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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도시 - 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시대상을 반영하는 실재들 중 하나는 건축일 거란 생각이 든다. 건축물은 자연재해 또는 철거 등의 파괴가 아니고서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의 건축은 쉽게 부수고 짓는다. 역사적으로 보존해야 할 건물 따위는 불필요하다. 갓 지은 반짝반짝한 건물이야말로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보상으로 자리잡혀 있다.
이 책 [빨간 도시]는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이자 건축가인 서현 씨가 바라본 대한민국 건축과 도시목격담이다. [건축], [도시], [건축가] 총 3가지로 분류하였다. 먼저 빨간색(Red)를 떠올려 본다. 산불조심, 흡연 금지, 신호등 체계 속에는 정지와 경고의 의미가 강하다. 또한 이 색은 매혹과 먹음직스러운 컬러로도 분류가 되며, 또한 2002년 월드컵 신화를 쓴 축구 대표팀 유니폼도 떠올려 진다. 그 당시엔 너 나할 것 없이 빨간색 응원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땐 열정과 의지의 성격이었다.
“이 책은 빨강으로 수렴되는 씨족, 일제강점기, 북한, 반공, 군사/향락 문화, 경쟁, 거짓말, 과열, 월드컵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건축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추적한 치열한 관찰이다. 기묘한 동거를 이어온 한국 사회와 건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 책의 뒤표지
1장 [어떤 건축에 대하여]
건축은 건설이란 거대한 정치적 연막 속에서 계속 끌려가기만 했다. 도시의 인구증가는 좁은 땅덩어리에 아파트라는 대안을 만들어냈고, 이에 발 맞춰 중산층 진입에 대한 열망은 아파트, 부동산에 대한 집착으로 변했다. 그 후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덩어리는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거주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 전 세계가 마땅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이주 인구의 대부분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중산층으로 거의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과정이 일사불란하지도 순탄치도 않았고 적지 않은 도시 저소득층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p016
책을 읽다 보면, 아파트 외에 학교, 도서관, 예식장, 러브호텔, 장례식장, 미술관 등 대표적인 건축과 공간을 예를 든 풀이들을 엿볼 수 있다. 하나만 언급해 보면 학교와 운동장. 병영과 연병장을 규율, 복종, 감시, 처벌에 대한 동일 관점으로 보았다. 군대야 그렇다 쳐도, 해외 초중고 학교들은 다양한 배치, 평면들에 대한 설계기회를 주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교육기관 건축 메뉴얼만 보며, 다른 학교들과 비교하여 튀지 않게끔 지어지도록 요구한다. 즉, 변화를 싫어한다. 획일화에 갇혀있는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점수에 더 관심을 가질지 모른다.
2장 [어떤 도시에 대하여]
명품도시, 행복도시, 안전도시, 역사도시, 혁신도시 등 기원을 알 수 없는 OO 도시가 판 치고 있다. 도시를 하나의 브랜드처럼 정의하려 드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도시는 시간이 그려진 도화지와 같다. 예부터 그려져 있던 점(사람, 건물 등), 선(도로, 골목길 등), 면(광장과 같은 오픈스페이스 등)들을 고민해보고 이어 그려야 한다. 재건축과 리노베이션과 같은 덧칠도 가능하지만, 본래 칠해진 색과 드로잉을 망치는 행위는 문제가 된다. 이는 기존 도시 속 풍경과 건물의 매력을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스페인 빌바오 시를 보며 우리 도시에 대한 꿈을 꾼다. 저자는 멋진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만 보고 감탄을 내어 따라할게 아니라, 그 무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장치를 보길 권장한다. 빌바오는 1300년경 형성된 도시로 19~20세기에 탄광산업과 조선업으로 규모가 커졌으나, 1980년대 배의 크기가 점점 커짐으로써 항구의 이동으로 조선소, 컨테이너 야적장, 제철소 등이 남겨졌었다. 시에는 기존 산업의 주인이 사라졌으니, 다시 주인을 만들어줘야 했다. 빌바오 시는 개발의 주체권을 단순히 공무원 조직에 넘기지 않았고, ‘빌바오리아 2000’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 원칙을 다수결이 아닌 전원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토론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사업자가 도시를 함부로 망치지 않기 위해, 건축가 및 계획안 선정에는 상임위원회의 전원 동의를 얻어야만 건축행위를 인정해 주었다. 무엇보다 빌바오리아 2000이란 조직은 방문객 증가를 위한 도시보단, 현재 살고 있는 시민들을 위한 도시를 만들고자 했다.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은 의도치 않아도 된다. 그들은 시민들의 공간에 자연스레 흡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코리아 그랜드세일’에 발맞춰 면세점을 오가는 관광버스(중국인 관광객을 가득 태운)을 본 적 있다. 그들이 서울이란 도시를 쇼핑도시로 오해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
“빌바오의 교훈은 빌바오가 되지 못한 도시들에 있다. 복권 당첨의 화려한 팡파르 뒤에는 훨씬 더 많은 낙첨자의 한숨이 숨어 있다. 도시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의 공간이 아니고 차분하게 오늘을 사는 시민의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 -p191
3장 [어떤 건축가에 대하여]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건축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직 머릿속에는 정리가 되진 않았지만, 현재까진 암담하단 생각이 든다. (괜한 걱정)
“ 그리하여 그 공부를 통해 얻게 되는 가치와 힘이 자유다. 인문학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근원을 ‘자유로운 능력’이다. 그것을 공부한 이들이 지적 자유를 얻게 하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목표고 이를 위해 갖추게 해야 할 덕목이 왜라고 물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근본에 관한 질문을 던지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국 기술자의 수준에서 머물 수밖에 없다. " - p249
“ 이 사회는 정의롭지 않고 완전히 정의로워질 수도 없다. 그러나 좀 더 공정하게 만들려는 구성원의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사회의 정의롭지 못한 모습은 물리적으로 표현되어 도시에 깔린다.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보다 그렇지 않아도 좋을 곳에서 필요 이상의 대접을 받는 도시는 잘못되어 있다. 때로는 뻔뻔스럽게 드러나고 때로는 교활하게 숨어있는 그 모습을 나는 애써 찾아내고 싶다. ” -p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