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 - 포스트휴먼의 시대, 우리가 생각해야 할 9가지 질문
인문브릿지연구소 지음 / 갈라파고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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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도 목소리도 없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과의 대국에서 최종승리를 거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테크놀로지가 인류의 미래가 되었음을 목격하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복잡한 심사는 알파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은 수준의 알파고를 개발한 과학자들에게 놀라운 경이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과학의 진보와 함께 인문학적 사유가 치열하게 만나 토론하고, 경계하고, 숙고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할까? 프롤로그 중

이 책을 쓴 대표 작가 조미라교수는 프롤로그에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점은 과학의 진보와 함께 인문학적 사유가 치열하게 만남이라고 하였다.

과연 형체도 목소리도 없는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경이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이토록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 인간은 발달한 과학기술을 그만큼 사유하고 활용하고 통제할수 있을까?

나도 알파고의 소식을 들으며 막연하게나마 그러한 걱정을 했었는데, 이렇게 철학자들은 이미 여러분야에 걸쳐 오래전부터 과학기술의 진보에 그와 관련한 인문학적 성찰과 질문을 해오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른 포스트휴먼 시대의 주요담론 세가지 핵심주제와 그에 따른 9개의 질문을 소주제로 선정하고 그에 대한 인류의 인문학적 성찰과 질문들, 연구성과들, 철학자의 주장들을 답으로 내 놓았다.

첫번째 핵심주제 '인간의 조건'에서는 '죽음과 기술', '인간과 기계', '기술과 자연의 소통'을 소주제로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생명도 영생할수 있게 하고 기술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어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문제를 치열하게 다루었다.

두번째 핵심주제 '기계와 공존'에서는 기술의 진보에 따라 정말 인간의 노동의 종말이 올것인가, 기술은 인간의 도덕성도 향상시킬수 있을지, 또 과학은 인간도 제작할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세번째 '미디어와 인간'에서는 '소셜미디어', '빅 데이터', '가상현실'에 대한 내용을 다루며 포스트휴먼시대의 가상세계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이용하고 적응할 것인가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주제가 다소 어렵지만, 매 소주제 앞에 그와 관련한 <스크린 속으로> 코너를 넣어 그 주제에 대해 다가가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해 놓았다는 것이다.

'1장 '죽음'도 기술로 차단할 수 있는가' 에서는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1979)를, '2장 인간은 기계보다 특별한 존재인가' 에서는 영화「A.I.」(2001)를 배치하는 등 우리가 익히 보아온 애니매이션이나 영화로 과학기술과 그에 따른 인간들의 반응, 미래의 모습 등을 보여줌으로써 그에대해 성찰할수 있게 해 놓았다.

「은하철도999」는 어린시절 즐겨 보았던 추억의 만화이다. 그때는 아름다운 '메텔'과 키작고 못생긴(?) '철이'가 우주를 떠돌며 엄마를 찾으러 다니는 내용인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자신의 몸을 기계 몸으로 대체하여 엄마와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 위해 떠돈 것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인간의 몸을 영원히 살게 한다는 '기계화 행성'에 도착했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영생을 얻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기계화 행성에서 받는 기계몸은 다름 아닌 살아 있는 생명과 맞바꾼 죽은 육체 덩어리였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25쪽).

이렇듯 이 책은 각 소주제 앞에 친근한 미디어로 주제를 설명해 주고 있어 쉽게 다가갈수도 있고, 나의 생각의 확장도 돕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현재 과학기술의 진보의 정도와 그리고 그에 맞춰 삶이 변화되고 있는 '포스트 휴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과학기술은 머지 않아 우리 인류가 육체에 국한되지 않는 가상의 세계와, 지구에 머무르지 않는 광활한 활동무대와, 노동에서의 해방과 죽음에서의 해방까지도 선사해 줄듯 하다.

과연 '행복'의 기준에서 보았을때 과학기술의 진보와 비례하며 '성장'하고 있을까?

물론 '아니다.'

먼 옛날 구석기시대의 인류와 1000년전의 인류와 지금의 인류의 행복을 비교하면 어떨까?

내 생각엔 과거와 비슷하거나, 못해졌지 않았을까 싶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안겨줬지만, 그만큼 짙은 어둠을 드리워 우리 인생을 복잡하고 또 외롭게 만들어 왔다.

이 책의 많은 주제에 대해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각기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가만히 곱씹어보면, 기술의 진보와 세상의 변화도 결국 우리 인간이 어떻게 다룰것인가 하는 관점이 중요하다고 매번 이야기하고 있는듯 하다.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지구를 파괴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을 착취하는 인간우월주의로 가는 것도 인간이 이끌 것이고, 평화로, 평등으로 친화경으로 이끄는 것 또한 우리 인류의 선택일 것이다.

이렇게 과학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때 더욱 필요한 것은 결국 인류의 현명한 지혜인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포스트휴먼시대가 행복으로 펼쳐질지, 지옥으로 떨어질지는 인류의 지혜에 달려있다.

다행인것은 이렇게 심오한 담론에 대해 이미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접점을 가지고 지혜롭게 펼쳐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인류는 발달한 과학기술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악행을 저지르지만 결국 '자연'이라는 거대한 이치를 거스르지 못하였던 것처럼, 과학기술로 무언가 파괴하거나 욕망을 채우지 않고 공존, 공생, 평화로 나아가는 포스트 휴먼의 시대를 열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인류로 보여지는 '디지털 원주민'(229쪽)들의 인문학적 성찰이 더욱이 요구되는데...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는데 또한번 생각이 가는 것은 '부모'로써 어쩔수 없는 결론인 것일까?

#인간은기계보다특별할까? #인문브릿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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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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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 이슬라 네그라는 바다, 온통 바다라네.

순간순간 넘실거리며

예,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하지.

예라고 말하며 푸르게, 물거품으로, 말발굽을 울리고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하네.

잠잠히 있을 수 없네.

나는 바다고

계속 바위섬을 두드리네.

바위섬을 설득하지 못할지라도.

푸른 표범 일곱 마리

푸른 개 일곱마리

푸른 바다 일곱 개가

일곱 개 혀로

바위섬을 훑고

입맞추고, 적시고

가슴을 두드리며

바다라는 이름을 되풀이하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中 29쪽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우편배달부 마리오에게 시란 '메타포'로 표현하는 것이라며 읊어준 자신의 시다.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 국민시인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시인이며 공산주의 정치인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소설로 실존인물인 네루다와 가공 인물 우편배달부 마리오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로 독자들로 하여금 네루다를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한다.

마리오는 '이슬라 네그라'라는 작은 어촌마을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을의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물고기 잡는 일을 하여야 하지만 도저히 그 일이 맞지 않아 방황하던 중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시인 네루다에게만 우편물을 전달하는 우편배달부가 되어 네루다와 우정을 쌓게 된다.

이야기 중 네루다는 마리오가 시를 쓸수 있도록 조언도 해주고 열렬히 사랑하는 베아트리체와 결혼에 골인하게 도와주기도 하는 등 어촌마을에 조용히 스며든다.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네루다는 병들어 죽고 만다.

칠레 또한 지난한 정치 역사를 갖고 있다. 네루다가 함께하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지만, 우파 세력은 공산당 정권의 정책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결국, 군부에 의해 대통령이 살해되고 군사 독재정권으로 이어진다.

네루다는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산당 정권시절 프랑스 대사로 나갔다가 몸이 극도로 안좋아져 네그라로 돌아오지만, 군사쿠테타 이후 가택에 연금되어 있다 결국 죽음을 맞고 만다.

마리오는 마을 사람들과 엄혹한 감시속에 네루다의 장례를 치러 주지만, 결국 그도 잡혀가 소식이 없게 된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작가 스카르메타가 창작한 소설이지만, 작가 자신이 흠모해 마지 않았던 위인의 이야기이기에 실제로 있었을짐한 이야기로 다가와, 소설이라고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배경이 되는 '네그라' 라는 마을은 네루다가 살았던 마을로 유명 관광지가 되었고, 네루다의 죽음과 장례식까지 역사 그대로의 모습이니 픽션으로만 느껴지지 않는것은 당연하리라.

스카르메타의 삶 또한 네루다와 비슷한 면이 많다. 작가이자 정치인인 것도 같고, 네루다와 같이 외국 망명생활도 했고 외국 대사직을 역임하기도 했으니, 둘의 삶은 평행선을 긋고 있다.

스카르메타는 이 책을 쓰면서 동시에 같은 이야기로 연극 희곡과 영화 대본을 함께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하고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로 만든 영화 '일 포스티노'는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 되고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약간 이야기가 각색되긴 했지만 그 감동의 여운은 엄청나다고들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흠모하게 되면 그를 닮게 되는 것은 진리. 스카르메타는 평생 마음속에 그의 영웅 '파블로 네루다'를 품고 함께 살았을 것이다. 그러니 둘의 인생이 평행선을 그으며 나란히 걷고 있겠지....

나도 흠모하는 사람을 떠올려 본다. 몇몇이 떠오른다. 그들의 삶을 마음에 품고 나도 하루 하루 정진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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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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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감탄했다. 일본 사람이 이렇게까지 로마의 역사를 재미있고도 상세하게, 그러고도 방대하게 엮어 책으로 냈다니! 세계적인 명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그에 필적할 만한 책이 있으니, 바로 김명호교수의 '중국인이야기' 이다.

2012년에 1권을 시작으로 2022년에 9권을 냈으니 10년여의 시간동안 9권의 책이 쌓였다.

내가 이번에 읽은 책은 4권이다.

"사람이 떠났다. 차(茶)도 식었다." 라는 부제가 실려있다.

장제스는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린뱌오를 그렇게 총애하고 아꼈건만, 공산당원이었던 린뱌오는 결국 그를 떠나고 말았다.

그 일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다니! "사람이 떠났다. 차도 식었다." 이런 류의 표현을 한 장제스도 멋지지만 이런 말 한마디 놓치지 않고 부제로 쓴 김명호 교수가 더 멋지다!

이처럼 '중국인이야기' 시리즈는 당시 사람들이 한 말 한마디, 주고 받은 서신, 자서전등 모든 저작들을 모으고 파헤쳐 완성한 멋진 책이다!

4권 전반부에는 '장제스(장개석)'와 '장쉐량(장학림)' 그리고 '쑹메이링(송미령)'의 삼각관계 아닌 삼각관계 이야기가 여러각도로 재조명되고 있다. '시안사변'으로 남편이 연금된 상황에서도 남편을 감금한 이가 '장쉐량'이라 믿는 구석이 있는 쑹메이링. 시안사변 이후 평생을 연금생활 하면서도 쑹메이링 덕분에 평생 건강하게 살다가 장쉐량.. 보통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역사적 대가들의 삶이 재미있게 쏟아진다.

책 후반부에는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쏟아진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나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된 1949년 10월1일까지 중국은 '국공내전'이 한창이었다. 물론 상황은 국민당정부에 매우 유리하였다. 중공은 기댈곳 없는 고립무원의 막막한 상황이었다. 이때 중공의 기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후방기지가 바로 북한이었다.

북한은 국공내전 시절 중공에 후방 물류기지, 의료기지, 무기공급 등 중공이 원하는 것은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기반에는 북한의 몫이 무시할수 없는 것이었다. 이로인해 현재까지도 북한과 중국과의 끈끈한 관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국인이야기 1권에는 이런 부제가 붙어있다.

"천하를 놓고 싸울때는 한몸같았지만 천하에 군림하자 남은건 결별이었다"

처음 중국인이야기를 읽은책이 1권인데, 이 부제에 맞게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의 마오쩌뚱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었다. 역사책의 딱딱한 위인이 아니라 인간 마오쩌뚱을 만나게 되고, 그 후 모든 중국인이야기 책에는 진솔한 중국 현대사 인물들을 만날수 있어, 재미있고 인간의 희노애락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그래서 이후 중국인이야기 책이 있으면 보는 족족 읽게 되었고, 이번엔 4권을 읽게 되었다. 앞으로도 책이 계속 나오길 바라며, 얼른 5권으로 넘어가야 겠다..

#중국인이야기 #김명호 #시안사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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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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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스쿨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었는데, 아뿔싸 그날따라 늦잠을 자서 아슬아슬하게 스쿨버스 뒷모습과 일별하고 말았다. 어쩔수 없이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주머니에 500원짜리 동전 하나밖에 없었다. 버스 토큰(추억의!)을 사자면 370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문제는 5장 단위로 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문제는 버스에 500짜리를 내면 거스름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지금 생각하면 왜 안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게 생각했던것 같다.)

500원의 내가 머리를 짜내 생각한 것은 토큰 파는 가게에 가서 500원을 내고 토큰 한장만 달라고 하며, 잔돈 100원만 남겨달라, 그렇게 하기 힘들면 그냥 토큰 한장만 달라 이렇게 딜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날따라 평소에 잘 보이지 않던 어느 허름한 구멍가게가 보였고, 허름한 만큼 30원을 남겨먹으며(?) 나에게 기꺼이 토큰 한장을 팔아줄 할머니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스르르 문을 열고 들어갔다.

"500원짜리를 낼테니 거스름돈 100원만 주시고 토큰 한장만 주세요. 안되면 그냥 토큰 한장만 주세요...." 하고 용기를 짜내 말했다. 그런데 그 가게를 지키고 있던 사람은 상상했던 할머니가 아닌, 눈빛이 형형한 젊은 아저씨 였고, 아저씨는 무척 화를 내며 "학생이 솔직하게 500원을 주며 토큰 한장만 달라면 나는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줬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농락하듯이 거스름돈 100원 운운하는 태도 때문에 학생에게는 토큰을 팔수없다!"고 하며 빨리 나가라고 소리쳤다.

어안이 벙벙..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거스름돈도 덜 받겠다고 했던 건데, 아니면 그냥 500원에 토큰 한장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사장님이 화가 났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구멍가게에서 쫓기듯, 도망치듯 나왔다.

조금있다 학교가는 버스가 왔고, 나의 500원은 버스요금통에 "쨍"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곧이어 부드러운 소리로 거스름돈이 "촥촥 촤르르~" 쏟아져 나왔다.(이럴건데 나는 왜 아침부터 쌩쇼를 하고 왔나?)

버스에 앉아 방금 나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까 그 아저씨는 왜 나에게 그리 화를 냈는가? 그것보다 그는 허름한, 그래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동네 버스정류장 앞에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면서도 어떻게 그런 형형하면서도 투명한 눈빛을 가지고 있을수 있단 말인가?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은 적어도 대학 강단이나 판사석에 앉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등등 아리송한 가운데 학교에 도착했다.

그 후로 가끔 그 아저씨를 생각했다.(물론 그 후로 그 가게 앞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쪼끄만 컴컴한 가게에 앉아있으면서도 양심과 통찰력과 자신의 줏대를 꿋꿋이 세우는 사람(잠깐 스친 인연을 내가 과하게 포장해서 해석한 면이 없지도 않겠지만... 큼큼.. 암튼..)..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세상이 그를 몰라주고, 출사 하지도 못하고, 그저 하릴없이 파리떼 쫓으며 인생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당당하게 살수 있는 사람...

그때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걸맞는 일을 할수 있을 것이라는, 누구에게나 기회는 공평할 것이라는, 꿈을 꾸면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순수한 마음에 때가 얹어지기 전이라서 그랬는지, 그가 안타깝고 왜 저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지 혼자 속을 끊였었다.

파리와 쥐떼가 들끊는 폐지압축 작업장에서 맥주를 들이마시며 홀로 35년째 일을 하는 늙은이가 있다. 그는 35년을 매일같이 그 컴컴한 지하 작업장에서 일을하며 일이 끝나면 동네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시고 더러운 옷과 행색으로 냄새를 풀풀 풍기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겉으로 보았을땐 그는 그런 사람이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혼자 더러운 지하작업장에서 일하는 늙은 하층노동자.

그런데 그에게는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심미안이 있다. 압축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온갖 인쇄물 중에 눈에 띄는 반짝이는 보물들을 모아 독서를 즐기며, 자신이 만든 폐지압축덩이를 멋진 명화작품(모작이나 프린팅된 것들 이지만)으로 장식해 매일 아름다운 작품들을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그는 때때로 노자와 예수와 만나 향유를 하며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강의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에게는 인류 철학자들의 선지식과 사상이 맥주 거품 흘러나듯이 흘러넘친다. 그의 보물같은 책들은 그의 작은 집을 꽉채우고도 넘쳐나 그의 침대 위에 설치한 책장에서도 흘러넘치며 그가 조금이라도 건드릴라치면 잠을 자다 보물들의 세례를 받으며 천국으로 갈 지경으로 책을 사랑한다.

더러운 작업복에 냄새나는 더러운 노동자의 눈속에 그런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세상 누가 알 것인가?

그는 꿈을 꾼다. 35년을 함께 일한 압축기와 함께 은퇴하여(그러기 위해 압축기 살 돈을 모으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하고 있다.) 매일 그와 함께 멋진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날을.

하지만 그는 일도 못하는 더러운 술주정뱅이로 낙인찍혀 그의 천국같은 작업장에서 쫓겨나 흰백지를 다듬는 공장으로 차출되었다.

세상에나! 아무 활자도 없는 백지라니! 그것은 아무 의미없는 공허한 세상으로의 출교와도 같다!

결국 그는 자신의 천국, 지하 압축 작업장에서 그의 사랑하는 압축기 안으로 들어가 압축기로부터 천국으로 인도되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체코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작품으로 보흐밀은 프라하 카렐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1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대학이 폐쇄되자 철도원, 폐지꾸리는 인부 등등과 같은 일을 전전하며 글을 썼다. 이 책은 1960년대 공산주의 체제하의 프라하를 배경으로 쓴 보흐밀의 자전적 성격이 강한 이야기다. 평생 힘든 노동으로 삶을 꾸리며 성실히 살아왔지만, 젊은 공산당원의 첨단의 폐지압축공장, 그들의 폐지 압축공장에는 보물도 없고 활자도 없고, 예수도 없고 노자도 없다. 그저 일과 성과와 휴가와 일상이 있을 뿐이다. 노동자의 노동으로부터의 소외, 철학과 낭만이 사라지는 시대. 보흐밀은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 그 시대상을 유려한 글로 멋지게 표현해 냈다. 거장의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무슨이야기 인지 힘들게 읽히지만, 읽으면서 또는 읽고 난후 진한 감동을 남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예의 버스토큰 사건의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이 책이 그 아저씨가 구멍가게에서 꾹꾹 눌러쓴 그의 소설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금쯤 노자와 예수와 함께 행복한 인생을 만끽하시리라 바래본다.

#보흐밀브라발 #너무시끄러운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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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원자에서 인간까지
김상욱 지음 / 바다출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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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가장가까운 별은? 태양! 태양과 지구는 불과 1억5000만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빛의 속도로 8분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태양 다음으로 가까운 별은? 알파 센타우리! 알파 센타우리는 태양계 밖 우리은하 내부에 있는 별임에도 불구하고 빛의 속도로 4년이 걸린다.

우리은하는 지름이 15만 광년에 달하는 원반 형태로 그 중심에는 태양 질량의 400만배 이상 되는 블랙홀이 있다고 추정된다. 이 거대한 블랙홀 주위를 1000억개의 별들이 회전하고 있다.

원자는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원이다. 원자는 양성자와 그를 둘러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안에 들어있는 양성자의 갯수로 원자번호가 주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소기호는 H1으로 양성자 하나, 전자 하나를 가지고 있는 1번 원자이다.

원자가 얼마나 작냐하면, 원자 1억개를 한줄로 세우면 손톱 하나의 길이를 채울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수소원자에서 전자가 달아나 버리면 수소는 양성자만 남게 되는데 이를 수소 이온이라 한다. 수소이온의 양성자의 반지름은 수소 원자의 10만분의 1이다.

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저처럼 무한히 큰가하면, 이처럼 무한히 작다.

세상은 이처럼 광활하고도 무한했는데, 그동안 이런것을 모르고 무식하게 살아온듯해 살짝 무안하기도 하고, 이런 무한의 세상이 있음에도, 내 눈앞의 문제도 복잡해서 부러 이런 일까지 찾아볼 엄두도 못내고 살아왔지 않았나도 싶다.

김상욱교수는 이런 광활한 세계에서 그 근원과 원리를 찾고자 어린시절부터 부단히 공부했으며, 그래서 당연히 물리학을 공부해 세상의 근원을 파헤쳐보고자 했다. 물론 그 성과로 현재 대학교수라는 직업과 유명한 대중강사이면서 책도 많이 쓴 학자가 되어있다.

그래서 이 책은 물리학 뿐 아니라 화학, 생물학을 넘나들며 우주의 근원과 생물의 생멸과 신에 이르기 까지 세상의 모든것을 다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부제로 '원자에서 인간까지'라고 한것 같다.

솔직히 이 책을 읽으며, 어떤 부분은 아니 대부분을 흰것은 종이요, 검은것은 글씨겠거니 하며 아주 고뇌하며 읽었다. 저자는 최대한 쉬운말로 풀이해서 최대한의 '다정함'을 넣어서 썼겠지만 과학분야에 무뇌한인 나에게는 정말 고역이었다. 새삼 중,고시절 과학시간으로 돌아간듯도 하며 이왕 산 책이니, 끝까지 읽는데에 목표를 두고 꾸역꾸역 읽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나 할까?

내 몸을 이룬 무한한 원자들, 전자의 작용으로 우리는 땅으로 꺼지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거나 생활할수 있으며, 우리 생명의 유지는 수소이온의 주고받음으로 일어나는 화학작용에 의지하고 있으며.... 등등..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을 일상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살면서 구태여 이렇게 까지 알고 살아야 할까 싶기도 하지만, 또 알고나니 세상을 더 깊숙이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쓰고있는 키보드와 나의 몸의 원자는 정확히 일치한다. 원자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 키보드가 되었다가, 인간몸이 되었다가 나무가 되었다가 한다. 지구에 있는 원자는 계속 순환하며 세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더 과거로 나아가면 우리는 138억년전에 있었던 빅뱅으로 탄생한 하나의 에너지 덩어리였다. 생명은 우연히 생겨났고, 돌연변이를 통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오며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목적도 없이 우연과 필연이 적절히 섞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의미없음'에 당황해 하며, 우리 인간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존재이유가 있고, 살면서 꼭 이루어야 할 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생명 진화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나와 근원이 같을 저 별을 바라보며 나의 나아갈바를 생각해 본다.

#하늘과바람과별과인간 #김상욱교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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