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홍선기 모티브 세기의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홍선기 작가님의 놀라운 통찰을 통해 이리도 훌륭히 엮어주심으로 인해 두 거장의 콜라보가 아름답게 완성이 되었다. 심지어 한스페터 지겐탈러 헤세라는 헤르만 헤세의 후손 대표께서도 이 책을 인정하며 "헤르만헤세도 살아 있었다면 이 책을 좋아했을 것"이라고 하였을 정도이다. 그동안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읽고 따로 고흐의 테오를 향한 편지들을 읽고 그림들을 감상하였다면 이제는 한 자리에서 하나의 책에서 두 가지를 다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고흐가 죽음을 맞이한 서른 일곱살 그 해는 헤르만 헤세가 13세를 맞이한 때이다. 헤세는 15세 자살시도를 하였다가 가까스로 살아날 수 있었고 고흐는 37세 권총으로 생을 스스로 마감하며 테오의 품에서 죽었다. 헤세는 고흐의 삶과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고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고흐가 생을 마감한 뒤 이듬해에 테오도 형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과 매독이 겹쳐 생을 마치고 만다. 십여년 형에게 생활비와 물감값을 편지 답장들과 함께 보내주었던 테오는 자신의 생활비의 절반을 기꺼이 형에게 보내며 형의 그림 작업의 물질과 정신적인 후원을 보낸 고흐가 작품을 그릴 수 있었던 실질적인 원동력이었다. 어찌보면 테오의 후원이 오늘날의 고흐를 있게 한 셈이다. 이번에 처음 알게됐다. 빈센트에게 있어 테오가 이 정도로 열렬한 후원자였다는 것을 과거엔 정신적으로 의지가 된 기댈곳이었다는 정도로만 알았지 그렇게 오랫동안의 형을 먹여살린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고흐의 작품은 그가 살아있을 적엔 하나도 팔리지 않았으니 그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오늘날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에 하나인 심지어 독일내의 작가중에서만이 아닌 세계적으로 그러한 헤르만 헤세와 인상주의파 화가중에서 뿐만아니라 모든 화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하나인 빈센트 반 고흐의 만남이 낯설지 않다. 그리고 고흐의 마지막 편지 말처럼 그의 작품이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날이 올거라했던 그 날이 실제로 와서 다행이고 축하할 일이다. 2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의 작품중 하나가 1억달러를 훨씬 넘는 가격으로 낙찰되었으니 그가 상상한 경제적인 가치 인정의 수천배나 더 높게 이뤄진 셈이다. 물론 예술작품의 가격은 의미가 없다. 가치를 굳이 따질 수는 없으니까. 두 작가를 싫어하는 독자들이 있을까. 누군가의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에 늘 다섯손가락안에 있을 이들의 뛰어난 콜라보가 우리 앞에 놓여졌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시간과공간사남성으로서 또 시대적으로도 민감치 못하고 조금 뒤쳐져 있는 나는 몰랐었지만 이미 이 책의 유명세는 상당했었고 버지니아울프라는 이름은 한 때 유행처럼 여성지식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종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일전에 읽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댈러웨이 부인'에서 느꼈던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통 알 수없었는데 자기만의 방을 읽고 나니 그 무언가의 정체를 조금은 알 수 있는 길이 열린 듯 싶었다. 역자가 이야기하듯이 책의 전개는 독자에게 읽기 어려운 의식의 흐름이라는 당시에 사용된 실험적인 기법에 의해 진행된다고 하였고, 그 사실을 모르고 읽었지만 지금와서 보니 그랬었구나 그래서 읽기가 좀 그랬구나 싶다. 전에 읽다가 중도에 놓은 제임스조이스의 '율리시즈'도 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었는데 자기만의 방은 그래도 율리시즈보다는 덜하니 읽는 것이 그나마 낫지 싶다.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있어야 한다는 그 말이 유명하다고 한다. 픽션은 소설을 말하는 것이고 비단 소설만이 아닌 모든 문학작품을 대표하는 단어로 보였다. 그만큼 당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경에는 여성의 위치나 권리가 남성에 비해 턱없이 낮았고 일부 소수 부유층이나 귀족층을 제외하고는 멸시, 차별, 무시를 당했던 때임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을 논하고 쓰는 것은 고사하고 글을 읽는 것조차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터이다. 왜 그랬을까 싶은데 내 생각엔 여성은 아이를 낳고 기르며 집안에서 일을 도맡아 책임지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한다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사회의 특히 남성의 고정관념이었을터다. 글을 배워 읽는 것도 더 나아가 쓰는 것도 여성으로서는 불필요한 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여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가 되기위한 조건으로 남자가 벌어다주는 수입과 자기만의 방 즉 여성이 침해받지 않을 권리라는 이 두 가지가 보장되어야 비로소 여성은 남성처럼 어떤 방해 없이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하나 비단 글을 쓰는 일만이 아니라 여성이 하지 못하고 할 수 없었던 모든 일을 말하는 것으로 픽션을 말한 것일 뿐 사회전반적으로 여성도 그런 사회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권리를 얻어야 함을 피력한 것인 셈이다. 그 점을 높이 사서 뭇사람들에게 특히 아마도 여성들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혁명을 이끄는 위대한 개척자가 되었다.정작 버지니아 울프는 정신적인 혼란을 겪어왔고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서 신경쇠약에 자주 걸려서 자살충동과 시도가 늘 어두운 그림자처럼 그녀를 따라다녔고 이내 60세가 넘은 초반 즈음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여 죽음에 이르기도 하였다. 당시는 2차세계대전 중으로 독일이 영국을 침략하면 마침 울프가 있는 그 땅에 상륙하여 본인이 살륙당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끔찍한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기도 하다.특히 죽기 전에 사랑하는 남편에게 쓴 편지는 애처롭기까지 한데 그 내용은 유언조의 내용으로 남편에게 그동안 너무 고마웠고 사랑하며 자신 때문에 그동안 힘들었던 점이 너무 미안했고 이제 당신을 놔줘야하며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하루 빨리 지워야 한다는 즉 죽음으로서만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울프는 결국 자신의 깊은 우울감이 누적에 누적을 거쳐 해소할 길이 없다보니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을 택하였다. 자살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나름의 선택을 이해는 해야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생각난다. 해서 쇼펜하우어도 자살을 옹호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던 적도 있지만 정작 그는 노년까지 자살따위는 하지 않았다.버지니아 울프가 자살하지 않고 좀 더 인생을 자기 명대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그러면 그녀말대로 여성의 권리가 전보다 나아지고 또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보지 않았을까 그러면 좀 더 그녀의 어두운 안개같은 것들이 걷히지 않았을까 싶다.아니면 모든 것은 후대 사람들이 과장되게 해석한 부분이며 실제로 울프자신은 여성이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가지는 것이 사회전반까지 변화되기까지를 바란 것은 아닐 수도 있고 단지 그런 것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라고 문제만 삼은 것일 수도 있겠다.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 멸종 실패기유진 빅피시얼마전 인터넷까페에서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의 제목은 "아버지, 어떤 인생을 살아오신겁니까?" 였고 한 장의 사진이 본문에 첨부되어 있었는데 산과 산을 로프로 연결하고 로프에 기계를 간단히 걸고 거기에 매달려서 로프를 통해 매달린 채로 공중을 건너는 사진이었으며 심지어는 두사람이 일자로 매달려 동시에 두 사람이 건너는 사진이었다. 사진의 진위여부는 알 수 없으나 그들 아래쪽은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거리만큼 되어서 만약 로프에 의지한 걸개같은 것을 팔힘이 떨어져 놓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황천길은 따논 당상이었다. 그 사진이 생각난 이유는 오늘 본 책에서 과거의 위험천만했던 나날을 보낸 불과 몇세대 앞에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와 다르지 않았고 아니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었다.제목이 인류의 멸종에 실패한 기록인데 그만큼 불과 100년에서 150년 전의 삶은 안전과 위생, 치안과는 거리가 머나 먼 그런 것이었다. 수술대 위에서 마취없이 당연스레 수술이 이뤄지고 절단이 이뤄진다. 고통을 참을 수 없어 몸부림치는 환자를 세네사람의 장정들이 몸을 붙잡고 환자를 침상에 묶어버리기도 한다. 수술 중에 사망할 수도 있고 수술 뒤에 살아남아도 패혈증으로 죽게 되는 일도 적잖았다. 그야말로 수술을 안할 수 없는 상황이라 수술을 했겠지만 수술 전에 엄습하는 공포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어차피 수술안해서 죽을 거라면 수술을 해보고 조금이라도 살길을 찾는게 맞을 수도 있겠지만 마취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엔 그랬다.엉터리 약도 유통되고 잘못된 지식으로 수은을 얼굴에 발라 백옥같은 피부를 얻는 대신 수은 중독이 되고 라듐이 몸에 활력을 줄거 같다는 인식으로 라듐을 몸에 바르고 먹다가 방사능에 피폭되어 일찍 사망을 하기도 했다.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아동노동력을 착취했는데 그 일이 사회에 고발되어 대대적으로 수습되기 전까지 수많은 아동들이 광산이나 공장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계에 끼여 죽거나 폐가 망가져 일찍 사망하기도 했다. 대공황 때에는 수백만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나와 사회적으로 크게 혼란스러웠는데 록펠러센터를 짓느라 25만명의 일자리가 제공되는 가운데 고층 빌딩을 지을 때 안전장치 없이 건설에 임한 이들 중에 추락하여 몹쓸일을 당하기도 했다.사형집행인의 삶을 조명해주기도 했고 사형집행인은 동시에 고문집행인 되어 누구도 꺼리는 일을 맡은 대신에 복지가 좋았지만 일반적인 사회로 녹아들 수 없고 소외당하여 따로 먼 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고통을 겪었다. 사형집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일차적인 고통 뒤에 사회에 격리되는 이차적인 고통까지 받게 된 것이다. 과거의 감옥은 인권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4미터 되는 구덩이에 밀어넣고 사회에서 삭제가 되어 목숨을 이어갈 정도의 식량만 던저주고 사방이 1미터 공간에서 때로는 앉지도 못하게 못을 바닥에 박아넣어 계속 서있게 만드는 상상이상의 고통으로 또 아무하고도 대화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문제는 수형자가 왜 본인이 갇혔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다반사였고 죽기 전까지도 알지 못한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고도 한다.믿기 힘든 일들이 많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혜택을 그 때보다 수십배는 더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은 운좋게 내가 그들보다 조금 나중에 태어났다는 것 외에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내가 태어났었다면 아마 위에 나열된 생사를 넘나든 환경속에서 얼마나 버텼을 지는 알 수 없다. 그 때는 그게 일상이었고 지금와서 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 많았다. 다시 한 번 위에서 언급했던 그 문장을 고인이 된 그분 들에게 건네보고 싶다. "형님, 아버지, 아저씨, 과거의 여러분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겁니까?"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릴케 시 필사집라이너 마리아 릴케 배명자나무생각<쓰는 기쁨>의 세번째 책을 맞이했다. 독일의 시인 중에서 최고로 꼽는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필사집으로 릴케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동일선상에 둘 정도의 문학성을 가진 독일 내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릴케는 윤동주의 시에도 등장한다. 아마도 별헤는 밤이었나. 풀네임을 모두 시에 올려둘 정도로 윤동주도 릴케를 존경하고 흠모했던 듯 싶다. 나도 그 시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고 그 인물이 시인이고 독일사람이었다는 것을 안것은 채 몇년정도로 얼마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말테의 수기'를 중고서점에서 작년에 구했는데 구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의 같은 서정시인인 나태주님의 책을 통해서 듣게 되었기 때문인데, 거기서 나태주님은 말테의 수기를 번역한 역자가 서울대학교 출신의 여교수인데 본인의 친구라하면서 버킷리스트로 이 책을 정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해서 나도 마음이 동해 그 역자분의 번역판으로 구해 본 것이었다. 결국 구하기에 이르렀고 나역시도 읽는 것을 버킷리스트로 두기로 하고 언젠가는 읽으리라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여튼 그 책을 보면 당시에 릴케가 예술가 로댕의 조수로 일했을 때, 사관학교생도 시절, 어릴적의 모습 등 다양한 릴케 본인의 성장과정의 사진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때 릴케가 남자였다는 것도 알게됐다. 이름이 너무 여성스러워서 남자인줄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먼저 읽고 써 본 <쓰는 생각> 시리즈의 주제 시인 두 분은 역시 독일의 문호였던 헤르만 헤세와 볼프강 폰 괴테였다. 그러고 보니 릴케까지해서 모두 독일문학작가들 시리즈로 본의 아니게 이어지고 있는 건지 의도한 것인지 그렇게 출판사에서 제공하고 있다. 당시 괴테의 <쓰는 기쁨>을 접했을 때 읽은 시 <고프타의 노래>는 지금도 자주 인용하고 되뇌이는 작품인데 지치고 힘들 때마다 힘을 내라는 조언을 떠올리며 힘을 얻고 있고 주변에도 전해주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작가 헤르만 헤세는 오히려 시보단 소설작품으로 자주 만나뵙고 있다. 늘 책장에는 데미안과 싯다르타, 수레바퀴아래서가 있어서 언제든지 원하면 만날 수 있다.그러고 보면 참 독일은 예술적으로 뛰어난 장소요 나라이다. 과거 로마를 거꾸러뜨린 게르만족의 후손으로 알고 있고 그만큼 힘으로도 지략으로도 밀리지 않는 뛰어난 민족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오죽하면 히틀러와 그 추종자인 음악가인 바그너나 골상학을 주장한 몇몇 우생학자들이 우수한 아리아족을 만들어내자는 망상과 헛된 우월감에 빠지기도 했던가. 여튼 독일은 저력이 넘쳤다. 음악이나 미술 그리고 문학에서도 두드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해서 우리가 문학이나 음악을 배운다면 독일 유학은 기본으로 깔고 간다는 느낌이 많다. 비단 그 뿐아니라 어떤 전공의 외국인 학생이라도 배움을 바라고 유학생으로 방독하게 되면 지금은 모르지만 과거에 거의 무료이다시피 학비를 받지 않고 자국민들과 거의 동일한 복지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선처를 베풀어 과거 많은 대학교 석박사 과정을 위한 유학길을 오를때 독일로 향했던 것은 크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여건이 넘치는 나라에서 외지인들에게도 넘치는 복지를 제공해준다니 이 얼마나 보기 좋은 일인지. 많은 과오를 남겼으니 그것을 갚기 위한 선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이 아무리 히틀러때 유대인종말살정책과 2차세계대전으로 크게 물의를 세상에 끼쳤더라도 미워할 수 없는 나라임은 틀림없다. 빌리브란트 총리때에 전범으로 있었던 한 때의 과오를 나라의 수장입장에서 피해를 입은 나라를 향한 진심의 사과와 보상들이 잘 이뤄진 것으로 안다. 이후 헬무트 콜총리나 앙리 메르켈총리도 존경을 받는 세계적으로 훌륭한 독일의 지도자들이 독일을 이끌었다.<쓰는 생각>을 통해서 그들을 더 가까이 할 수 있었고 그들의 아름다운 문학가들의 작품세계를 만나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살면서 독일의 음악과 미술작품을 평 생가까이 하면서 지낼 것 같다. 하나 더 추가하면 이런 필사도 하고, 독일어를 짦게라도 배우는 중이기도 하여 언젠가 독일에 직접 가보기도 할건데 차차 독일어의 실력을 갖춰 독일어로도 필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100년 쓰는 몸을 만드는 걷기와 달리기김병곤 웨일북스포츠과학분야의 전문가분들은 현역 스포츠프로선수들과 국가대표 상비군부터 일반인의 걸음교정까지 다양한 일을 해내고 있다. 저자분도 그런 길을 걸어오신 전문가로 팀닥터 및 개인선수 전담 트레이너 부터 대통령의 주치의까지 다양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크게 세가지로 우리 몸의 기본적인 활동을 통한 건강유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는 걷기, 둘째는 천천히 뛰기라는 슬로우 조깅, 셋째는 일반 러닝으로 말이다. 순서대로 볼 때 적은 강도로 소화할 수 있는 트레이닝부터 강도가 점점 세어진다. 이 부분은 1단계에서 3단계까지 점차 발전시켜간다는 의미도 있다.다소 그림이 없어 아쉬운 부분은 큐알코드 링크로 유투브영상을 시청할 수 있게 걸어놓았다. 이는 저자분의 운영하는 유투브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이 책에 따로 설명을 뒷받침할 그림이 없어도 되는 이유가 설득이 된다. 보통은 건강과 운동을 주제로 한 책은 사진이나 그림이 반드시 있는 부분인데 요새는 이 책처럼 유투브로 링크를 걸어주고 싣지 않는 경우도 왕왕있다.유투브를 하나 시청해서 버드독운동을 하는 법을 배웠다. 쉽지 않은 자세이지만 코어를 강화하는데 훌륭한 운동이라고 했다. 코어부분은 러닝을 할 때에 활용되는 매우 중요한 근육파트이다. 코어가 약화되면 달릴 때 체중의 두세배가 아래로 가중되는 상황에서 바른 자세로 뛸 수 없게 만든다. 올바른 러닝자세도 알려주시지만 매우 중요한 체크 사항이었다.스포츠과학분야가 있다는 것은 우리 몸이 운동을 함에 있어서 더 효율적이면서 부상이 없도록 하는 목적을 추구하는 욕구가 크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었다. 스포츠는 단순히 재미로만 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과 어우러진 경쟁이 있었고 해서 그것은 더 많은 흥미를 자아냈고 올림픽이라는 형태를 낳았고 자본이 뒷받침되어 이익을 추구하는 프로라는 집단을 만들어서 수익성 사업화 되기에 이른다. 인간의 자극적인 욕구들을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되며 스포츠를 하는 당사자 즉 선수들의 건강과 더 좋은 기록이나 실력을 쟁취하기 위한 방법론은 당연시 따라오게 된다. 하여 저자와 같은 스포츠과학전문가들이 할 일이 분명해졌고 꼭 필요해진 셈이다.100년을 쓰는 몸이라면 그저 겨우 거동하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해선 안된다. 부상없는 것은 물론이고 위 세가지인 걷기, 슬로우조깅, 러닝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몸이어야 한다. 젊은 사람 못지 않은 삶의 질을 잃지 않은 채 유지 하는 것이 진정한 100년을 쓰는 몸이다.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독자들을 안내해주고 있다. 아직 미약한 사람에게는 걷기부터 하나씩 밟아나가고 신체가 받쳐주는 이들에게는 러닝의 올바른 실행방법을 보여준다. 어느 쪽이든 목적은 같다. 자기 몸에 맞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발전이 되는 그리고 어느 정도레벨이 되면 꾸준히 유지해줌으로 정말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건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아마도 저자분도 그렇게 본인의 신체도 관리해나가고 계실터다. 다른 사람의 코치를 해주는 입장이라면 더욱 자기 몸도 잘 아실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설명도 있을 성 싶었다.배우고 책을 덮고 잊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쪼록 읽고 느끼고나서 실행력이 중요하다. 반드시 간편한 옷을 입고 나가서 걷기부터 시작해보자. 좋은 목표의 예는 "하루에 몇킬로를 걷겠다, 뛰겠다." 보다는 목표를 시간으로 바꿔보면 좋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오늘은 딱 십분을 하겠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십분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 이십분, 삼십분이 되어있는 내 자신의 운동여정을 보게 될터이다.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