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썰매
에린 구엔델스버거 지음, 옐리자베타 트레탸코바 그림, 천미나 옮김 / 한빛에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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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가득한 상점에는 들어온지 얼마 안 된 빨간 썰매가 있다. 빨간 썰매는 크리스마스까지 북극에 도착하여 산타가 끄는 큰 썰매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친구들은 빨간 썰매가 너무 작고, 느리고, 어리기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한다. 빨간 썰매는 날지도 못하는데 과연 산타의 썰매가 될 수 있을까.

친구들은 빨간 썰매에게 객관적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말을 하며 그에게 헛된 꿈이라고 알려준다. 누군가 꿈을 꾸고 희망을 가질 때 나 또한 현실적인 충고가 도움이 될거라는 마음에 불가능한 이유를 나열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빨간 썰매는 자신의 꿈을 향해, 자신이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빨간 썰매는 달리고 달려서 깜깜한 밤, 눈 쌓인 기찻길에서 까만 증기기관차를 만나게 된다. 이 장면은 마치 1986년 칼데콧 메달 수상작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The Polar Express》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책 속 소년이 북극으로 가는 열차에 탔듯이 빨간 썰매도 산타를 만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북극행 열차를 탄 빨간 썰매도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산타를 만날 수 있을까. 소년이 소원을 이루었던 것처럼 빨간 썰매도 소원이던 산타와 선물 배달을 성취할 수 있을까.

크고 빠른 기차의 모습에 빨간 썰매는 자신도 빨리 커지고 싶어한다. 기차는 오랫동안 이 길을 오르락내리락 해서야 한 칸씩 늘어났다고 이야기해준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빨간 썰매야.
삶이란 한 번에 한 칸씩 쌓여 가는 거란다."

기차와 작별인사를 하고 만난 노란 트럭도 북극으로 가는 빨간 썰매를 도와주고, 원래부터 잘 했던 것이 아님을 이야기해준다.

빨간 썰매는 북극으로 가는 길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만나 좌절하게 되고, 꿈을 이루지 못해 슬픔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빨간 썰매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산타를 도울 수 있었고, 자신의 작은 도움으로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선사했음을 알게 된다. 당장 산타와 함께 할 수는 없는 입장이지만 마침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 당장 멋진 모습으로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빨간 썰매는 한걸음 씩 꿈에 가까워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조급해하지 않고 한 번에 한 걸음씩 성장해가면서 자신의 할 일을 충실히 해내고 나면, 크리스마스 전날 어느 밤에는 산타를 도와 선물을 가득 실은 채 빨간 썰매도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다.

ㅡ한빛에듀의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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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엄마 안녕, 로마 웅진책마을 116
김원아 지음, 리페 그림 / 웅진주니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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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관리하고 신경쓰면 되었던 시절과 달리, 육아를 하면서 책임과 보호가 필요한 또 다른 존재 앞에서 매일 나의 바닥을 본다. 결혼 전에는 한번씩 나는 괜찮은 사람인 줄로 착각하기도 했는데, 나를 닮은 이 작은 아이를 키우면서 매번 못난 나를 마주하고, 자책과 연민이 뒤죽박죽된 감정의 혼돈 속에 하루를 마무리하곤 한다. 게다가 남편도 공감해주지 못하면 서운함은 배가 되고 그런 감정이 쌓이고 쌓이면 훌쩍 떠나고 싶은 순간이 온다.

승아의 엄마는 살기 위해 로마로 떠났다. 승아는 아직 엄마 아빠의 이혼 서류가 마무리되지 않은 것에 희망을 품고 엄마를 한국으로 데려올 목적으로 로마행 비행기를 탄다. 2년 만에 로마에서 만난 엄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긴머리에 몸에 딱 붙는 청바지와 민소매 차림의 엄마는 느긋했고 여유로웠고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런 엄마를 보며 승아는, '우리가 어두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엄마는 혼자서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빛났다는 사실이 무척 불쾌했다.'고 표현한다.

감정 변화가 심하고 예민했고 급한 모습으로 승아에게 기억되었던 엄마는 당시 답이 나오지 않는 생활에 상당히 지친 상태였을 것 같다. 매력적인 로마에서 자신의 일을 하며 생기는 존재가 될지, 매일 울면서 승아만 쫓아 다니지만 가정에 남는 엄마가 될지 엄마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승아의 말대로 부모의 이혼은 아이에게는 '심각한 재난 같은 것'이다. 지금의 엄마는 승아가 원하는 모습의 엄마가 아니다. 승아는 한국에서 일반적인 가정처럼 함께 모여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좋은 아빠가 있지만 승아에게 엄마가 필요하다. 처음 생리하던 날도 혼자 생리대를 사러 간 승아는 살면서 당연히 겪는 이벤트들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승아는 부모님으로 인해 누구보다 상처받고 아픈 시기를 보내고 있다.

살면서 우리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을 겪고 아파하곤 한다. 부모가 결혼과 출산, 양육이라는 치열하지만 숭고한 책임을 다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김원아 작가는 승아처럼 지금 이해하지 못할 아픔을 겪고 있는 독자들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문제에서 한 걸음 물러서길 바랍니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립시다.' 라고 <작가의 말>에서 다독여준다.

책은 1인칭 승아의 시점으로 쓰여져 있어 아빠와 엄마가 다시 한 가정을 이룰 것인지 승아로 인해 재회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승아의 입장에서 감정이입된 상태로 읽어갈 수 있었다. 리페 작가가 그려낸 아름다운 로마와 서정적인 순정만화 분위기의 그림 덕분에 상황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부모의 이혼을 앞두거나 이미 이혼한 가정의 초등 고학년 학생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어떤 모습이든 그 폭풍우 속에서 많이 아프겠지만 부모와 한걸음 떨어져 자신을 잘 돌보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전쟁 같은 나날이겠지만 유럽에 흑사병이 그치도록 기도하던 교황이 대천사 미카엘이 칼을 집어넣는 환상을 본 후 흑사병이 그쳤듯이, 이혼을 겪은 아이도 언젠가 마음의 칼을 내려놓고 흑사병 같은 날들이 끝나는 날이 올 것을, 그것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는 날을 경험하게 되길 바라게 된다.

ㅡ웅진주니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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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원을 경영하라 - 국민가게 다이소 창업주 박정부 회장의 본질 경영
박정부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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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좀 살 거 없을까."
길 가다가 다이소가 보이면 그냥 지나지 못하고, 새로 들어온 상품들이 뭐가 있나 구경을 시작한다. 왜 그런건지 보다보면 필요한 물건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곧 구매로 이어진다. 다이소는 편하게 들어갔다가 손에 적어도 한두 물품은 기본으로 사서 나오는 곳이다. 때로는 '다이소플렉스'를 하기도 하는데 일상템은 물론이고, 추천템들을 눈여겨봐두었다가 사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다.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 가성비 꿀템이 많아 쇼핑 만족도가 높다.

국민가게 다이소 창업주 박정부 회장은 《천원을 경영하라》에서 "생활용품 균일가숍"이라는 업의 본질에 충실했던 것이 가장 핵심적인 성공요인이라고 한다. 다이소를 창업하기 전, 노조파업이 일어나면서 간부급 생산책임자로 있던 그는 압박감과 모멸감에 힘들어하다 마흔 중반에 퇴사를 결정하고,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감으로 집중력을 다해 창업을 하게 된다.

무역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발로 뛰며 직접 샘플을 골라 일본 납품처를 뚫고, 균일가 시장조사를 위해 전세계를 돌아본다. 스페인 균일가 시장에서 영감을 받아 샘플 연구를 위해 수집한 샘플이 나중에는 1톤 트럭 분량이나 되어 통관 직원들이 놀랐던 적도 있었다니, 오늘의 다이소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 다이소에 납품할 때, 다른 회사들은 더 싼 제품을 찾아다녔지만, 그는 더 좋은 제품을 찾아 세계를 누렸다. 상품 개발력을 단련하고 품질을 인정을 받게 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의정부에서 오픈한 한국형 균일가 가게는 시장이 마비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안전사고가 날까 봐 매장 관리자가 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가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발로 뛰며 깨달은 것은 균일가 사업의 핵심은 "상품과 가격"이란 것이다. '늘 고객을 중심에 놓고 어떤 상품과 가격으로 고객을 만족시킬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자부한다. 쉽게 가려고 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본이란 본질을 파악해서 실천하는 것, 작은 것부터 지키는 것'임을 물품 공급과 매장 운영, 관리에서 철저히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서민들이 방문하는 매장인 만큼 그들이 흘린 땀방울과 천 원에 담을 수 없는 큰 땀의 가치를 알고, 그들이 지불하는 천 원이 소중하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품질과 상품 배치도 섬세히 배려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다이소가 일본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다이소는 순수 한국 기업이다. 한일관계가 냉랭해질 때마다 오해를 받고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고 있기에 책에서도 이 부분을 확실히 알리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보인다. 애초에 일본의 다이소산교라 균일가 업체에 물품 공급을 하면서, 상품에 만족한 다이소산교와 비즈니스 협력 관계를 유지하다가 지분을 투자받고, 브랜드를 공유하게 되었을 뿐,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도 아니고,매장 운영이나 경영에 참여하지도 않는 별개의 회사라는 것이다. 다케시마를 후원하는 일본 기업이라는 소문과 달리, 아성다이소는 독도사랑 운동본부와 협업하고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30여 년간 꾸준히 성장한 순수 토종 한국 기업인데 지속적으로 오해를 받으니 고충이 많음이 느껴졌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그 안에 '혼'을 담아 철저히 검사하고 관리하여 불량을 줄이고 체감 품질을 높이며, 상품 패키지도 내용물을 세심히 알 수 있게 제작하고 있다. 어머니께서 뒤늦게 창업한 아들이 성공하길 바라며 지어주신 회사 이름 '아성'은, "아시아에서 성공하라"는 뜻인데 그 염원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소비자 입장에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아성다이소가 홈런을 치고 있는 것이 보이지만 이런 결과를 내기까지 작은 일을 철저히 해오며,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땀방울이 그 속에 녹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을 통해 아성다이소 박정부 회장의 진심이 담긴 '천원정신'으로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경영 철학, 일에 임하는 자세까지 알게 된 유익한 책이었다. 앞으로도 고객이 이끄는 대로 꾸준함을 가지고 '가성비 높은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할 아성다이소의 길이 기대된다.

ㅡ쌤앤파커스의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천원을경영하라 #박정부 #다이소 #경영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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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이야기 - 나의 어머니, 오드리를 기억하며, 2024 행복한 아침독서 선정도서 그림책 숲 30
션 & 카린 헵번 페러 지음, 도미니크 코르바송 외 그림, 이현아 옮김 / 브와포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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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이라 하면 「로마의 휴일」에서 상큼한 미소와 발랄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지닌 앤 공주가 먼저 떠오른다. 어린 시절, 화면을 통해 본 로마 배경도 환상적이었지만, 영화 속 오드리 헵번은 존재만으로도 빛이 났고 분명히 흑백 화면을 보았는데도 컬러가 더해진 듯한 마법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어진 영화마다 기품있는 패션 스타로서 '헵번 스타일'을 유행시키고, 시대의 아이콘으로 한 세기를 풍미한 매력적인 배우는 노년의 삶까지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이런 오드리 헵번의 유년부터 노년의 스토리를 담은 그림책이 나와서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일러스트를 그린 도미니크 코르바송, 프랑수아 아브릴 작가는 주로 빨갛고 파란 컬러를 이용해 사랑스럽고 감각있는 분위기로 오드리 헵번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튤립 뿌리까지 먹을 수 밖에 없는 굶주림, 불을 땔 연료도 없는 가난과 추위, 생명의 위협 속에 늘 긴장감 속에 살았지만, 그녀는 절망하지 않고 꿈을 꾸며 긍정적인 태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다. 이렇게 암울한 어린 시절이지만 밝은 컬러로 그려져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그녀가 출연한 영화 장면이 유명 잡지 표지로 그려진 페이지에서는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로서의 오드리 헵번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오드리 헵번의 아들인 션과 며느리 카린 헵번 페러가 써서 특별함을 더해준다. 그래서인지 화려한 조명과 대중적 사랑을 받은 배우로서의 오드리 헵번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고 양육하며 직접 집안일도 하는 온전히 엄마로 집중한 모습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그림책 속 그녀 옆에는 언제나 강아지, 인형, 아이들이 항상 함께 하고 있는데 다정다감하며 누군가를 돕고 보살피는 것을 좋아한 그녀의 따스한 성품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중립국 스위스에 살며 가정을 이루며 편안하고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전쟁의 아픔을 겪은 그녀는 슬프고 외로운 아이들이 있음이 마음에 걸려서 전쟁 중인 나라의 배고픈 아이들을 돕는데 헌신했다. 품위있는 아름다움을 지닌 오드리 헵번은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여전히 전염병이 창궐하고 전쟁이 겨울로 들어서는 시점에 오드리 헵번의 그림책 출간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자신의 안위만 위하며 다른 사람의 어려움은 외면할 것인지, 주어진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나누고 내가 속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갈 것인지 각자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스크린에서보다 어려운 나라에서 더욱 아름답고 빛났던 오드리 헵번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들을 둔 엄마로서 후에 나는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해진다. 오드리 헵번처럼 내 삶을 사랑한 사람으로, 아이들도 자랑스러워 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ㅡ브와포레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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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트리스의 예언 비룡소 걸작선 63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소피 블랙올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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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이 전쟁 중에 일어났어. 슬프게도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시대와 구분되지 않았어. 전쟁은 어느 시대에나 항상 있었으니까.❞ (p.13)

케이트 디카밀로를 알게 된 건 버터를 잔뜩 바른 토스트를 좋아하는 돼지『머시왓슨 (Mercy Watson)』을 읽으면서였다. 이번 #비어트리스의예언 은 발랄하고 유머가 가득했던 그 첫 만남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전에는 돼지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번 책에는 돌처럼 딱딱한 머리를 가진 염소가 등장한다. 이 염소는 이름 외에 모든 기억을 잃고 피투성이가 된 소녀 비어트리스를 보호해준다.

세상은 비어트리스가 침묵하기를 원한다. 여자가 글을 읽고 쓰는 것이 금지된 세상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비어트리스의 안전을 위해서. 하지만 두려운 상황에도 소녀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편을 택하며 숨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예언과 저주, 거짓말과 음모가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과 용기, 부드러움과 이야기를 가지고 자신이 가진 신념대로 행동한다.

책에는 이렇게 연약하고 보드라운 존재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로부터 인정하지 못하고 어릴 때 수도원으로 보내진 아픔을 가진 수사 에딕, 숲에서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하고 마을로 도망쳐 혼자 살아내야 한 잭 도리, 노래에 유창하며 잘 웃는 카녹. 이들은 비어트리스를 만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비어트리스 역시 이들과 함께 하는 중에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어떤 세상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사명을 깨닫는다.

'슬픔의 연대기'라는 예언의 비밀스러움과 지배층이 만든 글에 대한 금기는 사람들을 무력함 속에 빠뜨리고 불행을 당연시 여기게 만들었다. 예언서를 자신의 탐욕을 위해 악용하고 인간적인 개입으로 권력을 쟁취하거나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며 바보같이 휘둘리던 지배계급은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누군가를 알아보고 사랑해 주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지' 아는 비어트리스는 더이상 비밀과 금기, 억압에 지배되는 나라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다. 책은 보복과 복수가 아닌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유용해 보이지 않은 미약한 시도와 애씀이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거기에 더해 『안녕, 나의 등대』의 소피 블랙올 작가의 흑백 삽화와 고풍스럽고 우아한 글 장식은 책을 더 빛나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두 작가의 조합만으로도 무척이나 의미있는 책이었다.

전쟁의 시기라도 '글자들이 모여서 단어를 만들'고 '단어가 세상의 이름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지금 어떤 형태라도 전쟁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현실의 비극을 버텨내며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고, 삶의 희망을 가져다주리라 믿는다.

ㅡ비룡소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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