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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열림원 세계문학 1
헤르만 헤세 지음, 김연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평점 :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는 것은 인생의 숙제같은 것이었다. 책을 한창 읽을 나이에 노느라 허망하게 보낸 세월이 30년은 족히 되는데 마지막으로 책을 즐겨 읽던 나이가 초등학교 때임을 감안하면 한심스러운 일이다. <데미안>은 전부터 제대로 읽고 싶은 책이었고, 이번에 읽게 되어 다행이었다. 기회도 생겼겠다 의욕과 기대가 한껏 생겼던 것이다.
싱클레어는 막스 데미안이라는 자신의 학교로 전학 온 한 상급생을 알게 된다. 외모나 풍기는 분위기로 범상치 않은 인물 임을 단번에 알아본다. 데미안은 여러 조언과 함께 싱클레어에게 기성 신앙관에 반하는 충격적인 이야기을 내놓는다. 예를 들면 십자가에 달린 두 명의 범인 중에 회개한 범인과 달리 다른 쪽의 악담을 퍼붓는 범인에게 더 상식적인 행동이었다고 하거나, 카인의 살인은 그의 용기를 증명하는 일이었다고 말하거나, 또 하느님의 기준으로 선만을 추구하는 것은 세상을 반쪽만 보고 사는 것이니, 나머지 어두운 쪽인 악까지도 수용해야만 세상을 온전히 아는 완전한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헤세는 기존에 만연한 기독교리나 사람이 해석한 보수적인 신앙관에 염증을 많이 느껴왔던 것이라 본다. 나도 기독교인 입장으로 성경의 해석이 현재 기성교단에 의해 왜곡되어 있고 도마복음을 정경으로 불인정, 영지주의(그노시스파) 배척 및 이단으로 규정, 외경(천주교만 정경으로 인정, 개신교는 위경으로 봄)에 대한 불인정 등을 볼 때, 충분히 헤세의 생각에 동의하고 이해가 간다. 헤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기독교 기득권에 의한 득세는 바뀌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진실이 가려지지 않고 훗날 판명되길 바래본다. 기독교사도 승자의 기록으로 예수초기신앙에 가까운 영지주의자들이 정치적으로 비호받지 못하고 사라져간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지금까지 도마복음, 영지주의는 이단으로 규정되어있기도 하다. 이야기가 다른데로 갔다.
타매체를 통해 데미안의 해설을 보면, 데미안은 실존인물이 아니라 내면에서 만든 에고(자아), 슈퍼에고(초자아) 같은 것이라 한다. 그것도 타당한 해석같다. 또는 데미안이 헤세 자신이고 그의 사상을 싱클레어에게 말하듯 하는 것인데 둘 다 맞는 같은 이야기다. 또 융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해야 완벽한 이해가 된다고.. 융의 사상을 공부하기란 내게 먼 이야기다.
데미안의 부재동안 방황하는 싱클레어에게 피스토리우스라는 음악가이자 목사(역시 데미안처럼 보편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가 일시적인 멘토가 되어주는데 두사람에겐 신이며 악마인 존재 아브락사스(그리스의 주술과 관련된 악마, 마귀같은 존재라고 함)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브락사스란 이름은 새(인간)가 투쟁하여 알(세계)을 깬 후에 가야하는 곳(신)의 명칭을 정한 것 뿐이다. 그 이름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피스토리우스는 과거 영지주의의 수뢰격인 네스토리우스라는 인물과 한 글자만 빼고 이름이 같다. 이는 네스토리우스가 헤세의 신앙관에 영향을 주었기에 소설 인물의 이름에 단서를 준 것이 아닌가도 생각했다. 또 자신이 구도자라 주장하며 마음만 앞선 동료 크나우어는 헤세와 동일선상에서 신앙의 싸움을 하는 형제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싱클레어가 꿈에서나 상상속에서 흠모하고 있는 여인 베아트리체라는 인물도 등장하는데, 이는 남자의 여인에 대한 욕정과 치정같은 강한 성적 열망과 성적인 치부같은 감정으로 와닿았다.
막스 데미안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는 작가의 변인셈이고 한편 싱클레어는 작가 본인의 미숙하고 성장통을 겪었던 옛 시절로 생각된다. 또 나의, 우리의 어린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인생가운데 흔들릴 때도 있었고 아니 많았고, 힘들 때는 의지하고플 때도 왕왕 있었는데 그때 나를 구원해줄 구원투수같은 신이나 절대적 존재를 찾고자했다. 데미안같은 멘토나 영적리더가 나를 포함한 모든 분의 곁에 든든히 있길 바라면서 짦은 서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