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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윤슬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평점 :
품절
언제든 넉넉한 품을 내어주실 듯한 박완서 작가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가 ‘윤슬 에디션’
이라는 새 옷을 입고 찾아왔다. 올해 초 출간된 여우눈 에디션도 그렇게나 마음을 사로 잡더니, 이번 한정판은 이름대로 표지의 물결이 빛에 반짝반짝거리는데 표지 속 헤엄치는 두 사람과 그 여유롭고 충만한 시간을 함께 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표지를 보고 있자니 작가님의 눈부신 삶의 문장들이 잔물결의 일렁임에 하나하나 떠오르는 기분이다.
작가님의 글은 다시 읽어도 다정하고, 따뜻하고, 또 새롭다. 따님 호원숙 작가님의 프롤로그처럼 '어머니의 글은 분명 여러 번 읽었을 터인데도 볼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라는 문장에 공감하며 이번 책은 더욱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다.
작가님의 에세이는 소박한 여느날들을 기억하고 싶게 만들어 준다. 당연한 것들을 재발견하는 눈을 열어준다. 그렇게 독자의 삶을 아우르고 보듬어주면서도 자신에 대해서는 무뎌지거나 오만해지지 않도록,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p.202 / 중년 여인의 허기증)' 글을 써가셨다.
또 스스로를 일반적이고 피상적인 예비지식으로 소박한 인간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무참하게 헐벗은 것처럼' 느끼고, '진저리가 쳐졌다'고 고백할 만큼 매번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을 멈추지 않는 삶을 사셨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진노와 동네 문중의 비난과 억측을 뒤로 하고 시작한 서울 생활이었지만, 어머님의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그 시절이 '지극히 행복하고 충만한 시절로 회상'된다는 작가님. 여자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상경한 어머님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는 것뿐이었다지만, 그것이 만병통치약처럼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잠깐만 어쩔 줄을 모르고 우두망찰을 하셨을 뿐, 곧 달덩이처럼 환하고도 슬픈 얼굴이 되시면서 재밌는 이야기로 나의 아픔을 달래려 드셨다."
(p.192)
그런 이야기의 효능을 경험한 작가님은 어머님과 같이 뛰어난 이야기꾼이 되셨다. 그렇게 작가님의 문장들은 나의 팍팍한 삶의 경험과 상한 마음에 '호오, 호오' 입김을 불어주시면서 지금도 위로를 준다.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함'을 다독여준다. 궁상맞다 느껴지는 감정들, 비껴나 있고 싶은 마음들 괜찮다고 넉넉히 안아준다.
세계사 마케팅팀의 정성 가득한 손편지에는 "당신에게 가장 빛나는 일상의 순간은 언제인가요?"라고 시작한다. 비록 시시한 듯 여겨지는 일상이라도 마음에 한 문장이 꽂힌다면 빛나는 순간이 되며, 나는 그 문장 덕분에 삶을 살아갈 힘을 얻곤 한다. 그러면 마음이 다시 부드러워지고, 삶 속에 소박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보는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오늘도 박완서 작가님의 글 덕분에 윤슬의 영롱한 반짝임을 경험하는 기쁨을 누린다.
ㅡ세계사출판사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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