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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 여전히 서툰 어른아이 당신에게 주고 싶은 다시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시 90편
신현림 엮음 / 북클라우드 / 2014년 1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219/pimg_762765198974949.jpg)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인생이 어려운 '아이'
방황하는 세상의 모든 어른아이에게.
이 시집을 읽을 때만큼은 자신을 속이지도 말며 숨기지도 말고, 편안히 어른아이를 인정했으면 한다.
일상을 신명 나게 만들고, 잊었던 꿈의 리듬을 살려 주는 내 안의 아이가 시를 읽고 기쁘게, 열정을 되찾아 살길 바란다. - 프롤로그 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의 저자 신현림시인이 방황하는 세상의 모든 어른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 90편을 엮어 언니가 동생들에게 건네주는 선물과도 같은 시집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를 출간했다.
우리 시가 외국어로 옮겨질 때 뜯겨 나가고 빛이 바래버리는 감정과 묘사는 말할 것도 없을테지만, 반대로 우리말로 옮겨진 외국 시들이 얼마나 가슴을 어루만져줄 지 내심 걱정했었다. 그럼에도 언어와 표현,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울림을 준 시들에 무척 감동했고 우리 정서에 맞게 시를 곱게 다듬으신 신현림 시인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나를 갑작스레 울리고, 때론 미소짓게 하고, 수시로 가슴을 멎게한 국내 시인들의 보물같은 시를 많이 만날수 있어 책장을 넘기는 동안이 한없이 기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오랜 시절 시를 읽고 수집해오며 좋아하는 시인들의 그룹이 형성이 되어 있었기에 다른 시를 외면한 면이 없지 않았고, 때문에 처음 알게된 시인도 더러 있었는데 하나같이 내 머리를 흔들고 가슴을 두드리는 시들이었다.
책의 뒷부분 <시를 쓴 이>의 공간에서는 작품의 시인들에대해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이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토록 아끼는 작품 '폭풍의 언덕'의 저자 '에밀리 브론테'도 시를 남겼었다는것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모두 보물같은 시들이지만 그중에 너무도 마음에 박힌 시 몇가지를 다시 한 번 들추어 느낌과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보고 싶다.
국내외 시인들의 아름답고, 슬프고, 따스한 시들이 무겁고 고단한 삶에 말라버린 마음 속 희망의 꽃씨에 물을 주어, 시에 젖어들다 보면 어느새 마음 깊은 자리에 꽃망울들이 폭죽터지듯 향기롭게 개화하는 소리를 듣게될 것이다.
그리고 때론 누구도 알지 못했던 저 깊은 곳의 식어버린 눈물 자국을 기어코 찾아내 등을 토닥이며 어깨를 빌려주는 존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page121) 다음에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 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히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너무 아파, 체념을 밥으로 먹었을 그녀의 치사한 연애가 안쓰럽다.
그리고 저 멀리, 다르지 않았던 나의 아픔이 떠올라 가슴이 시려온다.
《(page 42-43) 인생이 심심해요 -김병호
새벽 4시, 화장실 바닥을 솔로 문지르다가 사십에 여드름이
날 작정이라던 옛 여자 얼굴이 떠올라 변기에 앉았습니다
인생이 너무 심심해요
한 여자는 헐은 입으로 바닥같이 잠을 자고 작은 여자는 무릎
안쪽을 긁어요
우리 동네 잠은 얇아요
신나게 밤의 시작과 끝을 왕복하는 오토바이 때문은 아니에요
가을 같은 바람이 부는 겨울을 바라는 욕정은 봄이 뿌리는
탈진을 여운 삼아 여름을 온전히 지나온 훈장 같은 것이지만
반쪽만 땀을 흘리는 내 머리는 두 개의 계절을 온전히 비교
못합니다
가을에 가을바람이 불어도 행복해하는 이 비루한 영혼이
한 번도 진한 피를 가져보지 못해서인지
우리 동네에서 사는 일은 묽어요
일어난 자리 구겨진 이불 꾸러미 얼추 봉분이어도
기울어진 가을볕은 성겨요 그래서 볕의 뒷자리가 다 보여요
사랑이 사람에게 뱉어낸 말들 쌓인 자리에서 관 자리 만들려
퍼올린 흙 향기 날 때
발 빠진 곳 찬찬히 보니 오랜 살 더미였어요
비라도 내려야지 우리 동네 공기는 너무 밋밋해요
빗방울들, 알고 보니 떨어지는 곳이 목적지였다고 수군대다가
흐르는 일이라는 게 어쩔 줄 모르는 것들이 서로 모여 같이
부비는 일이라고
멋지게 돌아오라고
물방울들 제법 날 선 어깨로 돌아서네요
그래도 너무 심심해요 나를 뚫고 흐르는 생은≫
내게 이 시는 아내와 딸을 둔 한 가장의 외롭고 쓸쓸한 뒷모습으로 다가왔다.
마흔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랑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을거라 이야기하던 아내는 이제 아무렇지 않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고, 철부지 딸래미는 아직 어려 아빠 마음을 알까. 우리동네는 우리 집이며 가족이고, 그들의 온기와 사랑이다. 지금은 겨울처럼 차가워진 아내에게 가을 바람같은 부드러움을 부질없이 기대해 보곤 한다. 이 겨울이란 계절, 즉 사십이란 나이는 열정이 넘치던 그들의 봄과, 조금은 식어버린 여름의 나이를 거쳐 얻은 수 많은 세월의 경험으로 일구어낸 또 하나의 계절. 이제는 자고 일어난 자리 말끔히 털어 고이 접어주던 관심과 사랑은 어디 가고, 그녀는 가을볕과 같은 관심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이 역시 속이 다 보이는 어설프고 성기고 치사한, 다 식어버린 관심일 뿐이다. 도저히 이런 삶을 계속할 수는 없기에, 비라도 내려야 한다고 그는 주절거린다. 어딘가에 눈물섞인 하소연 했을 그에게, 그러나 돌아오는 답이란 것은 지금 네 곁의 인연과 네 삶이 네게 주어진 최선이며 다른 누구의 삶도 다르지 않다며 그만 힘들어하고 정신 차리라는 이야기뿐이다. 이 남자는 여전히 쓸쓸하고 외롭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짐과 고통을 내려 놓고 웃음을 짓게 만드는 시를 들추어 보며 마무리를 하려한다.
《(page 20) 살아 있는 내가 나여서 기쁘고 -리젯 우드워스 리즈
살아 있는 내가 나여서 기쁘고
하늘이 새파라니 즐거워라.
시골의 오솔길들이 반갑고
이슬 내리니 좋아라.
해가 난 다음에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린 후에 해가 나니,
할 일이 끝날 때까지
사람 사는 것이 이런 식이니.
우리가 할 것은 고작
우리 지체가 낮든 높든
하늘로 더욱 가까이
마음 자라게 애쓰는 일이니.》
이 시는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시로 여겨진다.
내게 다가온 메세지는 이것이었다.
우리가 걱정한다하여 자연의 섭리가 바뀌거나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생의 기쁨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라.
우리가 고민할 것은 오직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법일 뿐이니,
모든 짐과 고통은 그 분 앞에 다 내려 놓고, 그것이 더이상 내 짐이 아닌것을 기쁘고 감사하게 여기며 살아라.
가슴 적시는 시를 엮어 독자들에게 선물해주신 신현림시인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