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스캔들
고수현 지음 / 플럼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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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직장에 합격해도 그곳에서 벌어질 텃새와 가로세로 딱딱 떨어져야 하는 생활이 두렵다. 그렇지만 그런 직장을 포기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이 편하게 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는 직장에 가더라도 그곳의 사람들과의 원만한 생활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사람은 이해와 불신을 넘나드는 감정의 도가니기에......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호주,스캔들>의 저자는 대기업의 합격을 뒤로 하고 Y인터넷 서점에 입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2년. 그녀는 '애교 떨지 못하는 죄'로 마음고생을 하다가 퇴사하고 만다.

 

 애교가 없어서 회사에서 견디지 못해 퇴사를 한다? 누가 들으면 어이없다고 콧방귀 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이다. 아주 사소한 무언가가 나를 옭아매고, 나의 전체 이미지인양 드리워져서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공황상태. 그녀는 아마도 그런 무엇인가를 느낀게 아닐까......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일이 그리 굴러가는 것처럼 이 세상살이는 예측불허, 무면허운전이다.

 

 스무살때 딱한번의 연애를 뒤로하고 7년넘게 싱글주의, 큰키와 까무잡잡한 피부의 컴플렉스. 그런 것들이 자꾸만 그녀를 세상과 마주하는 거울앞에서 표정없는 사람으로 만들어간건 아닐지...... 25살 되던 때 그녀는 결심한다. '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를 고심하면서 뒤늦은 자아찾기에 돌입한다. 27살이 되어 오른 호주여행길. 그길에서 그녀는 인생의 짜릿한 반전을 경험하고, 어리둥절한 나날속에서 차츰 자신을 찾아간다.

 

 

 



 

 

 연애경험이 아주 간소한(?) 그녀는 호주여행에서 만난 영국 남자에게 빠져버렸다. 끝내주게 좋은 매너.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외모를 찬사하는 그사람. ' 이건 작업이야.'라고 외쳐댈 만도 한데, '외국인에겐 우리 한국인이 매력적이겠지?'라는 설레발로 그의 호의에 반응하다가 결국, 우려하던 사랑에 빠지고 만다. 영국남자 '에이미'는 그렇게 저자(수현)에게 평행으로 수평으로 사랑의 골을 파놓는다. 저자는 에이미에게 손끝하나 저항할 수 없는 천부적인 '무능'을 갖고 있다. 여자를 울리는 나쁜남자에게 기꺼이 상처를 받는 순진한 여자의 배역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그녀가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어째꺼나 그녀는 자신만의 뜨거운 사랑을 하니까. 스스로 불나방이 되기를 자처했다. 자신의 몸이 탈 지언정, 불에 다가가고 마는 불나방.

 

 저자, 수현이 멋졌다. 그 순간 만큼은 최고다. 플레이보이면 어떤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데...... 그의 상처를 끌어안아 줄 수 있는 그런 여자가 수현이다. 신체적 컴플렉스와 내성적 성격, 연애를 모르는 싱글등은 모두 만들어낸 것이다. 그것을 떨쳐버릴 줄 아는 시크한 짧은 미니 드레스를 입은 수현이 아름답다.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은게 뭐 어떤가, 그녀는 호주에서 그리고 지금쯤 하고 있을 영국 여행에서 자신을 찾고, 행복을 쌓아가고 있는 걸......

 




 

 아웃백의 공기를 들어마실 때마다 강렬한 나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 내 안에 답을 두고 숱한 시간을 헤매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고요히 멈춰서 느껴야 하는 것이었다. 아웃백에서 얻은 가장 뜨거운 선물이었다.

(page.105)     




 우리가 여행을 하는 이유는 뭘까? 작게는 추억거리 만들기, 크게는 드넓은 자연 그리고 낯선 곳에서 내 인생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이 아닐까. 수많은 여행서를 접했다. 그들은 길위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답을 찾고, 혹은 자연속에서 해답을 얻고자 했다. 저자 역시 호주에서 답을 찾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여행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그냥 두눈에 비치는 바위는 바위답게, 모래알은 모래알답게 침묵하고 있었다. 욕심이라고 한다. 답을 찾겠다는, 더 많은 것을 보고 깨달아보겠다고 발버둥 친 욕심. 욕심이 눈을 가려 답을 찾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말이다. 침묵속에서 '나'를 느껴야 하는 답을 얻은 그녀의 말에 책을 읽던 나도 눈을 감고 침묵했다......

 

 

 호주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나라다. 신혼여행지로 선정하기 전부터 가고 싶었던 나라였고, 신혼여행으로 13시간의 비행시간을 뒤로하고 발을 딛자마자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15시간의 비행...... 찌는 듯 무더운 그 나라의 12월을 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다시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무엇이든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결심했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이리 뜨겁게 일렁거리는데, 잊고 살지 못할 바에야 다시 가보는게 낫다.

 

 상처투성이 저자가 호주에서 '플레이걸'이란 명성을 얻는 반전을 경험하듯이...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존재의 의미를, 삶의 방향을 찾아내듯이 호주이건 뉴욕이건 설사 대한민국의 어느 지역 안에서건 떠나보자. 떠나는 길 위에서 얻는 삶의 진행법은 뜨지 않는 자에겐 절대 보여지지 않는 것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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