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 나를 깨워줘
루쓰하오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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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랑의 공통점에 대한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둘 다 시작할 때 설렌다는 것과

어떻게 진행되든 추억이 만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끝나고 나면 다음번에는 더 좋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잊고 지냈던 문장만큼, 잊고 지냈던 많은 기억들이 그의 글을 읽으며 떠올랐다.

어딘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 한 중국청년의 글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지명, 낯선 친구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어느 부분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루쓰하오가 빨간 목도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가장 많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단락이 끝나고 나는 책을 잠시 덮었고,

다시 책을 펼쳐 빨간 목도리에 대해 다시 읽어보았다.

내게도 풋풋했던 사춘기 시절이 있었다.

중학교 동창이던 한 남자아이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았고

언제부턴가는 자주 연락하며 지냈다.

처음부터 그 아이가 내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림짐작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이윽고는 수차례 마음을 표현해준 덕분에 눈치 없는 나조차도 그 아이이의 마음을 잘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 아이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같이 손을 잡거나 어딘가 놀러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그런 마음을 그 아이에게 말했지만, 그 아이는 잘 알겠고 자신은 상관없다며 계속 옆에 머물러주었다.

미숙했던 나는 그저 그 아이의 마음을 곱게 잘 받고 고마워하는 것이

그 아이의 마음에 대해 최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틀렸다.

어쩌면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그 아이의 마음을 이용했을 런지도 모르겠다.

친구로 지내는 긴 시간 동안 그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무슨 생각들이 들었는지, 마음 아픈 날들이 많았었는지.

어느 날이었던가, 한 동안 연락이 끊겼던 그 아이에게 문득 연락이 왔다.

기어코 나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내게 처음으로 그 아이는 떼를 쓰며 우겼던 것 같다.

기어이 만나고 나니 그 아이는 맥없이 태평한 얘기만 잠깐 나누다가

잘 살라는 인사와 함께 홀연히 떠났다.

더러 길에서 우연히 한 번 봤다는 건너건너 친구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

휴대폰 번호도 남기지 않고, 미니홈피도 닫아놓은 채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내 인생에서.

후회와 미안한 마음이 공존하고 있는 나에게 루쓰하오는 말하는 듯했다.

우리는 모두 어리고 뒤죽박죽이라고.

다만, 오늘 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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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고 뭐하지? - 상식을 뒤집는 "직업 혁명" 프로젝트
최혁준.한완선 지음 / 라임위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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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만 ‘뭐 할지’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는 항상 직업에 대한 고민을 한다.

세상이 퍽퍽해져서 그럴 수도 있고,

내가 퍽퍽하게 살아서 그럴 수도 있다.

얼마 전, 꿈에 관한 짧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꿈에 대한 몇 가지 질문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각각 어떠한 대답을 하는지 담은 영상이었다.

어른들 대부분은 꿈이 뭐였는지 가물가물했고, 심지어 현실적인 꿈을 말하는 건지 되묻기도 했다.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말에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달랐다.

그들은 의사, 우주선을 타는 것, 맛있는 것이 가득한 슈퍼마켓 주인 까지. 대단한 꿈들을 열거했다.

그리고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다. 두 팔을 활짝 펴서 가장 큰 원을 그리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과 진정한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 중

무엇이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망설임없이 진정한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거다.

그러나 그런 삶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그 확신이 그 때도 굳건할 수 있을까.

나는 나름 내 꿈을 위해 모험을 하는 사람의 범주에 속해있다.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스케쥴을 쪼개고 모아서 여행을 계획하고, 계속 문을 두드린다.

그럼에도, 나 역시, 현실에서 발을 떼지는 못한다.

두렵기 때문이다.

온전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릴까봐 걱정된다.

밥벌이도 못할까봐. 어영부영 나이만 먹고 있을까봐. 결국 속만 썩이는 딸로 남을까봐. 실패할까봐.

그러나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가 모든 걸 내던지고 온전히 꿈을 선택하다가 내가 좋아하던 일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지는 것이다.

현실과의 타협으로 나는 실패에 대한 데미지를 줄였다.

수없이 넘어진다 해도 기꺼이 자전거를 배울 것이지만, 그래도 보호대랑 헬멧은 착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앞에 둔 사람들 모두 어느 정도의 고민과 두려움, 그리고 그보다 큰 의지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열심히 꿈꾸길 바란다. 많이 실패하고, 많이 울면서.

그리고 그 꿈을 오래토록 간직하길 바란다. 쉽게 꺾이지 말고, 쉽게 포기하지 말고.

개개인이 생각하는 방식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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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혁명 - 자긍심을 회복하는 순간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최종희 옮김 / 국민출판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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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예인들의 공황 장애, 불안 장애에 대한 뉴스는 이제 흔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관심에 위축되는 병.

그러나 유명 연예인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질환 하나쯤은 갖고 있다. 작은 트라우마라도.

 

정신과 의사들이 공황 장애에 대해 말할 때 반드시 말하는 것이 있다.

본인 스스로 의지를 갖고 삶의 기준을

 

변화해야 한다는 것.

결국 마음이라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약물로 치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본인의 의지만이 완벽한 치료를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셀프혁명은 현대인들의 마음속을 면밀하게 살피고 다듬는데 도움을 준다.

정신과 진료나 심리 상담이 어쩐지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마음 곳곳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데 매우 유용할 것이다.

 

나는 특히 책에서 나온 자긍심에 대한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스페인 할렘가의 학생들이 체스를 두며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는 내용이었다.

모두들 할 수 없다라고 손놓아버린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무궁한 가능성을 열었다.

꿈이 없던 아이들이 의사가, 변호사가 되고 싶어졌다는 것은 실로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그 아이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분명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 테니까 말이다.

 

나는 사실 관계에 있어서는 기대감을 갖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는다는 것을 알면 당장은 기분이 좋지만, 때로는 그것이 버거워지기도 하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일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를 품기 시작했을 때도 문제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은 홀연히 사라지고 그 사람이 본연의 모습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혼자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스페인 할렘가의 아이들에게 적당한 기대감이 그 아이들의 꿈을 만들었지만, 과도한 기대감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연예인들이 공황 장애를 겪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관심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관심의 정도가 지나치게 되는 순간, 오히려 그들의 꿈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것.

 

그 완급을 조절하는 일이 우리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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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
카린 랑베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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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은 루이 뤼미에르 영화 학교에서 카를라를 만났다.

조교와 학생 사이로,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아는 친구로.

카를라가 떠나기로 한 후 줄리엣은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수리공과 배달부까지 남자는 절대 들어가지 못하는

조금은 특이한 집으로.

조금 특이한 여자들이 사는 그 집으로.

 

발레리나였던 여왕이 사는 그 곳에는 다양한 여자들이 살고 있다.

수많은 찬사와 수많은 사랑이 지나가고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여자.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당하다 도망쳐 나온 여자.

부모님의 철저한 외면 속에 늘 외로움을 달고 사는 여자.

사랑을 만났으나, 지나치게 빨리 식은 남자들에게 상처받은 여자들.

그 여자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고 있다.

 

현대 사회는 소유 보다는 렌트의 개념이 강하다.

필요할 때만 자동차를 빌리고, 제품들을 빌리며 경제적인 소비를 한다.

나는 그런 습관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도 사랑도 그렇게 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진짜 연애보다는 썸을 타고, 데이트메이트를 만나고, 쿨한 사이가 멋진 것처럼 보낸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최대한 줄이고 필요할 때만 렌트하면서, 그렇게.

 

책에 나오는 이 여자들처럼

한 번의 사랑으로 몇 년 동안이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구질구질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 고리타분함이 좋다.

나는 철모르고 날뛰는 망아지 같았지만 순수했던 첫사랑을 떠올렸다.

마음을 얼마만큼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른 채

특별히 손에 꼽을 만한 추억도 얼마 만들지 못하고선

두어 달 만에 끝났던 시시한 연애였다.

 

시도 때도 없이 툭탁거렸으면서도, 다시 만날 생각이 없었으면서도

나는 헤어지고서 그 아이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성통곡하고 울었고

그 아이는 깜깜한 밤에 순식간에 뛰어왔다.

택시를 탈 겨를도 없었다며 헉헉거리며 맨 다리로 뛰어왔다.

비록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았고, 몇 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친구로 돌아왔다.

쿨하지 않았지만, 나름 괜찮은 첫 연애였다.

 

구질구질한 추억을 갖고 있는 내게는

이상한 여자들이 사는 그 곳이

어쩐지 오래토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반집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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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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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공기가 식탁 위를 맴돈다.

암묵적인 약속으로 같은 자리에 앉아있긴 하지만 그 누구도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는 곳.

아빠, 엄마, 큰 딸, 작은 딸.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전혀 즐겁지 않다.

큰딸은 그 자리에 폭탄을 설치하기로 한다.

“조건 만남 어플을 통해 만남 남자에게 섹스 동영상이 찍혔어요.”

 

이례적인 일이다.

그 식탁에서 사무적인 이야기 이외에 다른 말이 나온다는 것이.

 

과분할 만큼 부유한 집안에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가 돈을 받고 몸을 팔았다니.

우리 똑똑한데 착하기까지 한 큰 딸이 성 동영상에 찍혔다니.

와, 저 마더 테레사가 드디어 일을 쳤군.

 

책 속의 가족들도 책을 읽는 나도 모두 놀랐다.

 

잘 짜인 고급 실크같이 빈틈없고 우아한 가정에서 일어난

이 황당무계한 사건은

발단에서 결말까지 진행되는 과정을

가족 구성원 각각의 시선에서 엮어나가며 보여주어

마치 하나의 큰 주제를 포괄한 옴니버스 영화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족이지만 서로 전혀 알지 못했던 개개인의 마음과, 피치 못할 사정들과

티없이 깨끗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안고 살아야 했던 상처들을 보며

결국 누구나 엇비슷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물론 생계가 어려운 가정과 넘치는 부를 축적한 집이 같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 구성원들이 겪는 일은 큰 범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족의 넉넉한 생활을 위해 성공해야 하는 아버지와

엄마가 되기 아주 오래 전부터 여자로 살았지만, 꾹꾹 누르며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

으레 맏이에게 오는, 반듯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그리고 그런 언니에 치여 삐뚤어졌지만 티없이 순수한 동생.

 

결국에는 우리 모두 인간임에 틀림없고,

한국 사회에서 한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정이 밑바탕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유쾌한 문체와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로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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