌리는 빗소리 그리고 굉음 같은 파도 소리뿐, 제주는 내게 도대체 그 ‘소리’라는 걸 들려주지 않았다. 토박이들을 품어주는 제주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제주는 다른 얼굴인 모양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큰 공원이 있는데, 입구에서 돈을 내고 빌리는 4인승 자전거를 탄 가족이나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주말 공원의 풍경이 된지 오래이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원은 이른 아침 산책을 하며 사색에 잠기고, 밤공기를 가르며 운동을 하는 일상적인 삶의 공간이다. 비 내리는 공원도 텅 빈 겨울 풍경도 그래서 주민들에게는 변함없이 친근하다. 서로에게 시간을 쌓고 마음을 나누는 만큼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제주에게 낯선 이방인이었다.
해가 저물면서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전날 소풍가방을 싸놓은 아이처럼 잠결에도 창밖의 소리에 마음을 졸였다. 얼마나 잤을까. 다행히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눈을 뜨자 창밖에는 비대신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곳은 지금 겨울의 한가운데였다. 봄이 그리워서 멀리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다지 춥지 않았던 겨울이 긴 터널처럼 느껴지는 건 잿빛 같은 일상을 빠져나오고 싶은 갈망 때문이었을 터이다.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봄이 시작되는 곳, 유채꽃이 봄바람에 춤을 추고 코발트색 바다에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는 곳, 그 곳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걷노라면 어디선가 불어오는 봄바람에 몸도 마음도 봄빛으로 물들 줄만 알았던 제주는 몰아치는 눈보라에 걷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눈 덮인 절물휴양림은 아름다웠지만 뒤로 두고 나올 수밖에. 그렇게 제주의 봄은 꼭꼭 숨어 있었다.
산간지대를 내려와 평지로 접어드니 눈보라는 크고 작은 빗방울로 바뀌었다. 그리고 보면 제주에 몇 차례 왔을 때마다 날씨가 좋았다. 제주를 다 보겠다고 무리하게 일정을 짜서 온종일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꾸민 공원이나 박물관, 관광 상품으로 가꾸어진 유채밭 등 그 많은 볼거리에 현혹되어 오히려 제주의 본 모습은 느끼지 못하고 포장만 보고 돌아갔던 것 같다. 눈으로 보는 것에만 의존하며 사는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가는가. 마치 시각장애인들이 예민한 청각으로 시력을 대신하는 것과 반대로,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에 집착함으로서 코도 귀도 무뎌지고 겉모습에 가린 진실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제주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지 못하는 내게 지인이 귀띔을 해준 곳이 있었다. 제주를 잘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숨겨둔 곳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천연기념물 375호로 지정된 북제주군 애월읍 금산공원, 관광안내도에도 없고 변변한 안내판도 없는 그 곳에는 산신령 같은 거목이 입구에 버티고 서있었다. 숲의 정령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에 살지 않을까. 그 곳에는 범접할 수 없는 서기가 서려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하나같이 돌무더기를 움켜쥐듯 붙들고 있는 뿌리였다. 푸른 잎을 달고 하늘을 가득 메운 아름드리나무의 뿌리는 흙 한줌조차 찾을 수 없는 돌 틈에서 제 몸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온 힘으로 나무를 지탱하고 있었다. 인간의 손길을 허락하지 않은 울창한 원시림, 그 원초적인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척박함이었다. 금산공원은 그 옛날 버려진 돌무더기 밭이었던 것이다.
바위 사이 조그마한 틈이라도 비집고 나무들은 자라나고, 현무암 구멍 속에서도 싹은 돋아났다. 살아남기 위해 어디로든 햇빛을 찾아 몸을 휘고 비틀었다. 덩굴식물들은 드러난 뿌리에도 나무줄기에도 기대며 끝 간 데 없이 올라갔다. 그렇게 수백 년의 세월을 이어오며 금산공원은 돌무덤에서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었고 제 몸을 내주며 부스러지는 바위들은 나무의 일부가 되었다. 척박함에서 오는 강인한 생명력, 절박할수록 서로 등을 기대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조화, 지인은 내게 그런 제주도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리 잘 꾸며놓은 정원도 신기한 박물관도 사실 두 번 볼 것은 못되었다. 끊임없이 물결치는 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있는 산과 오름들, 검은 돌담 사이로 푸릇푸릇한 마늘밭, 그리고 추운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 자연과 삶터는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들은 정직했다. 겉모습으로 현혹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보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 것은 듣지 못하는 내게 오히려 욕심 가득한 눈을 씻어주고 귀를 열어주고 온 몸의 오감을 깨워주었다.
그랬을까. 어쩌면 제주에는 봄이 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절물휴양림의 쌓인 눈 속에서 복수초가 노란 꽃 봉우리를 내밀고, 차가운 바닷바람에 몸을 눕히는 마늘과 보리도 봄기운을 온몸으로 꽉꽉 채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황량한 우리 동네 공원에도 새싹이 언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소리, 나무들이 잠깨어 기지개를 펴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봄은 제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잿빛 도시에서 봄을 갈망하는 내 마음에도 어쩌면 봄은 시작되고 있었다. 다만 눈에 안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