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산 K2
제임스 발라드 지음, 조광희 옮김 / 눌와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이슬라마바드에서 보내는 마지막 편지 -시를 사랑하는 조선생님께

어제 스카르두에서 하루종일 지프를 타고 밤늦게서야 머얼리 K2가 바라보이는 아스콜리에 도착했습니다. 꼬불꼬불한 바윗길을 헤치고 가는 도중 만났던 시가르강의 맑고 푸르른 물줄기는 저멀리 K2에서 내려오는 눈과 얼음이 녹은 물이었는데, 그 짙은 푸르름을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지금도 그 광경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시가르 공원 휴게소에서 비스킷과 구운 치킨조각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발길을 재촉했지만 다쏘와 통골 사이의 강들은 수위가 불규칙했고 도로는 폭우로 꽤 많은 부분이 유실되어 지프차가 겨우 통과할 수 있을까 말까한 면적만 남아 있어 무척이나 힘든 하루 여정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메일을 K2모텔에서 확인하고서 이곳 아스콜리로 향하는 길에서 선생님이 말한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한 세계를 아는 것이다'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6년 전 K2등정 후 하산 도중 폭풍우에 휘말려 운명을 달리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유명한 스코틀랜드 산악인 '알리슨 하그리브스'에 대한 생각을 또 해봅니다. 저도 산을 오르는 것을 좋아했기에 자신의 삶을 살다간 그녀의 생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그녀의 아들과 딸이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엄마와 마지막 작별을 하기 위해 이곳 K2까지 왔던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지금 제가 그들이 갔던 발자취를 따라 K2가 가까이 바라다 보이는 발토르 빙하까지 가려고 마음을 먹었던 것도 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넘어 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시를 '다음카페'에서 잘 읽어보았습니다. 그중 '꿈에서'라는 시가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우린 때론 현실이 우리에게 주는 고통과 슬픔을 회피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껴안고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슬픔과 고통은 놀랄 정도로 빠른 치유를 보입니다. 알리슨의 자녀들(겨우 6살, 4살인)이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꺼이 엄마의 마지막 산 K2에 가보고 싶어했을 때, 보통사람들이라면 말렸을 테지만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엄마를 편안하게 보낼 수 있듯이. 시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현실에서 겪는 즐거움이나 쾌락, 그리고 슬픔과 고통까지도 함께 하면서 아우를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시라고 생각합니다.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노동으로 힘든 자기네 국민들에게 일터까지 찾아가서 시를 읽어주고 위로했듯이 시는 늘 우리의 삶과 함께 하지 않을까요?

호토에서 통골 가는 사이,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수상의 지시로 세워진 알리슨의 추모 동판을 보았습니다. '신들의 어머니여/ 당신이 간직한 놀라움들/ 이다지도 작은 인간이 어찌/ 그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으리요' 다시 한번 대자연의 위대함에 고개 숙여지는 아스콜리의 밤, 내일은 파유를 향해 떠나고자 합니다. 이번 트레킹이 한편으론 위험하고 크레바스와 낙석지대가 도사리고 있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인샬라!
아스콜리에서 프루스트 드림

이글은 제임스 발라드가 쓴 <엄마의 마지막 산 K2>를 읽고서 제 몸보다 먼저 발토르 빙하를 향해 떠난 제 마음을 적어본 글입니다. 알리슨의 아들과 딸, 톰과 케이트가 엄마에게 꽃을 바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 글썽이며 가슴 뭉클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또 K2를 오르기 위해 언젠가 이슬라마바드로 떠나렵니다. 설사 그것이 돌아옴을 전제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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