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
카린 랑베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줄리엣은 루이 뤼미에르 영화 학교에서 카를라를 만났다.

조교와 학생 사이로, 그리고 서로의 상처를 아는 친구로.

카를라가 떠나기로 한 후 줄리엣은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수리공과 배달부까지 남자는 절대 들어가지 못하는

조금은 특이한 집으로.

조금 특이한 여자들이 사는 그 집으로.

 

발레리나였던 여왕이 사는 그 곳에는 다양한 여자들이 살고 있다.

수많은 찬사와 수많은 사랑이 지나가고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여자.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당하다 도망쳐 나온 여자.

부모님의 철저한 외면 속에 늘 외로움을 달고 사는 여자.

사랑을 만났으나, 지나치게 빨리 식은 남자들에게 상처받은 여자들.

그 여자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고 있다.

 

현대 사회는 소유 보다는 렌트의 개념이 강하다.

필요할 때만 자동차를 빌리고, 제품들을 빌리며 경제적인 소비를 한다.

나는 그런 습관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사람도 사랑도 그렇게 쉬운 세상이 되어버렸다.

진짜 연애보다는 썸을 타고, 데이트메이트를 만나고, 쿨한 사이가 멋진 것처럼 보낸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최대한 줄이고 필요할 때만 렌트하면서, 그렇게.

 

책에 나오는 이 여자들처럼

한 번의 사랑으로 몇 년 동안이나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일이

어쩌면 고리타분하고 구질구질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 고리타분함이 좋다.

나는 철모르고 날뛰는 망아지 같았지만 순수했던 첫사랑을 떠올렸다.

마음을 얼마만큼 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른 채

특별히 손에 꼽을 만한 추억도 얼마 만들지 못하고선

두어 달 만에 끝났던 시시한 연애였다.

 

시도 때도 없이 툭탁거렸으면서도, 다시 만날 생각이 없었으면서도

나는 헤어지고서 그 아이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성통곡하고 울었고

그 아이는 깜깜한 밤에 순식간에 뛰어왔다.

택시를 탈 겨를도 없었다며 헉헉거리며 맨 다리로 뛰어왔다.

비록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았고, 몇 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친구로 돌아왔다.

쿨하지 않았지만, 나름 괜찮은 첫 연애였다.

 

구질구질한 추억을 갖고 있는 내게는

이상한 여자들이 사는 그 곳이

어쩐지 오래토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반집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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