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장 - 일상다반사, 소소함의 미학, 시장 엿보기
기분좋은 QX 엮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 마트를 돌아다니는 재미가 참 좋았다. 살것도 없으면서 마트카에 가방을 싣어놓고 걸어다니면 한두시간이 후다닥 날아가고, 괜시리 사고 싶은 것도 많아져 이것저것 사오기 일쑤였다. 

 내가 사는 지역이 동해안이라서 회는 종종 사 먹을 수 있는데, 마트안의 회는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아, 친정쪽에 있는 전통시장에 들리게 되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가보지 않았던 동네 전통시장. 시장안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가게주인들도 보인다. '빨간다라이'안에 나물이며 과일이며 빼곡히 얹어놓고 내가 지나가는 걸음걸음마다 말소리를 심어주는 시장사람들. " 새댁! 이거 사가지고 가~ 어이?" 라고 한다.

횟집에 들러 3만원정도의 회를 푸짐하게 사서 돌아서는데 뒤통수에다 하시는 횟집 아주머니 말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 엄마, 참 좋은 분이셨는데... 힘내서 잘 살아~"라고. 전통시장에서 얼굴 익히고 살았던 엄마 덕분에 나의 등장은 시끌거렸지만 평판 좋던 엄마 덕분에 딴은...... 회도 덤으로 얻어가고, 순대 한움큼 얻어먹고 돌아섰던 기억이 난다. 돌아가는 길에서 어찌나 눈물이 흐르던지...... 전통시장 안에선 나의 사랑하는 엄마가 아직도 살아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경기도 서울의 전통시장을 소개하면서 지역적인 특색도 보여주고,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낸 <한국의 시장>은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진다. 장면장면 '맞다 맞다'하면서 이런사람 꼭! 있다 라는 말이 연발 나오는 책이다. 우리 지역 혹은 근처 큰 전통시장만 가 본 턱에, 다른 지역 시장을 구경하는 기분이 꽤 괜찮다.

 





강원도에 여행했던 기억으로, 정말 꼭 가보고 싶었던 강원도 전통시장. 그안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글로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여느 전통시장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보인다. 하지만 수북하게 쌓인 게 모습은 진귀하긴 하다. 위에서 언급한 일명 ' 빨간 다라이'는 여전히 등장하고, 돈을 넣어두는 앞치마는 크게 다를바 없다. 우리의 전통시장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조금씩 흐름은 비슷해 보인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큰 전통시장이 있으며 전국적으로 '과메기'와 '문어' '고래고기'가 유명한지라 타지인들의 방문이 많다. 그러나, 지인들은 늘 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본다. 거기 갈려면 얼마나 걸려? 혹은 어디로 가면 더 빨라? 등등......

가는 방법과, 통행료까지 기록되어 있어 여행을 목적으로 그 지역에 들린다면 전통시장을 기회삼아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트의 진열은 일목요연하고 획일적이지만, 전통시장은 제각각이다. 가끔 독특한 진열로 시선이 머물때도 있다. 전통시장에 갈 때마다 내 발길이 멈춰서는 진열이 있긴 하다. 바로 전통과자가게. 전통과자가 화려하고 맛도 있지만 인심좋은 주인이 길가던 나의 팔을 붙잡고 무작정 입안에 과자 하나 넣어준다. " 그냥 마구 먹고 가!" 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인심도 인심도 이런 인심이 어디 있나. 전통시장안은 이런 사람들로 인해 따사롭고, 정스럽다고 하는가보다. 결국 그냥 먹고 가나? 아니다. 한아름 사서 가는데다 검은 비닐봉지안에 또 한움큼 넣어준다. 과자는 마구마구 퍼담는 모래와도 같았다.

 

전통시장인들은 마트이야기만 하면 푸념하기도 한다. " 우린 먹고 살기 힘들어. " 라면서.... 마트보다 비싼 일도 있지만 질적으로 월등하기도 하다. 게다가 마트보다 대부분 저렴한데다, 인심은 또 어떠한가. 오고가는 대화도 포근하다. 그리고 친정 가까운 전통시장안엔 돌아가신지 2년이 넘은 엄마의 숨결도 살아있다. 엄마를 기억해주는 시장인들이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장바구니에 무언가를 마구마구 넣어준다. 그런 인심 덕분에 눈물이 정신없이 쏟아지기도 하지만 가슴 한켠이 얼음을 조각내어 녹여가듯 따뜻해지는 것이다.

 

전통시장 사람들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 대화해보지 않아도 그들의 행동에 보이는 것이 바로 삶에 대한 강한 힘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그 힘을 닮고 싶고, 또 얻어오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지갑 달랑 하나 들고 전통시장에 들린다. 순대도 사먹고, 시장통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한껏 나이든 아주머니들 처럼 실없는 농담도 툭툭 던지면서 말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 만큼은 살아있음이 몸소 느껴지고, 힘이 솟는 것 같다. 검은 봉지 손에 손에 들고 집으로 타박타박 걸어가는 길이 정겹기도 하기에 나는 또 전통시장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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