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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
베레나 카스트 지음, 김현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8월
평점 :
보편적으로 우리에게 나이 든다는 사실은 두려움을 일으킨다. 그 까닭은 나이 드는 것이 죽음을 향하는 일련의 과정이며,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얻는 것보다 상실하게 되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 들며 자연히 노쇠의 과정을 거치는 몸은 우리를 점점 의존적인 존재로 변모하게 만든다. 걷는 것, 책을 보는 것, 음악을 듣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행위에 대한 인지능력이 하락하면서 자신이 점점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우울함에 빠지기도 한다.
개개인의 생산성을 중요시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나이 듦의 과정을 눈엣가시로 여기곤 한다. 특히 나이 드는 과정을 늦추기 위해, 갖은 미용 시술을 과도할 정도로 병행하는 기형적인 행태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로는 늙기 전에 일찍이 인위적으로 삶을 스스로 끝내겠다는 의견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면모는 나이 듦과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단면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삶을 부여받은 인간으로서는, 나이 드는 것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앞선 과정을 거부하며 인위적인 기술을 통해 영원한 삶과 젊음을 꿈꾸는 사람도 분명히 있겠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연적으로 나이 들고 죽음에 이를 것이다.
이렇듯 운명적으로 유한한 삶이 가혹하고 비참하게 느껴질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자연스레 나이 드는 과정에 지나치게 두려움을 느끼는 탓’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더 안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서도 젊었을 때와 달리, 어쩌면 젊을 때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나이가 들어서도 행복을 느끼며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에서 그 답을 전한다.
72세로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 책의 저자는 심리학 교수로서 자신의 경험과 학문적 연구, 동년배의 대화를 바탕으로 본 책을 펴냈다.
저자는 책에서 노년기에 필요한 유연한 태도와 사고방식을 소개하며, 훗날 마냥 끔찍한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을 것만 같은 ‘우리가 상상하는 보편적인 노년에 대한 시각을 바꿀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나이 듦을 지나며 건강, 능력, 인연 등 우리가 상실하는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상실을 거듭하면서도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해당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과 마음가짐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어 좋았다. 더불어 상실로 변화하게 된 환경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기쁨을 만끽할 수 있으며, 자신이 누릴 수 있었던 지난 날의 다양한 요소에 대한 깊은 감사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정리하면 <나이 든다는 것에 관하여>는 노년기에는 모든 감각이 쇠락하고 끝내 죽어갈 순간만 남겨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감성적이고 유연하며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여 남은 삶을 행복하고 충만하게 지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함께 나이 들고 있는 모든 이의 책장에 넣어두고 싶어지는 책이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었다. 외적인 측면에 강하게 집착하는 한국인으로서는 나이 드는 과정에 강렬한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개인주의가 나날이 강해지는 와중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이러한 성향은, 노년기에 들어섰을 때 필연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어려움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미리 어떻게 노년기를 맞이할지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이 책은 노년기의 돌봄과 의존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한다. 삶에서 노년기를 마주하는 모든 사람은 돌봄과 어느 정도의 의존이 필요하다. 심지어 노년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유아기, 청소년기, 성년기 등 삶의 모든 과정에서 그 기간은 상이할지언정 순간적으로 누군가의 돌봄과 의존이 필요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노년기에 받는 돌봄과 의존을 스스로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과정으로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비록 노년기에는 젊을 때와 다르게 많은 돌봄과 의존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부분이 모든 노인을 무력하고 가치 창출이 어려운 존재로 여기게 하는 시각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었다.
부디 우리 사회가 넓은 시각에서 돌봄과 의존에 다정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