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문명 - 숲이 물러난 자리에 새겨진 5,000년의 기록
존 펄린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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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숲이라는 주제로 인간의 역사를 훑어본다. 이 여정은 광막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탄할 뿐 아니라 이 숲과 나무가 인간의 삶을 위해 희생한 내력을 낱낱이 밝힌다. 그들의 시선으로 우리 인간 종을 관찰한다면 어떨까.

문명과 제국의 이름이 바뀌는 동안, 숲은 인류와 함께 흥망성쇠를 겪었다.

숲은 늘 그대로 있었고 울창해졌지만 이내 인간이 들이닥쳐 갖가지 풍요만 앗고 군림하려 들었다.

숲의 가치는 언제나 인간 종의 생각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닿아있었다. 그러나 욕망과 오만은 그릇된 판단에 저울추를 놓는다. 그냥 둘 인간이 아니다.

숲은 그냥 거저 주어진 것만 같고, 벌목은 인간이 번영과 발전의 주체가 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나무와 숲은, 뿌리로는 암석을 분해해 토양을 만들고 숲 지붕으로는 바람, 태양, 비의 직접적인 타격과 침식으로부터 토양을 보호한다.(p.621)
박쥐나 흰발생쥐와 같은 병의 숙주들을 인간으로부터 격리시키는 자연 방어 울타리와 같은 역할도 해왔다. (p.631) 무분별한 벌목과 개간은 이런 기능을 잃게 한다.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맹자는 울창하던 숲을 마구잡이로 베어 벌거숭이가 된 산을 두고 어떻게 “이것이 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겠는가.”(p.55)라는 글을 남겼다.

수천년 동안 치명적인 화재를 비롯해 몇 번의 자연재해를 견뎌낸 자이언트 세쿼이아는 고작 인간 손에 든 도끼로 동강났다. (p.606) 오천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어느 대륙 어느 문명이든 간에 같은 방식이다.

숲은 스스로 난 자리에서 인간을 맞이했고, 문명의 발달과 몰락을 모두 함께 겪어냈다. 숲이 견뎌내는 순간까지다. 이 책은 인간 문명사를 이같은 하나의 진실로 꿰어내 보인다.

자연보호라는 말이 무의미하고 동력 잃은 구호가 되지 않아야 인간에게 미래가 있다.

#오퀘스트라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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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 창비교육 성장소설 17
연여름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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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서평단
연여름 작가의 첫 청소년 장편소설.

상극인가 했는데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이야기다. 아직 때 묻지 않아서 더 용기 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인물들의 관계성이 다정하다. 소음도 음악도 결국은 삶 속에 들여놓을 수밖에 없다는 걸 긍정하면서 각자의 세계가 확장된다. 성장하는 것이다.

익숙한 현대를 배경으로 삼았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예사롭지 않다. 불멸하는 존재, 뱀파이어이자 자칭 ‘헤마’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맞물리는 때를 그린다.

주인공 영소는 ‘낮의 헤마’로 올해 274세를 맞이했지만 겉모습은 여전히 10대 후반 소녀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소리에 예민해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재채기 소리는 치명적인데 이것으로 소년, 은수와 안면을 트게 된다. 그는 할머니마저 여읜 채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중.

정상성에서 슬쩍 비켜섰다는 점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는 둘은 ‘음악’이라는 관심사로 더 가깝게 묶인다. 예기치 못한 사건들, 재난이 연이어 터지고 영소와 은수는 어느 순간 부터 매번 함께한다.

영소가 후추, 페퍼는 “사랑했던 것들이”(p.44)라고 말할 때, 밀려드는 기억은 모두 아름다운 것들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고향의 향기이고, 친구 태인에게는 아버지와의 추억 매개체다. 또 영소와 은수를 엮이게 한 재채기 역시 후추에서 비롯된 것. 그래서 제목 페퍼는 이들의 운명을 예감하게 한다.

서로에게 비밀을 터놓고 말하고 또 곡해 없이 들어주는 장면은 그 자체로 다정한 위로가 된다. 소음이 싫어서 마음을 닫아 건 존재와 기댈 곳 없어서 마음 주는 법을 망각했던 존재가 손 잡고 함께 고락을 겪어내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그저 “좋아서 하는 거“(p.254)라고 단언하는 우정이 헤마의 삶처럼 불변하길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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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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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은행잎4기

“나는 파편을 쓴다.” (p.117)

어떠한 서사나 인과관계 없이 오로지 ‘나’에 관한 문장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현학적인 단어나 심오한 비유 대신 직관적이고 명료한 서술이어서 부담 없이 읽힌다.

다채로운 주제와 그에 관한 견해를 밝힌다. 계절, 문학, 음악, 작가들부터 갖가지 취향을 나열한다. ”내 삶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p.8)라고 밝힌다. 그래서인지 사소하고 세세한 나 자신을 더 들여다보려 애쓰는 문장들은 열띤 기색이 없다. 다만 두서없이 나열된 채, 모두 ‘나’라는 존재를 그려내기 위한 ‘파편들’로 자리한다.

읽으면서 은연중에 독자인 나 역시 나를 정의하는 문장들이 떠올랐다. 작가의 문장에 대해 동조하거나 다른 견해를 덧붙여갔다. 작가가 선창하면 나는 나름의 문장으로 답가를 부르는 것이다.

그가 시인들이 그려내는 “언어적 작업”이나 “고유한 언어를 만들려는 시인의 시도”보다는 다만 “시에 담긴 사실과 아이디어를 좋아한다”(p.69)는 문장을 쓰면, 나는 그 쉽게 읽히지 않는 시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좋다고 답하거나, 또는 아무 말도 답하지 않는다.

이렇게 작가의 『자화상』을 읽는 내내, 나를 이루는 문장 파편, 기억 조각, 순간 회상 등을 모으게 된다. 무엇을 택하고 버릴지 선택은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나만의 자화상이 어렴풋하게 얼비친다.

작가가 적나라할 정도로 자기를 드러내는 때에 다소 물러서고, 같은 의견과 흥미로운 생각을 보여줄 때 다시 다가섰다. 자리에 붙박여 글을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유롭게 오가는 느낌을 감각하는 게 새뜻했다.

이 읽기의 경험은 한 생애의 처음에서부터 어느 순간까지 다다르게 하고야 만다. 삶을 관통하는 시간의 흐름이 책 표지를 매만지는 질감처럼 느껴진다.

“어머니의 복중이라는 고독과 무덤이라는 고독 사이에서 나는 많은 사람과 어울리게 될 것이다.”(p.31)

이 무수한 나날을 모아쥐고 나를 만난다.

#은행잎서재 #에두아르르베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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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소원
유은정 지음 / 반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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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서평단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둔 아티스틱 스위밍 고등부가 공포 서사의 시작점이다. 선의의 경쟁과 동경이 악의와 질투로 변하는 사이, 불행소원은 점점 정교해지고 모두를 집어삼키려 한다.

또래 집단이 모여서 일상을 함께 보낸다는 점에서 학교는 낭만과 공포 모두의 자리가 될 수 있다.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아서 더 순도 높은 사랑과 미움에 연연하기 쉬운 탓이다.

『불행소원』은 이 불안정해서 아름다운, 청춘들의 심리를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아주 사소한 악의가 지독한 저주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각도에서 비춘다.

“네가 너무 좋았어. 너랑 친해지고 싶었어. 너와 함께 듀엣을 하고 싶었어. 그게 진짜 내 소원이었어.”(p.328)

우정은 영원히, 질투는 극악하게, 미움은 다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감정에 달리 이유 붙일 겨를이 없다. 쉽게 빠져들고 밀려나고, 친구 관계가 세상 전부가 되는 시절은 분명 있다.

겪었고, 겪고, 겪을 것이다. 여기서 마음의 벽이 해체되고 읽는 내내 공포가 스민다.

그 시절만의 정서는 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방향도 갈피도 모두 그 무렵 어느 일상, 어떤 감정, 어느 친구와 연결되어 있다. 헐거이 풀어지기도 하지만 영혼이 송두리째 매이기도 한다.

그래서 공포는 무람없이 끼어든다. 아티스틱 스위밍을 연습하는 장면들, 불행의 근원인 수영장 뿐 아니라 텀블러, 정수기 물, 옆에서 손에 묻은 물 터는 사람까지 의심스럽다. “겹겹이 질투와 두려움이 끈적”(p.79)이고, 실체 없던 감정이 구체적인 “불행”을 바랄 때 더 거세진다.

물비린내 나는 문장들이 젖은 머리카락, 수영장 바닥의 균열, 불행을 읊어대는 목소리들을 앞세운다. 자꾸만 심연으로 끌어당긴다.

공들인 설정과 생생한 장면들이 영상화를 기대하게 한다. 목덜미에 오소소 돋은 게 소름인지 어디서 튄 물인지 문득 선득해진다.

불행소원 비는 법이 적힌 “메시지를 막을 방법은 없다. 불행소원을 피할 방법도 없다.“(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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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 매드앤미러 1
아밀.김종일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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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서평단

같은 한 문장에서 시작된 다른 두 이야기, 매드앤미러 시리즈 1권이다.

아밀 작가의 「아름다움에 관한 모든 것」과 김종일 작가의 「해마」가 한 권으로 묶였다. 두 작가의 세계관은 각각 다르지만 아래 하나의 문장에서 태동했다.

: 행복한 신혼, 죽음에서 돌아온 남편이 문득 낯설게 느껴진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 문장은 선득하다. 담담히 공포를 예고한다. 한창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기 급급할 신혼 생활, 당연히 죽음은 멀 것이다. 사랑에 겨워 방금 영원을 맹세한 남편이 낯설 리가 없지 않나.

그러나 아밀과 김종일은 아주 멋지게 해낸다. 각자 고유한 문체와 서사로 쌓아올린 이야기들은 따로 읽어도, 연달아 읽어도 좋다.

“지금 그 말…… 비유적 표현이야, 직설적 표현이야?”(p.84)

함락되지 않을 것만 같던 열애의 요새는 의심이 돋는 순간 무력해진다. 사랑에 갖다붙이는 영원이나 맹세와 같은 말들은 허황된 겉치레나 다름없어진다.

두 작품 속 아내 은진과 회영은 저마다의 이유로 각자의 남편 동우와 시광을 의심하게 된다. 신뢰가 깨지게 만드는 일의 진위와 상관없다. 그저 철옹성 같던, 연인의 사랑이 무색해지는 장면들은 낯설지 않아 더 무섭다.

미의식에 관한 위선을 드러내는가 하면 동물에 대한 잔혹한 행동을 들키고도 태연하다. 아내에게 사랑을 말하던 입으로 남에게 아내를 험담하거나 “대등한 관계”(p.16)라 동의했으면서 신체적 힘의 우위를 내세우기를 주저하지도 않는다.

눈 먼 사랑으로 포장하고 감내해야 할 일상은 금세 숨통을 조여온다. 아름다운 신혼에 드리워진 한 겹 베일을 들어올리는 순간, 긴장감에 졸여진 공포가 몸피를 불린다. 익숙한 곳에서 시작해 낯선 지점까지 가닿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도파민 도는 감각에 충실하면서 인간의 다양성과 사랑의 모순을 드러내는 게 인상적이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입체감 있는 캐릭터들의 설정이 끝까지 소름 돋게 한다.

“살아라, 언젠가는 죽어야 하니.”(p.252)



이 매드앤미러 시리즈는 소설 속에 반드시 ‘매미’가 등장한다. 1.매미 찾기 미션과 2. 작품 속에 숨겨진 상대 작가의 파트 찾기 미션은 책을 다각도로 즐기게 한다.

특히, 매미는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되기보다는 의미 있는 장면 속에서 강조점을 찍는 상징처럼 나타나곤 했다.

두 작품을 각각 읽다 보면 기시감이 드는 장면과 대사들을 마주하게 된다. 사람 사는 게 저마다 비슷하면서 나름으로 다르다는 게 와 닿는다.

단순히 읽기에서 벗어나서 더 적극적으로 탐구하며 읽기는 작품에 매료되는 깊이를 다르게 한다. (다 읽으면 책에 미션 해답이 부록으로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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