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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평점 :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 등 경이로운 감각의 세계를 인류의 역사,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인류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와 엮어 이 책은 서술하고 있다.
평소엔 생각하지 못했던 감각의 세계를 저자의 뛰어난 관찰력과 유려한 문장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권태로움에 휩싸인 채, 무언가 가슴을 뛰게 하는 예술적 영감이 퇴색되는 것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본 책이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풍부한 감수성을 불어넣어 주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 책장을 덮고 나면 내가 감각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한 마음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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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각에 대한 생각.
언어로 서술한 감각의 세계는 참 다채롭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특히 후각 파트가 가장 처음으로 자리하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냄새 맡는 걸 참 좋아해서….)
새 책 냄새, 달콤한 핸드크림 냄새, 갓 짜낸 샴푸의 냄새, 포근한 체취, 계절마다 다른 공기의 냄새. 냄새에는 여러 가지 기억이 담겨있다. 어릴 적 먹었던 꼬치 분식, 나른했던 주말 오후, 깊이 사랑했던 사람까지.
P.19 - 냄새는 침묵의 감각이고, 냄새에는 언어가 없다.
냄새는 선행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는, 언어만으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요소라는 점에서 더욱 애틋하고 매력적이다. 가령, ‘오렌지 냄새’는 오렌지의 냄새를 직접 맡아본 사람이어야 그 향을 떠올림과 동시에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살았던 그 공간이나,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들, 오롯이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냄새들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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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각에 대한 생각.
본 책에서 말하길, 인간이든 동물이든 주기적인 신체 접촉이 이루어져야 인지 능력이 향상되고, 신체기능이 올바르게 작동한다고 한다.
이 세상에 빛을 처음 맞게 될 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누군가의 손길을 받는 것. 그것은 내가 아닌 ‘타자’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한 평생 누군가의 따뜻한 품을 갈망하는 것은, 이렇듯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고 싶어서가 아닐까.
P.213 - 다른 사람을 만져주는 것은 남의 손길을 받는 것과 똑같이 치료의 힘이 있다. 신체 접촉을 제공하는 치료자 자신도 함께 치료받는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닿는 것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직접 닿는 것 또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접촉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 요즘이라 특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었다.
다른 감각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촉각을 잃게 되면 얼마나 공허할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텅빈 우주를 영원히 유영하는 기분이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몸, 보드라운 이불, 나를 위협하는 수많은 요소들을 느낄 수 없게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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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감각’. 맡고, 닿고, 맛보고, 듣고, 보고, 세상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나의 몸과 감각에 유독 감사를 표하고 싶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