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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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 '김연수'를 좋아한다.

예전에 그가 쓴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홀딱 반했었다.

일제시대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그렇게 아름다운 소설을 쓸수 있는 작가라니!

그 후 그가 낸 책들은 거의 본것 같다...

'세상의 끝 여자친구'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등 그의 책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닌 같은 세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글들에서 얼핏얼핏 느껴지는 90년대 대학의 분위기들.. 그런것이 좋다.

물론 글을 잘쓰는것이 첫번째 이겠지만, 그가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이를테면 90년대 대학생들, 특히 '운동권'이라고 명명할 이들의 삶이 조금은 내비쳐 보인다는 점이 좋다.

이상하게 한국사회에서 90년대 학번들의 삶의 지워져 있다. 특히 90년대 대학에서 '데모'를 했던 '운동권'의 삶은 철저히 지워져 있다.

운동권이라면 마땅히 87년 6월 항쟁의 주인공들인 '386', 아니 지금은 '586'이 된 그들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러니까 9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우리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되어있다.

그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또는 90년대 '민주화'시대에도 '운동권'이 있었던가 반문하기까지 한다.

90년대 후배 운동권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냥 '586'들은 대통령에 국회의원에 모두들 한자리씩 차지하며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지만, 우리가 철저히 지워진 지금, 나는 그때의 우리의 치열함, 우리의 행위도 역사에 남겨져야 한다는 채무감에 시달리고 있다.(나 혼자...ㅎ)

이제 몇이나 기억할지 모르는 96년에 있었던 '연세대 항쟁' 이후로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이적단체'로 규정되었고, 무시무시한 학생운동의 탄압으로 내가 다니던 학과의 96학번 대학교 1학년 후배들이 뭣도 제대로 잘 모르는 상태로 5명이나 구속되었던 대참사가 이어졌다. (이것은 전국적인 학생운동 탄압의 행태였다.) 그들은 단순히 그냥 집회 현장에 호기심반, 의기로움 반, 선배의 권유 반 등등으로 집회에 참석했을 뿐인데, 대학교 1학년에 '전과자'가 되어 버렸다. 96년 이후로 학생운동은 그야말로 정권의 무소불위의 탄압으로 움추려들고 힘을 잃고,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그때를 온몸으로 겪었던 나이기에, 그때의 억울함, 그때의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졸지에 대학 1학년에 뭣땜에 전과자가 된지도 모른 후배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들에 대해 아무도 기억하지도 말하지도 않는 시대에 심히 불쾌하고 유감이다.

물론 김연수 작가가 나의 이런 생각을 전적으로 표현해 준적은 없다. 그래도 적어도 그때도 '학생운동'이 존재했음을 은유적으로라도 표현해 주기에(이건 나의 주관적 생각일 수도 있다.) 감사함 마저 느끼며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이 책 '일곱해의 마지막'은 김연수 작가가 오랫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그동안 소설집이나 산문집을 내다가 장편소설을 오랫만에 내놓아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책을 발견하자 마자 읽었다.

역시 김연수 작가는 '밤은 노래한다'에서 그랬듯이 역사적 서사에 기초한 자신의 창작품을 내놓았다.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비극이라면 '분단'이라는 이 불안함이다.

일상에서 '분단'을 불안이나 불편으로 느끼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려나 모르겠지만, 분단이라는 이 기형적 현실, 더더욱 '휴전'이라는 더욱 이상한 형태로의 70여년은 세계사 전무후무한 이상한 형태임에 분명하다.

식민지에서의 해방을 우리 손으로 쟁취하지 못하였기에 우리는 강대국에 의해 강제적으로 갈라졌고, 결국 북은 북대로 남은 남대로 각각의 사회체제를 갖추고 서로 등을 맞댄체 언제 끝날줄 모르는 평행성을 달리고 있다.

그 평행성에 깔려 죽을수 밖에 없는 수많은 이들을 떠올려 본다.

해방 전후의 송진우, 여운형, 김구 선생들과 같이 테러로 생을 마감한 분들을 시작으로 '제주4.3' '여순항쟁'에서 학살당한 민간인들, 한국전쟁 참화에서 학살당한 수만의 '보도연맹원'들, '노근리 학살'과 같은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들.... 분단은 그냥 분단이 아니라 갈리워진 한반도 허리위에 피로 강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이렇게 멋진 시를 일제시대에 썼던 멋쟁이 영어선생이었던 '백석'시인 또한 시대의 광풍에 휩쓸릴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 책 '일곱해의 마지막'은 백석시인이 고향이 '정주'인 관계로 해방이후 이북에서 살게 되었고, 그의 시풍에 대한 비판에 의해 먼 개마고원밑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된 후 절필을 하기 되기까지의 7년동안의 일을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소설로 써냈다.

분단은 이렇게 어느누구 하나의 삶도 그냥 두지 않고 남쪽이나 북쪽이나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

백석시인은 절필이후에도 오랫동안 생을 살았다. 1996년에 작고 하셨으니, 뛰어난 천재시인의 절필이후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지금은 흰눈이 내리는 겨울이 아닌 삼복의 무더운 여름이지만,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를 읽고 있자니 밖에 눈이 내리는 듯 하다.

#일곱해의마지막 #김연수 #백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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