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트리스의 예언 비룡소 걸작선 63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소피 블랙올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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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일이 전쟁 중에 일어났어. 슬프게도 그렇기 때문에 다른 시대와 구분되지 않았어. 전쟁은 어느 시대에나 항상 있었으니까.❞ (p.13)

케이트 디카밀로를 알게 된 건 버터를 잔뜩 바른 토스트를 좋아하는 돼지『머시왓슨 (Mercy Watson)』을 읽으면서였다. 이번 #비어트리스의예언 은 발랄하고 유머가 가득했던 그 첫 만남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전에는 돼지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번 책에는 돌처럼 딱딱한 머리를 가진 염소가 등장한다. 이 염소는 이름 외에 모든 기억을 잃고 피투성이가 된 소녀 비어트리스를 보호해준다.

세상은 비어트리스가 침묵하기를 원한다. 여자가 글을 읽고 쓰는 것이 금지된 세상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비어트리스의 안전을 위해서. 하지만 두려운 상황에도 소녀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편을 택하며 숨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예언과 저주, 거짓말과 음모가 가득한 세상에서 사랑과 용기, 부드러움과 이야기를 가지고 자신이 가진 신념대로 행동한다.

책에는 이렇게 연약하고 보드라운 존재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로부터 인정하지 못하고 어릴 때 수도원으로 보내진 아픔을 가진 수사 에딕, 숲에서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하고 마을로 도망쳐 혼자 살아내야 한 잭 도리, 노래에 유창하며 잘 웃는 카녹. 이들은 비어트리스를 만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비어트리스 역시 이들과 함께 하는 중에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어떤 세상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사명을 깨닫는다.

'슬픔의 연대기'라는 예언의 비밀스러움과 지배층이 만든 글에 대한 금기는 사람들을 무력함 속에 빠뜨리고 불행을 당연시 여기게 만들었다. 예언서를 자신의 탐욕을 위해 악용하고 인간적인 개입으로 권력을 쟁취하거나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며 바보같이 휘둘리던 지배계급은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누군가를 알아보고 사랑해 주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지' 아는 비어트리스는 더이상 비밀과 금기, 억압에 지배되는 나라가 아닌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다. 책은 보복과 복수가 아닌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유용해 보이지 않은 미약한 시도와 애씀이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거기에 더해 『안녕, 나의 등대』의 소피 블랙올 작가의 흑백 삽화와 고풍스럽고 우아한 글 장식은 책을 더 빛나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두 작가의 조합만으로도 무척이나 의미있는 책이었다.

전쟁의 시기라도 '글자들이 모여서 단어를 만들'고 '단어가 세상의 이름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지금 어떤 형태라도 전쟁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현실의 비극을 버텨내며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고, 삶의 희망을 가져다주리라 믿는다.

ㅡ비룡소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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