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죽어감 - 죽어가는 사람이 의사, 간호사, 성직자 그리고 가족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이진 옮김 / 청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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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지가 어언 4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의사로써 환자가 제대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 특히 죽어가는 환자에 대한 처우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직접 세미나팀을 만들어 죽음과 좀더 가까이에 있는 시한부환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교류를 맺어가면서 의사 입장에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정리 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사람이 큰 병에 걸려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게되는 통상적인 과정 '부정과 고립>분노>협상>우울>수용'을 정립하고 그때에 의료진이나 가족등이 어떠한 태도로 환자를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나와 같은 일반인도 읽으면 좋겠지만,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환자를 직접 대면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환자에게 그야말로 '신'과같은 존재이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사의 '희망'적인 말 한마디에 큰 위안과 용기를 얻고 어떤 상황이든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의사들에게 환자는 그저 '치료해야할 무엇'이라고 밖에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한 사람이 그 많은 사람의 생명과 안위를 돌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힘든 일이지만, 의사가 환자에게 가지는 위치를 봤을때 의사는 환자를 '그 무엇'이 아닌 '사람'으로 진정성 있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마, 의과과정에 이러한 과목이 추가되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의사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직업이여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그런데 의학과 의사와는 별개로, 과연 '죽음'이라는 것이 꼭 터부시 되고,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두려워해야 할 무엇이라고 인식되어있는 현시태가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많은 질병들을 극복해 내었다. 특히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 결핵과 같은 병들로 아직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죽는 일은 많이 드물어졌다. 사람들은 예전보다 훨씬 오래살게 되었다.

그렇다고 인간이 '죽음'을 극복한 것은 아니다.

'生者必滅'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다. 어느 누구도 영원히 살수 없다.

사람이 산다고 하는것은 내 의식을 가지고 내 의지로 무엇인가를 하고 생각하고 즐기고 먹고 노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 생이 다 하여 이제 돌아가야 할때가 왔는데도, 구태여 '죽음'을 터부시하며 하루라도 생을 연장하려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현대의학이 발전하기 전, 나 어렸을적 시골마을에서만 해서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객사'라고 생각하며 위급해 지면 집으로 모시거나, 아예, 늙어 병들면 집에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다가 가족들이 둘러 앉아 있는 곳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파서 다 돌아가시게 된 분도 부득불 산소마스크를 끼워 하루하루 생명연장에 공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것이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죽음인지는 뻔한 정답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러한 죽음에 대한 것을 표현하는 일은 '불경스러운'일이 되어버렸다.

45년전 퀴블러 로스 박사가 안타깝게 생각했던 현상이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죽음'에 대한 다른 성찰이 필요하다. 죽음도 삶의 과정중 하나. 그가 사람이라면 사람답게 대우받으며 따뜻하고 안락한 분위기에서 죽음을 맞을수 있도록 하는 죽음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죽음과죽어감 #엘리자베스퀴블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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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 미치다 - 박한식 회고록
박한식 지음 / 삼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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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박한식 교수의 '평화에 미치다' 회고록 출판 기념회를 유튜브 생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박한식'이라는 이름을 그 때 처음 들었다. 출판기념회는 온라인을 통해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이원 방송으로 진행되었는데, 미국에 계신 박한식 교수와 한국에 있는 이재봉 교수가 즉석에서 주고 받는 대담이 참 인상적이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미국과 한국이라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듯한 진행에, 세상이 많이 좋아졌구나... 라는 노인네같은 생각을 하며 보았다.

그리고 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들 면면이 또 대단했다. 국회의원, 광복회 회장, 정부관료에서 부터 통일운동가들까지... 도대체 '박한식'이란 분이 어떤 분이시길래 회고록을 출판했다고, 이렇게 국제적이고도 국가적으로 크게 출판기념회까지 하다니...!

박한식교수가 이번에 출간하신 회고록의 제목이 '평화에 미치다'이고 보니, 평화라는 것에 대한 대단한 신념과 활약이 있으셨겠거니,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들긴 했지만, 대담내내 '나의 평화병' 운운을 듣고 있자니, '평화병'이라고 까지 하시는 것은 좀 과한측면이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반발심이 들었던것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박한식 교수의 '평화병'은 그야말로 그가 평생에 걸쳐 겪어온 '병'이며 그 병을 이 세상 누구보다 치열하게 앓으신 분이며, 그 병으로 인한 그 분이 만들어 오신 업적을 보건대, 스스로 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에게 '평화병'에 있어서는 단연코 세계 제일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분이기를 추앙해 마지 않게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1994년 엄혹한 한반도 전쟁위기 속에서 지미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조선(이 책에서는 북한을 북한의 정식국호를 줄인말로 조선이라는 용어로 쓰고 있다.)을 전격 방문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막후에서 전쟁이 아닌 불안하나마 평화가 지속될수 있게 하셨던 분, 학자로써 1981년 부터 거의 매년 조선과 한국을 방문하며 끊임없이 평화와 통일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애써 오신분, 1980년부터 중국 흑룡강성, 장춘, 연변 일대를 방문해, 혼자 무거운 '배타맥스'카메라를 메고 오지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의 사연을 담아 KBS에 보내 이산가족을 만날수 있게 하신분, 1990년대 후반 조선의 '고난의 행군'시기 굶어죽는 동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조선의 학자들을 미국의 선진 농업지, 양계장등에 초청해 기술전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하려고 하셨던 분...

이런 분이야 말로 정말 '평하에 미쳤다'라는 표현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음을 깊이 절감하며, 박한식 교수의 '평화병'이야말로 불치의 병이면서도 우리 민족의 축복의 병 이라고 할수 있는것 같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이 분의 끊임없는 '실천력'이었다. 미국에서 종신교수직을 받아 그저 편히 연구하며 먹고 살수도 있었을 텐데, 교수님은 한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 항상 현장의 맨앞에 서 있는 '평화 실천가' 였다는 것이다.

박한식 교수님 자체가 1939년 만주 흑룡강성에 태어난 재외동포였다가 해방 된 해 가족의 안위 문제로 대부분의 가족을 등뒤로 한채 평양-대구로 내려와 살다 미국으로 유학가 미국시민권자가 된 재외동포에 이산가족 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분단과 냉전의 골은 깊어져만 갔고, 중국에 있을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을 찾는것은 어불성설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었다. 하지만 1979년 미-중 수교가 수립되고 중국에 있는 가족을 찾을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미국내 인맥과 중국인맥을 동원해 '덩샤오핑'부주석을 만나 중국에 있는 가족을 찾게 되었고 감격의 이산가족 상봉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산가족을 만났으니, 자신의 '행복'으로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한식교수는 그러지 않았다. 흑룡강성을 비롯한 만주전역에 퍼져있는 이산가족들의 아픔 또한 보듬고 작은 체구에 큰 카메라를 끌고 혼자서 오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사람이라도 이산가족을 찾을수 있도록 고생한 '실천가'였다는 것이다.

정말 훌륭한 분이시다. 대부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교수님'정도 되시는 분들은 점잖게, 교양있게, 자신의 위신을 세우며, 유유자적 방관자 혹은 한단계 아래를 내려다보는 제3자로써, 길바닥에 내려앉아 스스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인데(나의 교수님들에 대한 사고가 너무 비관적인가..?) 박한식 교수는 자신의 이산가족 상봉의 경험으로 알게된 '이산가족의 한'은 만남으로써만 해결될수 있다는 결론을 몸소 실천으로 행동함으로써 숭고한 '평화'에 대한 실천을 과감히 감행하셨다.

그리고 조국의 고질적인 가장 큰 병폐인 분단을 통일로 바꾸고자 그가 할수 있는 모든 일을 실천하셨다. 그 실천은 대학강단에서 부터 시작하여, 직접 조선을 방문해 끊임없이 조선사회의 본질적 모습을 알아가고자 실천하셨으며, 북-미간 대화가 필요한 긴박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 꼭 성사시키고야 말았다. 엄혹한 조선의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자신이 실천할수 있는 일에 아낌없이 나서서 일하셨다.

과히 박한식교수의 '실천력'은 누구에 비할데가 없으며, 인생을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은 인생의 승리자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박한식교수의 실천력은 세상을 감동시켜 마침내 노벨 평화상 예비상이라 불리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수상하셨으며 45년간 몸담았던 조지아대학으로부터 '박한식기금석좌교수직'을 받기까지 하셨다.

박한식 교수는 2015년 12월 76살의 나이로 대학을 은퇴하셨다. 은퇴후에도 2017년 방대한 저서인 '세계화:축복인가 저주인가?'를 집필하시고, 올해 또 회고록을 내셨다. 정말 그의 '평화병'과 '실천력'은 가히 우러를 만 하다.

이정도 했으면 한 사람이 할수 있는 대단한 일생의 업적을 남겼다고 할수 있겠으나, 박한식교수의 실천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박한식교수는 평생해오신 평화 통일운동의 연장으로 '변증법적 통일론'을 내놓으셨다.

기존의 다양한 통일론이 지닌 결함을 극복할수 있는 대안으로 내가 제시한바 있는 '변증법적 통일론'은 먼저 한국과 조선간의 현격한 '이질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나아가 동질성을 토대로 한국과 조선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한민족 특유의 통일방안(Korean Style of Reunification Blueprint)'이다.

평화에 미치다 351p

75년간의 분단에서 비롯된 이질성을 극복하고 한 민족으로써의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조선은 조선대로 내부모순을 해결하고, 한국은 한국대로 내부모순을 해결해 나가면서 통일로 향해 나아가자는 학설이다.

그러면서 책의 말미에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셨다.

한민족 모두가 공유하는 통일관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의 진보, 보수 대표자, 조선의 대표자, 그리고 재외동포 대표자가 모두 참여하는 '범민족 통일 추진위원회(가칭)'을 구성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고 발전시키기를 구상하셨다.

그리고 특별하게 '한 민족, 두 국가, 그리고 세 정부' 통일모델과 '통일· 평화대학 설립'을 제안하셨다.

나도 그동안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독특한 통일 모델이다.

이는 통일이 절체절명의 민족 과제라는 사명을 가지고 한국과 조선 두 국가의 현존 체제가 상호존중 아래 존손하면서, 제3의 정부, 즉 통일 정부를 구성하고 수립하자는 방안이다.

평화에 미치다 366p

제3의 정부는 비무장지대를 영토로 하여 통일과 관련한 준비를 하는 제3의 정부로, 제3의 정부의 모습을 제시하고 도안, 설계하는 일을 시급히 하기 위하여 우선 '통일· 평화대학'을 설립하자는 것이 박한식교수의 주장이다.

우선은 남북이 함께 공존했던 역사가 있는 '개성'에 설립하여 제3의 정부를 만들어 통일에 실질적으로 다가가자는 것이다.

그동안 통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나로써도 처음듣는 말이면서도,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통일방안에 새로운 방향과 물꼬를 터주는 듯한 새로운 발상에 기쁨과 놀라움이 교차할 뿐이다.

박한식 교수의 발상이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실천'가능한 방법이기에 정말 하루빨리 실현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마음이 바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정부와 조선의 정치지도자들이 과연 박한식 교수의 담론을 받아들일수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아직도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지 못해 안달하는 한국의 위정자들을 바라보며 그야말로 '한심'해서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ㅠㅠ

마지막으로 '통일'을 꼭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인 분들에게 박한식 교수의 한마디를 올린다.

해방 이래 지난 75년의 세월동안 정통성 경쟁과 체제 경쟁으로 점철되어온 남북관계를 볼때, 통일 없이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복하건대 평화가 통일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통일이 평화를 이루는 길이다

평화에 미치다 3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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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정하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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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의 가장자리'를 좋아하고 가장자리를 즐길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타고난 성향 차이이겠지만, 누구나 언젠가 어디에서는 꼭 중심의 자리에, 주목받는 자리에 서고 싶어할 것이다.

파거 파머는 마침내 80세의 나이에 죽음을 생각하며, 평생을 살며 느낀 여러가지들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이 책을 썼으며, 그 책의 제목을 '모든것의 가장자리'라고 지었다. 젊음의 광기, 혹은 열정을 두루 겪고 나서 느끼는 현자의 느긋함 이라고 할까. 이제는 그 속에 파묻혀 허우적거리기 보다는 그것을 전체적으로 조망할수 있는, 직접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닌 정리된 시선으로 바라볼수 있는 '가장자리'의 시선을 저자는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전체 숲은 조망하지 못하고, 그 숲의 자잘한 나무 속에서 앞만보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움켜쥐려고, 무언가 돋보이려고, 작은 승리라도 쟁취하려고, 계속 중심을 추구하지만 결국엔 허우적거리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

이 책 '모든것의 가장자리에서'는 모든것들을 조망하고 지혜롭게 판단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생의 마지막이 될 메세지 일지도 모르는 '가장자리'를 선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부제로 '나이듦에 관한 일곱가지 프리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총 7가지의 주제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나눠주고 있다.

가장자리의 시선에서 시작하여 시선을 내 안으로, 세상 밖으로 , 이상으로, 현실로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통찰한 바를 마치 '프리즘'에 비춰서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색이 나타나는 것처럼 선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두가지 깊은 감명과 성찰을 하게 된 주제를 얻었다.

바로 '참자아'와 '온전함'에 관한 것이다.

'참자아는 우리가 지상에 도달할때 함께하는 자아이며, 그저 태어난 모습 그대로의 우리가 되길 원하는 자아다.(109p)'

아마 생을 사는 모든이들의 고민이 이것 아닐까? 내가 지금 여기에 이런모습으로 태어나고 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진정 어떠한 사람인지... 이런것에 대해.

다들 학교에 가라니까, 공부를 하라니까, 좋은 직장에 취직하라니까, 결혼을 하라니까, 아이를 낳으라고 하니까... 하니까 하니까... 이렇게 세상에 떠밀려 살다보니, 진정 내가 어떤 사람인지,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내가 이 지상에 도달할때 함께한 '자아'를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참자아'로 살지 못한다면 항상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만인 상태로 살아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도 아직 나의 '참자아'를 찾지 못한것 같다. 그저 떠밀려 살아온 인생이지 않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참자아'를 다시한번 떠올리며 찾게 되고, 또 어느정도 성찰에 이른것 같아 내심 기쁘다.

'온전함은 목적이다, 하지만 온전함을 완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의 필수 요소로써 부서짐의 수용을 의미한다.(241p)'

이보다 온전함에 대한 의미를 정확히 표현한 말이 있을까. 세상에 '완전함'이란 것이 존재할수 있을것인가. 그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에서나 가능한 일일것이고, 우리는 완전함이 아닌 '온전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 온전함이란 '부서짐의 수용'에서 가능해 진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이리 저리 좌충우돌 하면서 우리는 비로서 나로 온전한 '참자아'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우리는 많이 부딪치고 부서져 봐야 할 것이다.

실수로 점철된 삶이라고 여길수록 나의 온전함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의 온전함에 가까이 가는데 만날 가시밭길이 두려워 '자기 기만적인' 삶을 산다면 우리는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나'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모든것의가장자리에서 #참자아 #파커j파머 #온전함


** 채집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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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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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 '김연수'를 좋아한다.

예전에 그가 쓴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홀딱 반했었다.

일제시대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소설을 쓸수 있는 작가라니!

그 후 그가 낸 책들은 거의 본것 같다...

'세상의 끝 여자친구'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등 그의 책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닌 같은 세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글들에서 얼핏얼핏 느껴지는 90년대 대학의 분위기들.. 그런것이 좋다.

물론 글을 잘쓰는것이 첫번째 이겠지만, 그가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이를테면 90년대 대학생들, 특히 '운동권'이라고 명명할 이들의 삶이 조금은 내비쳐 보인다는 점이 좋다.

이상하게 한국사회에서 90년대 학번들의 삶의 지워져 있다. 특히 90년대 대학에서 '데모'를 했던 '운동권'의 삶은 철저히 지워져 있다.

운동권이라면 마땅히 87년 6월 항쟁의 주인공들인 '386', 아니 지금은 '586'이 된 그들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러니까 9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우리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되어있다.

그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또는 90년대 '민주화'시대에도 '운동권'이 있었던가 반문하기까지 한다.

90년대 후배 운동권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냥 '586'들은 대통령에 국회의원에 모두들 한자리씩 차지하며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지만, 우리가 철저히 지워진 지금, 나는 그때의 우리의 치열함, 우리의 행위도 역사에 남겨져야 한다는 채무감에 시달리고 있다.(나 혼자...ㅎ)

이제 몇이나 기억할지 모르는 96년에 있었던 '연세대 항쟁' 이후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이적단체'로 규정되었고, 무시무시한 학생운동의 탄압으로 내가 다니던 학과의 96학번 대학교 1학년 후배들이 뭣도 제대로 잘 모르는 상태로 5명이나 구속되었던 대참사가 이어졌다. (이것은 전국적인 학생운동 탄압의 행태였다.) 그들은 단순히 그냥 집회 현장에 호기심반, 의기로움 반, 선배의 권유 반 등등으로 집회에 참석했을 뿐인데, 대학교 1학년에 '전과자'가 되어 버렸다. 96년 이후로 학생운동은 그야말로 정권의 무소불위의 탄압으로 움추려들고 힘을 잃고,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그때를 온몸으로 겪었던 나이기에, 그때의 억울함, 그때의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졸지에 대학 1학년에 뭣땜에 전과자가 된지도 모른 후배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들에 대해 아무도 기억하지도 말하지도 않는 시대에 심히 불쾌하고 유감이다.

물론 김연수 작가가 나의 이런 생각을 전적으로 표현해 준적은 없다. 그래도 적어도 그때도 '학생운동'이 존재했음을 은유적으로라도 표현해 주기에(이건 나의 주관적 생각일 수도 있다.) 감사함 마저 느끼며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이 책 '일곱해의 마지막'은 김연수 작가가 오랫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그동안 소설집이나 산문집을 내다가 장편소설을 오랫만에 내놓아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책을 발견하자 마자 읽었다.

역시 김연수 작가는 '밤은 노래한다'에서 그랬듯이 역사적 서사에 기초한 자신의 창작품을 내놓았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이라면 '분단'이라는 이 불안함이다.

일상에서 '분단'을 불안이나 불편으로 느끼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려나 모르겠지만, 분단이라는 이 기형적 현실, 더더욱 '휴전'이라는 더욱 이상한 형태로의 70여년은 세계사 전무후무한 이상한 형태임에 분명하다.

식민지에서의 해방을 우리 손으로 쟁취하지 못하였기에 우리는 강대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갈라졌고, 결국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각각의 사회체제를 갖추고 서로 등을 맞댄체 언제 끝날줄 모르는 평행성을 달리고 있다.

그 평행성에 깔려 죽을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들을 떠올려 본다.

해방 전후의 송진우, 여운형, 김구 선생들과 같이 테러로 생을 마감한 분들을 시작으로 '제주4.3' '여순항쟁'에서 학살당한 민간인들, 한국전쟁 참화에서 학살당한 수만의 '보도연맹원'들, '노근리 학살'과 같은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들.... 분단은 그냥 분단이 아니라 갈리워진 한반도 허리위에 피로 강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렇게 멋진 시를 일제시대에 썼던 멋쟁이 영어선생이었던 '백석'시인 또한 시대의 광풍에 휩쓸릴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 책 '일곱해의 마지막'은 백석시인이 고향이 '정주'인 관계로 해방이후 이북에서 살게 되었고, 그의 시풍에 대한 비판에 의해 먼 개마고원밑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된 후 절필을 하기 되기까지의 7년동안의 일을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소설로 써냈다.

분단은 이렇게 어느누구 하나의 삶도 그냥 두지 않고 남쪽이나 북쪽이나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

백석시인은 절필이후에도 오랫동안 생을 살았다. 1996년에 작고 하셨으니, 뛰어난 천재시인의 절필이후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지금은 흰눈이 내리는 겨울이 아닌 삼복의 무더운 여름이지만,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를 읽고 있자니 밖에 눈이 내리는 듯 하다.

#일곱해의마지막 #김연수 #백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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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일반판)
올리버 색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알마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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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앞으로는 '나이듦과 죽음'을 주제로 6권의 책을 읽을 것이라고 한다.

그 첫번째 책으로 '고맙습니다'를 함께 읽었다.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평생 읽어볼 기회가 없었을 책을 읽게 되어 무척 기쁘다.

'고맙습니다'는 미국의 유명 신경의학과 의사이자 그와 관련한 많은 책을 쓴 작가인 '올리버 색스'가 죽음을 체감하며 생애 마지막으로 쓴 책이다.

어느 강의에서 들은적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기전에 하는 생각은 '아! 내가 그때 돈을 더 많이 벌어 더 좋은 집을 샀더라면!' 이라던가 '더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대학교를 갔으면 좋았을걸!'과 같이 속세적인 바람에 대한 아쉬움 보다는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던 것' '용서하지 못했던거'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 등등을 아쉬어 한다는 것이었다.

ㅋㅋ 웃으며, 그렇겠지. 당연히 그러겠지. 누가 죽는 순간까지 '돈'을 더 많이 벌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후회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실상은 ㅋㅋ 웃은 그때가 지나고 나면 다시 돈과 명예, 또는 속세에서 명명하는 '성공'에 집착하며 '행복'은 미래에 저당잡힌채 죽기 전에 할 후회할 생활을 매일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올리버 색스는 죽기 직전 쓴 책에서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을 집약으로 인생을 마무리 하고 있다.

'고맙습니다'. 과연 나도 죽음을 앞둔 순간에 '더 사랑할걸' '더 많이 즐길걸' '더 친절할걸'.. 등등의 회한에 쌓인 문장보다 '고맙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인생을 마무리 할수 있을까.

올리버 색스의 책은 이번 책이 처음이지만, 이 책에서 간간히 보여준 그의 인생역경, 약물중독이라든가, 성소수자라든가, 힘든 공부과정이라든가 가족들과의 절연이라든가.. 과정을 보면 과연 마지막에 어떻게 그가 '고맙습니다'라는 담백한 언어를 마지막으로 남길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의 고비고비마다 그 고비를 넘고, 또 성찰하고 글을 쓰고 하며 인생의 달관자가 되어 마침내는 생의 모든것이 감사하였다는, 모두에게 남기는 '고맙습니다'라는 공손한 표현을 남기고 그는 떠났다.

그의 육신이 비록 지금 이땅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남긴 글들에서, 인연들에서, 행동들에서의 파장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여전히 우리와 함께 거하고 있다.

무미건조 평탄하기만 한 삶이 과연 재미있고 나를 성장시킬수 있을 것인가?

'나는 갈수록 초자연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 아니라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이 쏠린다. 자신의 내면에서 평화를 느낀다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 우리가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쳤다고 느끼면서 떳떳한 마음으로 쉴수 있는 그날로.'(56p)

죽음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할수 있는 사람은 과연 인생역경을 오롯히 직접 부딪쳤으면서도 그에 대해 당당히 열심히 살아온 자만이 할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죽음'(또 아랴? 내 앞의 날이 며칠이 남았을지는 아무도 모른다.)이 피부로 와 닿지 않지만, 적어도 죽기전에 담담하게 이 별에서의 생이 좋았었노라고 모두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할수 있는 성찰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래본다.

#고맙습니다 #올리버색스

** 책을 읽으며 채집한 문장도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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