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학원 대신 시애틀, 과외 대신 프라하 - 사교육비 모아 떠난 10년간의 가족 여행기
이지영 지음 / 서사원 / 2022년 5월
평점 :
엄마표 영어와 전작 '엄마의 소신'으로 익숙한 이지영 작가의 신간은 10년간의 가족 여행기를 담은 책이다. 가족이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경우는 흔한 일이지만, 이 책의 특이점은 사교육비를 모아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는 점이다.
책에는 아이들이 각각 초1, 6세일 때의 미국 여행을 시작으로 고1, 중2 때의 홍콩 여행까지 가족의 해외 여행 일화와 느낀 점이 담겨있다. 부부와 두 딸은 미국, 태국, 중국, 프랑스, 체코, 홍콩 이렇게 함께 여행하며 성장해갔고, 추억을 쌓았다.
우리 집도 가정에서 아이들이 학습하고 있고, 다른 사교육을 시키지 않기 때문일까 《학원 대신 시애틀, 과외 대신 프라하》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마음이 설렜다. 8주 간의 미국 여행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일주일 이내의 여행이라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가기에 현실적인 면에서 참고하기도 좋았다.
가족은 여행지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기도 하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런 에피소드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기에 이들 가족의 여행이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완벽하게 준비되고, 계획한 대로 온전히 행해지는 여행이 있을 리가 없고, 나는 그런 돌발변수를 아이와 함께, 그것도 타국에서 경험하기 싫어서 아이와 해외 여행하는 것을 꺼려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여행간 김에 아이들이 그 나라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거창하지 않아도, 가족들이 함께 겪는 그 시간들이 더 중요함을 알려준다. ‘여행 중에 아이에게 뭘 가르치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 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건 잔소리일 뿐. 여행은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p.100) 고 말해준다.
가족은 여행지에서 부족한 부분은 그 때의 상황에 맞게 헤쳐가는 지혜와 유연성을 발휘하곤 한다. 좁은 숙소에서 책상을 더 들일 수 없어 다리미대를 이용하고, 치약을 챙겨가지 못해서 소금으로 양치를 하고, 도시락을 준비했는데 수저를 빠뜨려서 쿠킹포일로 수저를 만들어 식사를 하기도 한다. 깜박하고 못 챙긴 것이나 실수에 대해 다른 가족 구성원을 비난하거나 불평하는 대신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고,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초기 여행 때 아이들은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도 새로운 동네를 ‘거대한 장난감’ 삼아 관찰하고 즐기고, 뤽상부르 공원에서 땅을 파서 무언가 심으며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낸다. 그러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부모의 든든한 길동무가 되고, 부모보다 더 멋진 구도로 사진을 찍고, 여행 사진을 날려버려 속상한 엄마에게 여행 동영상을 만들어 주어 감동을 줄 만큼 자란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 느끼지 못한 아이들의 성장을 여행을 통해 느끼고, 대화의 주제와 방법과 수준도 여행지에서는 달라짐을 경험했고, 여행지라는 낯선 곳에서 서로의 존재의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시기에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국영수 사교육이나 과외가 아닌 가족 여행을 아이에게 선사해주는 것은 작가의 전작에서 이야기한 소신있는 양육의 한 모습 같았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음을, 모든 부모가 반드시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닌,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너무 준비하고 계획하다가 기운빼곤 하는 나에게 아이도, 여행도 별 기대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했고 삶에 대해서도 한걸음 또 내딛도록 용기와 여유를 주었다.
"기대하지 않았을 때 더욱 예쁘고 잔뜩 기대하고 있으면 아쉽다. 너무 기대하지 말자. 기대가 가치를 떨어뜨린다. 여행도, 아이도." (p.315)
ㅡ출판사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