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의 부엌 창가에는 거울이 하나 놓여 있다. 갑자기 누가 초인종이라도 누르면 어머니는 얼른 거울을 보고 매무시를 고친 다음, 방문객을 맞이한다. 또 부엌일을 하는 틈틈이 거울을 들여다보시기도 한다. 오래 전부터 부엌에 거울이 있었지만, 어머니의 연세가 칠십 중반에 가까운 요즘은 더욱 그 거울이 눈길을 끈다.
나도 부엌 창가에 거울을 하나 걸어 두었다. 어머니처럼 자주 들여다보며 모습을 단정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뭘 해 먹나’ 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가다가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심코 쳐다 본 거울 속에서 머리는 부스스하고 누구에겐가 잔뜩 화를 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한바탕 야단을 치거나 남편과 말다툼을 한 날에는 어김없이 잔뜩 심통이 나고 일그러진 얼굴이 나를 바라보았다.
화장대 앞이나 욕실에서처럼 거울을 의식하고 바라본 모습은 내가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나 보다. 그리고 나조차도 이런 모습을 나의 이미지로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문득 대면한 내 모습은 생소했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얼굴이었다. 쌓인 집안일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힘겨워하고, 꺾여버린 날개가 아쉬워 다시 날기를 갈망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또 다른 나의 모습이었다.
그 동안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살아왔다. 늘 바깥으로만 눈을 돌렸지 정작 스스로를 돌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이제 와서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정작 아이들과 남편은 식구라는 이유로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내 적나라한 모습을 늘 보아왔을 것이 아닌가.
부엌에 걸린 거울은 그래서 내 마음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했다.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는 날에는 ‘내가 오늘은 기분이 안 좋구나, 왜 그럴까?’ 하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지려 노력했다. 어머니도 그랬던 것일까, 부엌에 놓인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머리를 매만진 것이 아니라, 당신의 표정을 살피고 마음을 비춰보신 것은 아니었을까.
혼자만의 내 얼굴에 점점 익숙해질 무렵, 거울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거울이 가스렌지 옆에 걸려 있어서, 유난히 더러움을 탔기 때문이다. 갑자기 어머니의 거울은 한 번도 더러웠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수시로 거울을 닦아내셨던 것이다.
거울에 낀 기름때며 먼지를 닦아내면서 어머니는 생활의 때와 마음의 먼지도 닦아내셨는지 모르겠다. 그 누구에게 때에 찌들어 더럽게 보이거나 일그러져 보이지 않게, 당신의 마음 창도 말끔하게 하신 건 아닐까. 연세가 많으신 데도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안주려고 늘 노력하는 어머니, 매일 기도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티 없이 맑은 어머니의 거울과도 같이 느껴진다.
끝없는 집안 살림에 지겨워하고, 모든 일을 짜증스럽게 바라보던 내 마음은 어쩌면 뿌연 거울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남편과 아이들의 단점만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내 마음이 말갛지 못한 때문인 것을……. 세상을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흙탕물이 튀기도 하고, 내가 원하지 않은 더러움이 묻을 때도 있을 것이다. 또 일상이라는 먼지가 수북이 쌓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그 것을 깨닫지 못한 채 그대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매일 되돌아보며 마음의 거울을 맑게 유지할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렸으리라.
오랜만에 친정에 갔더니 어머니가 부엌에서 분주하시다. 동갑내기 친구가 아파서 누워 있다고 한다. 아직 장가도 안 간 막내아들하고 둘이 사는데 불쌍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병원에서도 어찌할 수 없어 퇴원하라고 했다면서 눈시울을 붉히신다. 친구 먹을 죽이랑, 그 집 아들이 먹을 밑반찬을 주섬주섬 챙긴 어머니는 부엌에서 거울 한 번 보고는 문을 나선다. 곧 돌아올 테니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시면서.
부엌에 들어가자 창가에 놓인 어머니의 거울이 말갛게 웃고 있다.
200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