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미치다 - 박한식 회고록
박한식 지음 / 삼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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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박한식 교수의 '평화에 미치다' 회고록 출판 기념회를 유튜브 생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박한식'이라는 이름을 그 때 처음 들었다. 출판기념회는 온라인을 통해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이원 방송으로 진행되었는데, 미국에 계신 박한식 교수와 한국에 있는 이재봉 교수가 즉석에서 주고 받는 대담이 참 인상적이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미국과 한국이라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마치 옆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듯한 진행에, 세상이 많이 좋아졌구나... 라는 노인네같은 생각을 하며 보았다.

그리고 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들 면면이 또 대단했다. 국회의원, 광복회 회장, 정부관료에서 부터 통일운동가들까지... 도대체 '박한식'이란 분이 어떤 분이시길래 회고록을 출판했다고, 이렇게 국제적이고도 국가적으로 크게 출판기념회까지 하다니...!

박한식교수가 이번에 출간하신 회고록의 제목이 '평화에 미치다'이고 보니, 평화라는 것에 대한 대단한 신념과 활약이 있으셨겠거니,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들긴 했지만, 대담내내 '나의 평화병' 운운을 듣고 있자니, '평화병'이라고 까지 하시는 것은 좀 과한측면이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반발심이 들었던것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나는 박한식 교수의 '평화병'은 그야말로 그가 평생에 걸쳐 겪어온 '병'이며 그 병을 이 세상 누구보다 치열하게 앓으신 분이며, 그 병으로 인한 그 분이 만들어 오신 업적을 보건대, 스스로 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에게 '평화병'에 있어서는 단연코 세계 제일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없는 분이기를 추앙해 마지 않게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1994년 엄혹한 한반도 전쟁위기 속에서 지미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조선(이 책에서는 북한을 북한의 정식국호를 줄인말로 조선이라는 용어로 쓰고 있다.)을 전격 방문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막후에서 전쟁이 아닌 불안하나마 평화가 지속될수 있게 하셨던 분, 학자로써 1981년 부터 거의 매년 조선과 한국을 방문하며 끊임없이 평화와 통일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애써 오신분, 1980년부터 중국 흑룡강성, 장춘, 연변 일대를 방문해, 혼자 무거운 '배타맥스'카메라를 메고 오지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의 사연을 담아 KBS에 보내 이산가족을 만날수 있게 하신분, 1990년대 후반 조선의 '고난의 행군'시기 굶어죽는 동포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조선의 학자들을 미국의 선진 농업지, 양계장등에 초청해 기술전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게 하려고 하셨던 분...

이런 분이야 말로 정말 '평하에 미쳤다'라는 표현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음을 깊이 절감하며, 박한식 교수의 '평화병'이야말로 불치의 병이면서도 우리 민족의 축복의 병 이라고 할수 있는것 같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이 분의 끊임없는 '실천력'이었다. 미국에서 종신교수직을 받아 그저 편히 연구하며 먹고 살수도 있었을 텐데, 교수님은 한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 항상 현장의 맨앞에 서 있는 '평화 실천가' 였다는 것이다.

박한식 교수님 자체가 1939년 만주 흑룡강성에 태어난 재외동포였다가 해방 된 해 가족의 안위 문제로 대부분의 가족을 등뒤로 한채 평양-대구로 내려와 살다 미국으로 유학가 미국시민권자가 된 재외동포에 이산가족 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분단과 냉전의 골은 깊어져만 갔고, 중국에 있을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을 찾는것은 어불성설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었다. 하지만 1979년 미-중 수교가 수립되고 중국에 있는 가족을 찾을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미국내 인맥과 중국인맥을 동원해 '덩샤오핑'부주석을 만나 중국에 있는 가족을 찾게 되었고 감격의 이산가족 상봉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산가족을 만났으니, 자신의 '행복'으로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한식교수는 그러지 않았다. 흑룡강성을 비롯한 만주전역에 퍼져있는 이산가족들의 아픔 또한 보듬고 작은 체구에 큰 카메라를 끌고 혼자서 오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한사람이라도 이산가족을 찾을수 있도록 고생한 '실천가'였다는 것이다.

정말 훌륭한 분이시다. 대부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교수님'정도 되시는 분들은 점잖게, 교양있게, 자신의 위신을 세우며, 유유자적 방관자 혹은 한단계 아래를 내려다보는 제3자로써, 길바닥에 내려앉아 스스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인데(나의 교수님들에 대한 사고가 너무 비관적인가..?) 박한식 교수는 자신의 이산가족 상봉의 경험으로 알게된 '이산가족의 한'은 만남으로써만 해결될수 있다는 결론을 몸소 실천으로 행동함으로써 숭고한 '평화'에 대한 실천을 과감히 감행하셨다.

그리고 조국의 고질적인 가장 큰 병폐인 분단을 통일로 바꾸고자 그가 할수 있는 모든 일을 실천하셨다. 그 실천은 대학강단에서 부터 시작하여, 직접 조선을 방문해 끊임없이 조선사회의 본질적 모습을 알아가고자 실천하셨으며, 북-미간 대화가 필요한 긴박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 꼭 성사시키고야 말았다. 엄혹한 조선의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자신이 실천할수 있는 일에 아낌없이 나서서 일하셨다.

과히 박한식교수의 '실천력'은 누구에 비할데가 없으며, 인생을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은 인생의 승리자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박한식교수의 실천력은 세상을 감동시켜 마침내 노벨 평화상 예비상이라 불리는 '간디.킹.이케다 평화상'을 수상하셨으며 45년간 몸담았던 조지아대학으로부터 '박한식기금석좌교수직'을 받기까지 하셨다.

박한식 교수는 2015년 12월 76살의 나이로 대학을 은퇴하셨다. 은퇴후에도 2017년 방대한 저서인 '세계화:축복인가 저주인가?'를 집필하시고, 올해 또 회고록을 내셨다. 정말 그의 '평화병'과 '실천력'은 가히 우러를 만 하다.

이정도 했으면 한 사람이 할수 있는 대단한 일생의 업적을 남겼다고 할수 있겠으나, 박한식교수의 실천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박한식교수는 평생해오신 평화 통일운동의 연장으로 '변증법적 통일론'을 내놓으셨다.

기존의 다양한 통일론이 지닌 결함을 극복할수 있는 대안으로 내가 제시한바 있는 '변증법적 통일론'은 먼저 한국과 조선간의 현격한 '이질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나아가 동질성을 토대로 한국과 조선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한민족 특유의 통일방안(Korean Style of Reunification Blueprint)'이다.

평화에 미치다 351p

75년간의 분단에서 비롯된 이질성을 극복하고 한 민족으로써의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조선은 조선대로 내부모순을 해결하고, 한국은 한국대로 내부모순을 해결해 나가면서 통일로 향해 나아가자는 학설이다.

그러면서 책의 말미에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셨다.

한민족 모두가 공유하는 통일관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의 진보, 보수 대표자, 조선의 대표자, 그리고 재외동포 대표자가 모두 참여하는 '범민족 통일 추진위원회(가칭)'을 구성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고 발전시키기를 구상하셨다.

그리고 특별하게 '한 민족, 두 국가, 그리고 세 정부' 통일모델과 '통일· 평화대학 설립'을 제안하셨다.

나도 그동안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독특한 통일 모델이다.

이는 통일이 절체절명의 민족 과제라는 사명을 가지고 한국과 조선 두 국가의 현존 체제가 상호존중 아래 존손하면서, 제3의 정부, 즉 통일 정부를 구성하고 수립하자는 방안이다.

평화에 미치다 366p

제3의 정부는 비무장지대를 영토로 하여 통일과 관련한 준비를 하는 제3의 정부로, 제3의 정부의 모습을 제시하고 도안, 설계하는 일을 시급히 하기 위하여 우선 '통일· 평화대학'을 설립하자는 것이 박한식교수의 주장이다.

우선은 남북이 함께 공존했던 역사가 있는 '개성'에 설립하여 제3의 정부를 만들어 통일에 실질적으로 다가가자는 것이다.

그동안 통일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나로써도 처음듣는 말이면서도,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통일방안에 새로운 방향과 물꼬를 터주는 듯한 새로운 발상에 기쁨과 놀라움이 교차할 뿐이다.

박한식 교수의 발상이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실천'가능한 방법이기에 정말 하루빨리 실현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마음이 바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정부와 조선의 정치지도자들이 과연 박한식 교수의 담론을 받아들일수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아직도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지 못해 안달하는 한국의 위정자들을 바라보며 그야말로 '한심'해서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ㅠㅠ

마지막으로 '통일'을 꼭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인 분들에게 박한식 교수의 한마디를 올린다.

해방 이래 지난 75년의 세월동안 정통성 경쟁과 체제 경쟁으로 점철되어온 남북관계를 볼때, 통일 없이 진정한 평화가 도래할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복하건대 평화가 통일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고 통일이 평화를 이루는 길이다

평화에 미치다 3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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