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문제론
정원식 외 지음 / 교육과학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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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개최된 교사들의 집단 연가 투쟁이 시사하듯, 신자유주의와 시장경쟁원리에 근거한 7차교육과정과 특권층 자녀를 위한 귀족학교인 자립형 사립학교를 사수하려는 교육부 측과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교육평등과 공교육을 사수하려는 전교조 측의 첨예한 대립은 오늘날 한국교육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육문제론』은 41명의 교육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여 발달단계별 교육, 교육의 본질적 측면, 교육정책, 평가의 실천, 정의적 교육, 특수교육, 주요쟁점들, 개혁의 과제 등 8개 부문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리고 각 소주제별 각론마다 참고문헌과 추천도서를 명시하여 보다 심오한 내용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제1부 발달단계별 교육은 우리나라 유아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평생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발제 형식의 글이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타개해나가기 위해서는 교육현실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중등교육 문제에서는 오늘날 우리 중등교육이 지향해야할 교양의 완성과 고등교육의 준비라는 두 목표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후자 쪽에 치중함으로써 소기의 교육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으며, 고등교육 문제에 있어선, 오늘날 우리 대학들의 양적 팽창에 따른 질적 내용의 부실이 초래하는 대학 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생교육 문제에서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평생교육을 교육학의 하부연구영역쯤으로 이해하여 '평생교육이 성인교육 혹은 사회교육을 전공하려는 사람들의 전유물'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지만, 한국교육의 문제점는 너무 매너리즘에 빠져 교육 현실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타성과 관성에 의존하려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교육의 문제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교육의 본질보다는 제도를 중시하며, 둘째, 학교교육에 대한 과의존(過依存)을 하며, 셋째, 교육을 출세의 수단시하며, 넷째, 정부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지주의(主知主義)적 교육성향을 탈피하여 인간교육을 중시하고 지식보다는 지혜를 강조하며, 타율적 주입보다는 자발적 탐구가 요구된다. 또한 과밀학급 해소와 교사의 소명의식 고취, 국제문화교류의 촉진을 통해 지속적인 학교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을 근거로 『한국교육문제론』이 일반독자들에게 한국교육의 실상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내용과 구성이 논문식으로 구성되어 자연스럽게 읽히는 맛이 떨어지고 여러 사람이 공동 집필하여 개인의 견해차가 다소 존재하겠지만, 오늘날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 중 한사람으로서 강호에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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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문학의 길잡이 1 - 영국문학
영미문학연구회 엮음 / 창비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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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부전공연수를 받던 중 영미문학사에 대한 글을 번역하면서 영미문학에 대한 개괄적이면서 전문적인 개론서가 없을까, 몹시 안타까운 적이 있었다.

이번 영미문학연구회에서 펴낸 <영미문학의 길잡이>는 이런 아쉬움과 걱정을 일시에 해소시켜 준 영미문학사 분야의 위대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69명의 소장 영문학자들이 6년 동안에 걸쳐 집필한 내용을 여러 차례의 수정과 토론을 거쳐 하나의 완성된 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우선 각 단원마다 '추천문헌'을 달아 더 자세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며, 각 전공자들이 해당 분야를 나누어 집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전문적 깊이와 평이한 해설을 겸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빼어난 장점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문학사의 흐름과 개관에 치중한 나머지 개별 작품에 대해 정밀히 분석할 수 있는 자료를 싣지 못했다. '노튼 영문학 엔솔로지'처럼 주요 작품에 대해 강독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몇몇 단원(20세기 영문학)에서는 몇 개의 작품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만 우리말 번역만 있을 뿐 영문 원본이 없다. 이는 각주로 처리하여 좀더 깊이 있게 공부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둘째, 문학도 당대의 역사와 사회상을 벗어나 설명할 수 없듯이 당대의 문화를 반영하는 적절한 화보나 사진이 없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이는 글의 내용을 보충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문학사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당대의 작품을 강독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독자들에게 각 시대별로 주요 작가의 작품 일부를 선별하여 텍스트로 소개하는 방법도 영문학 이해의 또다른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책이 일반 독자와 영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위해 씌여졌다면 충분히 그러한 점을 배려했어야만 했다.

끝으로, 권말 부록으로 영국 왕조 계보와 주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연대표가 있었더라면 책을 읽고난 후 독자들이 읽은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텐데 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 또한 아쉽다.

결론적으로 <영미문학의 길잡이>가 각 시대별 전공자들의 학제간 협력으로 좋은 책을 만들어내게 되었지만 이러한 점을 시급히 보완하여 기왕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으며, 차제에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전공자들에게도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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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이성부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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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번잡한 세상을 떠나 산에 묻히고 싶은 충동을 누구나 한번쯤 느껴보았을 것이다. 산은 현실의 피난처나 은신처가 아닌 마음의 또 다른 고향이다. 왠지 친근하고 포근한 기분이 들면서 위로 받을 수 있고 또 행운이 따른다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한 동료들과의 산행보다 혼자 호젓하게 걸을 때 더욱 그러하다.

이성부 시인의 <지리산>은 오랜 산행 경험 끝에 얻은 귀중한 삶의 결정체요 보석이다. 산을 오르는 일은 사심을 버리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도 사심을 버리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버리고 산에 전념함으로써 다시 '지리산'이라는 연작시를 쓸 수가 있었다. 산으로 말미암아 다시 시를 되찾은 셈이다.

'지리산'의 빼어난 점은 산을 현실에 대한 단순한 도피처나 은일처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인은 대성골에서 빨치산의 비트를 찾아내며, 이현상과 정순덕을 만나며 숱한 사람의 역사를 찾아낸다. 여기엔 '사람의 삶·풍속·인문·사상·언어가 있'고 산의 희로애락이 숨어 있다. 사람의 역사를 찾는 비결은 '산을 바라보는 요령'에서 비롯된다. '나뭇꾼이 먼산 바라보는 것과/ 선비가 먼산 바라보는 것이/ 어떻게 다를까/ 점필재는 산 바라보는 데에 요령이 있다고 말하였다'('유두류록이 헤아리는 산')

산의 모습은 결코 서두른다고 보여지는 것은 아니다. 산을 단지 오르고 정복하는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정신의 먹이를 찾는' 성스러운 곳으로 바라보며 한발짝 뒤로 물러날 때 산은 어느새 우리 곁에 친근하게 와 있게 된다. '지리산을 여러 차례 오르내렸는데 그 모습 모르고만 다녔다 이 골 저 골 이 등성이 저 등성이 많이 더투고 헤집고 돌아다녀도 그 산은 저를 보여주지 않았다 (중략) 사랑하는 것들 멀리 떨어져 바라보아야 더 잘 보이느니'('보석')

또한 산을 바라보는 요령에는 주체적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의 산천을 '산경표'에 의거한 마루금과 물줄기로 바라보며, 남명선생을 비롯 여암이나 점필재, 매천 도선국사의 사상을 되새겨보는 것도 선인과의 살아 있는 대화요 과거와 현재의 교감인 것이다. '하늘이 울어도 산은 울지 않는다는/ 크고 넉넉한 마음/ 벼슬길 마다하던 그 까닭 알겠거니/ 소인배 들끓는 세상에서는/ 군자가 저를 감추어 더/ 고요해지는 일 내 알겠거니'('남명선생')

시인의 시선은 한걸음 나가 지리산 계곡과 능선 곳곳에 묻혀있는 민중들의 아픈 역사와 처절한 투쟁에 주목한다. '오십년 전에도 백년 전에도 오백년 전에도/ 좌우 저 골짜기 속의 아비규환 피비릿내/ 이 봉우리는 굽어보며 얼굴을 찡그리다가/ 두 주먹 불끈 쥐다가 마침내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오늘은 내가 땀 범벅이 된 얼굴로/ 그 울음에 내 볼을 비빈다'('통곡봉은 아직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가') 시가 어찌 대자연의 아름다움만 노래한다해서 시가 되겠는가. 당대의 현실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안목이야말로 시의 또다른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에서도 안일과 안정과 안주는 경계의 대상이듯이 시인이 산을 오를 때도 편안한 길보다는 암벽 같은 어려운 길을 더 선호하게 된다. 삶이든 문학이든 어려운 역경과 고난을 거쳐 열매를 맺게 될 때 희열은 배가되고 그 결과는 더욱 값진 것이 된다.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오른다. '지리산'을 배낭에 넣고서 큰산의 넉넉함을 배우는 심정으로 때로 육신과 심신이 고달플 때 정상에서 시를 펼쳐보면 내 마음 속 산 하나에 이르는 길이 아스라이 손에 잡힐 것이다.

올 가을엔 다시 지리산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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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지음 / 동천사 / 198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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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바다 성산포> 전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리움과 고독과 외로움이다. 하지만 그것은 칼로 물을 베듯 시를 읽고 나면 그리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바다를 비롯한 대자연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듯이 언제나 인간에게 인자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무자비한 것이며 선망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인 것이다. 간혹 바다로 인한 슬픔이나 죽음에 대해 시적 화자가 말하는 것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푸른 바닷물처럼 망연하고 태연자약해서 도무지 눈물이 나지 않을 정도이다. 간간이 시집 속에 나오는 삽화처럼 하나의 대상처럼 보일 뿐이다.

70년대 말 그 암울했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누구나 한번쯤 술병을 차고 세속을 떠나 바다와 같은 대자연 속에 은일하고 싶은 충동도 있었을 것이다. '술은 내가 마시는데 /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술에 취한 바다')라는 구절에서 주체와 객체가 전도된 상황이 단순히 취중의 상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행간의 숨은 뜻도 있으련만 시적 호흡의 너무 완만하여 독자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는 것을 애써 파도처럼 지워버린다.

시집 후기에서 시인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작가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책 몇 권과 그림도구를 지닌 채 여러 섬을 여행했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망망대해 같은 많은 세월 동안 파도와 맞서 견뎌온 기암절벽을 보고서 자신이 그 바위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으며 그 때의 주체할 수 없었던 감정을 시로써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시인의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는 달리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의외로 4·4조의 기본 리듬을 바탕으로 짧은 행으로 정갈하게 마감된 시편들이 많다. 우선 시적 리듬을 살릴 수 있어 좋고, 암송에 적당한 분량이며 적절한 여백처리가 바다처럼 여유 있게 보인다. 아마 이 점이 이 시집이 지니는 장점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또한 비슷한 유형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감정의 가파른 기복을 없애면서 읽는 이의 부담감도 줄이고 있다. "해도 달도 바다에 눕고나니 / 밤이 된다 / 하는 수 없이 나도 / 바다에 누워서 / 밤이 되어 버린다"('낮에서 밤으로') 평범하면서도 무리하지 않는 작시법이 앞서 말했듯이 단점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우리네 인생사도 삶의 기복이 있고, 때론 슬플 때와 기쁠 때가 있는 법, 대자연인 바다도 파도가 흉용할 때가 있는가 하면 거울 같이 잔잔할 때도 있는데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너무나 목가적이고 자연적이다. 그러기에 시를 읽노라면 마음이 상쾌하고 후련하지만 읽고 난 후엔 마음 속 깊이 오랫동안 메아리치는 잔잔한 감동이 없다.

성산 일출봉에서 우도를 바라보며 읽는 시가 바다에 뿌려져 바다에서 나오는 시가 될 것이 아니라, 성산읍 쪽을 바라보며 제주 잠녀들의 아픈 속내와 '순이 삼촌'의 슬픈 역사도 한 잔 술에 얘기할 수 있는 시가 되면 좋으련만,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기엔 지나온 세월이 무심하다. 초판이 간행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월의 간극이 크다할지라도 넘어야 할 제주의 역사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다시 무더운 여름 휴가철이다. 시집 몇 권과 노트북을 들고 조용한 산사를 찾겠다는 당초의 생각을 접고 저 세간의 저자거리로 내려간다. 평생의 화두가 저자거리에 있는 것을 또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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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지막 산 K2
제임스 발라드 지음, 조광희 옮김 / 눌와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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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마바드에서 보내는 마지막 편지 -시를 사랑하는 조선생님께

어제 스카르두에서 하루종일 지프를 타고 밤늦게서야 머얼리 K2가 바라보이는 아스콜리에 도착했습니다. 꼬불꼬불한 바윗길을 헤치고 가는 도중 만났던 시가르강의 맑고 푸르른 물줄기는 저멀리 K2에서 내려오는 눈과 얼음이 녹은 물이었는데, 그 짙은 푸르름을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지금도 그 광경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시가르 공원 휴게소에서 비스킷과 구운 치킨조각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발길을 재촉했지만 다쏘와 통골 사이의 강들은 수위가 불규칙했고 도로는 폭우로 꽤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지프차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까 말까한 면적만 남아 있어 무척이나 힘든 하루 여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메일을 K2모텔에서 확인하고서 이곳 아스콜리로 향하는 길에서 선생님이 말한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한 세계를 아는 것이다'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6년 전 K2등정 후 하산 도중 폭풍우에 휘말려 운명을 달리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유명한 스코틀랜드 산악인 '알리슨 하그리브스'에 대한 생각을 또 해봅니다. 저도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했기에 자신의 삶을 살다간 그녀의 생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그녀의 아들과 딸이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엄마와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이곳 K2까지 왔던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제가 그들이 갔던 발자취를 따라 K2가 가까이 바라다 보이는 발토르 빙하까지 가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도 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시를 '다음카페'에서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중 '꿈에서'라는 시가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우린 때론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고통과 슬픔을 회피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껴안고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슬픔과 고통은 놀랄 정도로 빠른 치유를 보입니다. 알리슨의 자녀들(겨우 6살, 4살인)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꺼이 엄마의 마지막 산 K2에 가보고 싶어했을 때, 보통사람들이라면 말렸을 테지만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엄마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듯이. 시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현실에서 겪는 즐거움이나 쾌락, 그리고 슬픔과 고통까지도 함께 하면서 아우를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노동으로 힘든 자기네 국민들에게 일터까지 찾아가서 시를 읽어주고 위로했듯이 시는 늘 우리의 삶과 함께 하지 않을까요?

호토에서 통골 가는 사이,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수상의 지시로 세워진 알리슨의 추모 동판을 보았습니다. '신들의 어머니여/ 당신이 간직한 놀라움들/ 이다지도 작은 인간이 어찌/ 그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으리요' 다시 한번 대자연의 위대함에 고개 숙여지는 아스콜리의 밤, 내일은 파유를 향해 떠나고자 합니다. 이번 트레킹이 한편으론 위험하고 크레바스와 낙석지대가 도사리고 있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인샬라!
아스콜리에서 프루스트 드림

이글은 제임스 발라드가 쓴 <엄마의 마지막 산 K2>를 읽고서 제 몸보다 먼저 발토르 빙하를 향해 떠난 제 마음을 적어본 글입니다. 알리슨의 아들과 딸, 톰과 케이트가 엄마에게 꽃을 바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 글썽이며 가슴 뭉클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또 K2를 오르기 위해 언젠가 이슬라마바드로 떠나렵니다. 설사 그것이 돌아옴을 전제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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