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춤 - 시몬느 드 보부아르
시몬느 드 보부아르 지음, 성유보 옮김 / 한빛문화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삶 자체는 모순이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는 20세기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실존주의 인물 중 하나이다. 그 시대 또다른 인물 사르트르와의 인연이 깊은 그녀는 1964년 원제 : 아주 편안한 죽음 이란 제목으로 이 책을 출간했다.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 책을 발간했던 그때 사르트르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여 화제가 된 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죽음의 춤>은 보부아르의 소설 중 가장 의식이 순화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발표당시 그녀 나이 56세. 이 작품으로 그녀는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표현이 어려웠던 삶에 대한 부분을 담담한 듯 때론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보는 딸의 시선으로 그려낸 이 자전적 소설 <죽음의 춤>은 이미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1년 6개월이란 시간동안 지켜본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기가 조금은 힘겨웠다.

 

 

 

 

  암으로 투병중이던 엄마를 곁에서 무려 1년 6개월이나 지켜봤다. 그러나 나는 그 힘겹고 외로운 죽음과의 싸움에서 헐떡이던 엄마를 보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보이며, 왜, '내 엄마이니까'라는 상념에 횡포를 부려댄걸까...... 보부아르가 엄마를 떠나보내면서 엄마와 함께 맞줄을 잡은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할때 나는 왜 우리 엄마의 맞은편에서 연신 줄을 잡아 당기는 죽음을 인식하지 못했을까. 섬뜻하다. 내 앞에서 찢어지게 웃음을 흘기는 그 죽음이, 줄다리기에서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는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면서 엄마의 목숨줄을 잡아당기는 장면이 상상이 되니 섬뜻하고 오싹하다. 불 보듯 뻔한 줄다리기에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앙상하게 말라 힘도 없는 두 다리에 힘을 싣고 사투한 엄마의 고독을 나는 너무 늦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소장에 있던 암덩어리를 제거했으나, 의학기술이 지금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그 당시, 보부아르의 어머니는 살고자 하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찌르는 듯한 통증엔 장사없다고, 의사들이 처방하는 모르핀은 한줄기 빛이였다. 보부아르는 엄마의 고통이 섞인 신음소리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모르핀을 맞아도 그치지 않자, 약을 더 요구했지만 나는 안다. 모르핀의 부작용을......호흡수가 떨어지고 심장을 멎게 할 수도 있다. 그런 부작용 때문에 일정용량 이상은 줄 수 없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의료진. '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단 말인가?' 장이 마비될 수 있으니 더이상의 모르핀 처방은 불가능하다! 그렇다. 병원에 근무할때 호스피스 환자를 상대로 느낀 나의 딜레마였다. 아직도 나는 갈등한다.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 고통을 줄여주는 방법과, 남은 생을 더 연장하는 것. 그 어떤 것도 나는 선택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보호자가 원하는 방향이 정답일 수도 없다.







 

 삶엔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 죽음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의 종착점이란 것이다. 그럼 내가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오늘이, 바로 죽음을 향하는 걸음걸음이란 결론이다. 고로 나는 이 하루를 살 필요가 없다? 어차피 죽으니까...... 이런 결론은 분명 어딜봐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나는 매일매일을 어제보다는 더 나은 방향으로 설계하고 살아가고 있다. 살기위해 태어났으니까, 그리고 죽기 위해 살아가니까......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내 삶은 어쩔 수 없는, 그리고 무조건적인 행보다. 철저히 고독하고 완전한 외톨이다.

 

 

 보부아르의 어머니는 자신을 구덩이에 빠지도록 놔두지 말라고 말했다. 자신을 위해 옆에 있어 달라고 당부했다. 자신을 짐승과도 같은 의료인들에게 맡기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죽음과의 줄다리기에서 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 희망이 책을 읽는 나를 더 가슴 아프게 했다. 그녀의 엄마는 잠만 자다가 보내버린 하루를 살아가지 못한 날이라고 말한다. 잠을 잔 그 하루는 살지 않은 하루다.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결국엔 찾아오게 될 죽음은 그녀의 말처럼 폭력이다. 죽음은 약속을 하지 않는다. 그냥 무턱대고 느닷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그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현명할까? 보부아르는 이 책을 통해 고독한 죽음과, 죽음을 기다리는 인간과 그를 지켜보는 인간과의 공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딴은,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사란 없다.

인간에게 닥쳐오는 어떤 일도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세상에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

 

(page. 195)

 

 

 

 '인생은 모 아니면 도! 두판지기다.' 라는 말로 자신의 암 소식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엄마가 생각난다. 등뒤에선 시뻘건 눈으로 세상을 욕하며 ' 왜 하필......'이라는 말을 욕처럼 내지르던 나는 인생에 순리가 어디있냐며 엄마의 죽음을 거부했다. 내가 거부한다고 오지 않을 엄마의 종말은 아니였지만 그건 아마 발악이라도 해야 나중에 나를 위해 위안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겉치레식 행위였을런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였는데, 억지로 몸에 좋다는 것 먹이고, 먹고 싶은 음식 멀리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조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차오르는 가쁜 숨을 편안하다, 편안하다 반복하던 바짝 마른 입술이 기억난다. 무척이나 힘겹고, 외로웠을 그 싸움을 언젠가 나도 겪게 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죽음은 찾아온다. 나는 앞으로 죽음에 대한 입장을 달리 해 보고 싶다. 희망을 가졌으나 그 꿈은 찢어지고 말았다는 글로 마무리 지은 보부아르의 생각엔 반대한다. 난 결코 희망은 놓지 않을런다. 희망이 있어 내일 죽을 지라도 오늘은 분명 밝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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