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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퍼홀릭 2 :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 - 합본 개정판 ㅣ 쇼퍼홀릭 시리즈 2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이사하면서 새로이 만들어 놓은 스프러스 3쪽 신발장. 양문을 활짝 열어보니 기가 막힌다. 가수 서인영이 말하는 '아기'들은 온데간데 없고, 뒤축이 닳아 흉해진 '늙은이'들만 가득하다. 내가 여자인가? 하고 질문을 던지고 겉모습이 아름다운 스프러스 신발장 양문을 '퍽! ' 하고 닫아버렸다.
쇼핑을 해 본 적이 언제인가 싶다. 커다란 ( 사실 나에겐 무척 큰 신발장이다) 신발장엔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신상구두들이 가득해야 멋스러울텐데.... 나의 신발장엔 찌그러지고 어둑어둑해 보이는 스니커즈들과 몇센티 굽인지 알 수 없는 뒤축이 닳은 구두들, 구두굽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편안한 단화들 뿐이다. 누군가가 우리집 신발장을 열어본다면 10미터를 1초만에 날아가는 신공을 발휘해서 막아야 할 정도다.
결혼전에 사 두었던 많은 옷들은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에게 모두 선물로 나아갔다. 알뜰하기 그지없다는 나는 직장생활에서 번 돈이 조금씩 모이면서 생활의 변화(?)가 있게 되었고......옷장이 미어터지도록 쌓여만 가는 옷들을 만나게 되었다. 사두고 한 두번 입으면 잘 입은 것들...... 친구들에게 나의 옷들을 분양해 주면서 가격표조차 떨어져 있지 않은 새옷들을 보고 충격받았다. ' 내가 미쳤나봐. ' 라는 생각이 안들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옷을 왜 샀을까? 30만원이나 하는 청바지는 왜 단 한번 입고 고이고이 모셔 두었을까? 같은 스타일의 바지는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옷방을 만들어 천장까지 닫는 옷장 가득 옷을 넣어두고도 모자라 천장까지 닿는 커다란 헹거까지 설치해 놓았던 방. 그 방안에 들어갔다 나오는 엄마는 한소리 두소리 시작했다. " 저 옷들로 옷장사해도 되겠다. " 라고 말이다. 나는 쇼핑중독은 아니였다. 아니,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언니와 내가 사들인 옷과 가방, 신발들 때문에 엄마와의 필요없는 다툼도 잦았고, ' 쇼핑중독'이라는 말까지 들었었지만 제테크에 관심이 생기면서 나의 쇼핑은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이 극심히 줄어버렸다는 게 문제인거 같다. 나의 신발장을 보면 말이다.
소피 킨셀라. 그녀가 쓴 소설 <쇼퍼홀릭>시리즈는 뉴욕타임스 및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쇼퍼홀릭>은 급기야 영화로도 만들어져, 책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쇼. 퍼. 홀. 릭. 이란 네 단어를 잘 알고 있다.
<쇼퍼홀릭 -레베카, 맨해튼을 접수하다>는 주인공 레베카의 쇼핑중독 덕분에 맞이하게 되는 위기, 그것을 잘 극복해 나아가는 스토리로 가볍게 읽어 나갈 수 있다. 매우 유쾌하달까? 유쾌하면서 작품에서 뿜어져나오는 뉘앙스는 절대 가볍지 않은 칙릿소설이다.
<쇼퍼홀릭 1 - 레베카, 쇼핑의 유혹에 빠지다 >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2권을 읽어봐도 1권의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1권은 Ⅰ과 Ⅱ를 합본하여 새로이 출간되었다. 책 권수가 줄어들어 조금은 편리해 진 것 같다.
레베카 블룸우드. 그의 남자친구 루크와의 첫 여행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1박 2일 여행일지라도 정말 가져가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여자들. 레베카는 수영을 할 때 날씨가 어떠한가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옷 때문에 걱정하다가 결국 많은 짐을 꾸려 택배를 보낸다. 그리고 여행을 위해 새로이 신발과 옷도 구매하고, 미래를 미리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예산보다도 훨씬 큰 돈을 지불해서 필요없는 물건들을 사들인다. 단지 몇 파운드뿐이다라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결과, 눈덩이처럼 쌓이는 빚. 은행에서의 신용도 잃고 일자리도 잃고, 남자친구까지 잃게 만든 그녀의 쇼핑중독. 그 사건이 터지는 전환점은 남자친구 루크의 비지니스로 방문하게 되는 미국의 맨해튼에서 일어난다.
내가 여자인걸까 싶을 정도로 듣지도,보지도 못한 브랜드들. 책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브랜드들 중에서 내가 아는 것은 그것들의 1/4정도?
레베카의 정신없는 쇼핑에 글을 읽는 나도 그녀의 발걸음에 맞춰 두근두근거렸다. 저자의 서술방식 또한 마음에 들었다. 레베카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지극히 접근하기 좋고 이해가 쉬운 서술. 책을 읽는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책속의 레베카가 되어 있다. 경쾌하고 호흡빠르게 읽어내려가는 이 책은 나에게서 호탕한 웃음과 두근거림과 한숨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원맨쇼'를 이끌어냈다. 읽으면서 어찌나 재미있던지, 오랜만에 만난 소설 덕분에 하룻밤이 하얗게 밝아지도록 쇼퍼홀릭이였다.
여자라면 백화점 한바퀴 돌고 양손 떨어질 정도로, 손으로 잡지 못할 정도의 쇼핑백을 들어보고 싶지 않을까? 불가능한 현실인건 알지만 대출을 해서라도 꼭 사고 싶은 것이 있다. 하지만 레베카처럼 쇼핑을 지독하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꿈일 뿐이다. 레베카의 친구 수지는 그녀의 무분별한 쇼핑을 제어하는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마는 레베카다. 레베카의 쇼핑이 그 순간 행복을 줄진 몰라도 그에 따른 미래는 어떠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고가의 물건이 든 쇼핑백들을 양손 가득 들고 백화점 정문을 나서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레베카 덕분에 다시한번 쇼핑목록을 점검해 볼 수 있었다. 정말 생각해보자. 꼭 사야할 물건인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인가.
' 아! 난 몰라. ' 를 연발하던 레베카가 떠올라서 괜히 미소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