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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 - 정여울이 건네는 월든으로의 초대장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해냄 / 202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월든 호수로의 초대장을 받고 산책길을 걷는다. 숲속 오솔길을 한참 걸어가면 흙냄새와 훈풍이 가득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소박한 오두막이 맞아줄 것 같다.
정여울 작가가 쓰고 이승원 작가의 사진이 담긴 『비로소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찾다』는 개인적으로는 매번 완독에 실패했던 『월든』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 일으킨다. 작가의 다정한 소개 덕분에 『월든』은 물론, 데이비드 소로, 나 자신과의 친밀도도 올라가는 시간이었다. ‘소로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단지 그의 문장이 아니라 그의 세계관 전체에 매혹된다. 나는 소로의 수줍은 미소, 고색창연한 어휘력, 고전에 대한 탁월한 독해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탐욕으로부터 무한히 자유로웠던 그의 놀라운 소박함이 좋다’ (p.47)는 정여울 작가의 안내로 책을 읽는 내내 작가와 함께 소로의 고향인 콩코드 지역으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로 뉴욕에서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날 수가 없었다’는 소로는, 절망할 이유가 더 많았던 삶을 살면서도 항상 희망과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소로는 월든 호수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붐비는 고독’을 누리며 원하는 만큼 사람들과 거리를 둔 동시에 사람과의 소통을 이어가면서 읽고 쓰기를 지속한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오직 자기 삶의 속도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긍정하는 삶을 살아낸 소로는 세상의 빠른 보폭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게 위로를 준다. 소로는 내 마음의 월든을 가꾸어 가면서 나 자신이 되는 길을 발견하기를 조용히 기다려준다.
인간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기 보다는 자급자족하면서 소박한 삶을 몸소 실천한 소로는 자연과 교감하며 자연이 풍요로워지는 길을 선택한다. 숲에서 커피도 차도 없이 그저 호수의 맑은 물과 간단한 식단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키며 간결하게 살아낸 그의 삶은 스스로가 간절히 체험하고 싶어한 ‘삶의 정수’를 느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서울 면적의 1/4이 넘는 산림이 불타고 있다. 잿더미만 남은 생활터전 앞에서 황망해하는 주민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며 지켜온 금강소나무 군락지도 소실되기 직전이라고 한다. 소로가 살아있다면 불타는 산을 보며 얼마나 괴로워했을까. 생명과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존엄함를 잊고, 존재의 여백을 남겨두지 않은 결과가 너무도 아프게 다가온다. 숲속의 나무처럼 ‘삶이라는 찬란한 햇빛’을 사이좋게 나눠가질 수 있는 배려와 사랑이 절실한 요즘, 서로를 돌보는 마음의 여백을 가꾸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수많은 뉴스와 온갖 걱정으로 마음에 빈틈이 없을 때조차도, ‘나는 아프다’고 말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생각할 자리, 그리고 내 마음에 아직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사랑의 자리는 남겨둘 수 있기를.” (p.183-184)
진정한 자신을 만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타인을 소중히 여기는 삶은 풍요와 감동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 가치를 모른 채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타인의 평판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결핍을 궁핍으로 여기지 않는 재능’ (p.229)을 가졌던 소로의 여유와 용기를 조금씩 나누어주는 느낌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자연 속에서 싱그러운 희망을 발견한 소로는 ‘간결하고, 조용하게, 차분하게’ 온전한 인생을 살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일상 속의 여행자’였던 소로 덕분에 내가 있는 공간에서 나만의 월든 오두막을 가꾸어가고 그곳으로의 산책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의 삶의 힘이 녹아 있는 공간에서 나만의 몸짓으로 잘 살아가고 싶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즐기며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내면의 에너지가 충전된 기분이다.
ㅡ출판사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