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편쟁이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내가 너무 비관적인지 모르겠지만 황폐하게 쩔은 얼굴로 초점없는 눈빛과 단내나는 입냄새가 연상된다. 일반적인 사용이 금기되어 있는 아편은 병원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여기서 암시장은 제외하고 싶다.) 암환자들의 최후의 진통제. 그것이 바로 아편이였다. 아편으로 인해 연애인들의 구속을 보면서, 사실 아주 잠깐은 그 몽환적인 느낌을 상상해 보았다. 어떤 느낌일까? 도데체 어떤 세상이 펼쳐지기에 저토록 자신의 인생을 걸고 아편에 손을 대는 것일까......

 

 굳게 닫혀있는 문이였다. 그리고 표지판은 <절대 들어가지 마시요>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어느날, 문틈이 벌어져 밖으로 그 방안의 빛이 세어나온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나는 갑자기 빨라지는 심박동을 왼손으로 눌러잡고 그 문틈에 머리를 갖다 댈지도 모른다. 금지된 곳에 대한 열망을 어떻게 이겨볼 방법도 모른체 말이다. 아편의 그러한 특성때문에 <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란 이 고전은 문틈으로 세어 나오는 빛이 나의 동공을 두드리게 하고 싶은 것 처럼 읽혀지기 시작했다.

 

 시공사에서 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획한 '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 중에서 한권인 이 책은 토머스 드 퀸시가 자신이 경험한 아편을 1822년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당시 영국에선 돈만 있다면 아편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는 1804년 치통으로 아편을 접하게 되면서 그의 인생에서 아편을 빼고는 논하기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 아편 복용의 시작은 통증을 걷어내기 위한 것이였으나, 점차 그는 쾌락을 위해 아편을 마셨다. 치통으로 시작한 아편과의 만남은 그 이후, 소년시절의 극단적인 굶주림 때문에 생긴 위장병의 통증을 견디기 위해 지속적으로 접했다.

 

그리고 기나긴 고통의 후반부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내 고통이 더욱 격렬해진 단계라고 말해도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나는 16주가 넘도록 굶주림의 고통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고통의 강도는 다양했지만, 아마 사람이 죽지 않고 견뎌낼 수 있었던 가장 혹독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page39)

 

 

 20일 넘게 이어진 치통으로 친구가 권하는 아편팅크(아편을 알코올에 녹인 것)를 마셨다. 아편 팅크를 사러갔던 장소, 샀던 시간, 그리고 저자에게 아편을 건낸 약종상...... 드퀸시는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을 세상의 그 어떤 기억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천상의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그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던가를 함께 느끼고 있다. 온 턱을 마비시키고, 정수리부터 턱까지 껍질을 벗겨내는 듯한 고통. 나는 그 치통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떠한 이유에서건 아편은 만나지 못 할 것 같다. 아편이란 이렇듯 현대인들에겐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절망적이든 아니든, 1813년에 발버둥친 결과는 지금 말한 대로였다. 이때부터 독자들은 나를 아편에 인이 박힌 어엿한 아편쟁이로 생각해도 좋다. 이런 사람에게 몇 월 며칠에 아편을 마셨느냐 안 마셨느냐고 묻는 것은 그날 당신의 허파는 숨을 쉬고 있었느냐, 당신의 심장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느냐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page. 115)

 

 

 병원에서 근무할때, 전립선암으로 고생하며 살다가 돌아가신 환자 하나가 생각난다. 그는 암으로부터 얻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그리고 또다른 보상, 쾌락을 위해 간호사들에게 마약(모르핀)을 요구했다. 뼈위에 가죽만 덮어놓은 듯 마른 그에게 모르핀을 주사하는 것 자체도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불안전한 심박동. 나는 무엇을 위해 그에게 모르핀을 달라는 요구를 철회했을까. 모르핀으로 인한 부작용이 걱정스러웠지만, 그에겐 고통을 걷어내 줄 모르핀이 남은 삶을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그가 말했다. 의사의 오더는 필요시 모르핀 주사였다. 모르핀을 철회했던 나는 결국 그에게 모르핀을 주사했다. 마른 가지같은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 고맙소. 나를 살렸소. "

그 후 그는 삼일 뒤 임종을 맞이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임종 곁을 지켜주던 그날의 근무를 잊지 못한다.

 

 

 1813년 극심한 위염을 앓고 아편 중독에 속도감있게 빠져든 드퀸시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종종 자기 변명을 한다. 극심한 통증의 위염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아편 뿐이였다'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 그 당시엔 그의 처지에 스스로가 우울하여 아편에 의지하고픈 마음이 녹아 그리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글로 써 독자들에게 고백을 하는 드 퀸시는 자기 스스로를 아편쟁이라고 말한다. 아편에서 얻을 수 있는 '쾌락'을 갈망하면서도 뒤어어 오는 '아편 고통'에 대해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반성하는 듯, 혹은 그 기억을 추억하는 듯 독자들에게 고백한다. 그 고백이 자칫 변명스럽게 들리더라도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싶었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 아편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 아편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해달라는 책이 아니다. 다만 아편으로 인한 두가지의 보상 '쾌락' '아편 고통'이 아편을 손대는 당신이 원하는 그것이냐고 되물어 보는 것 같다. 19세기 초 아편에 대해 너그러웠던 시대인들에게 그의 에세이가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아편으로 인한 쾌락과 고통, 환각등에 대한 느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유려한 문체속에 솔직한 고백을 읽는 즐거움은 확실히 대단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