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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평점 :

결국 빨리 감기는 시대적 필연이라 불러야 했다.
가급적 적은 자원으로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거의 절대적 정의가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中 '마치며'
책 사진이 너무 무섭게 나왔나?
책 표지에 빨강 파랑 노랑의 빗살 무늬와 함께 힘없이 쳐진 듯한 손 모양은
가을의 황량한 나무들과 어우러져 앞으로 조금 무섭지만 엄청난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렇다.
우린 이제부터 영화, 드라마, 심지어 강의까지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갈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특별한 것일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빨리 감기로 미디어를 '소비'하고 있는데,
그게 뭐라고 책으로 출간되었으며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까지 올랐단 말이지?
넷플릭스나 애플티비 등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는 매체들이 쏟아진다.
예전엔 DVD를 대여해서 영화 한 편에 얼마, 이런 식으로 감상했다면,
요즘엔 월 정액으로 결제하기 때문에 한 달 동안 무제한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많은 미디어는 선택하는 것도 어렵고, 모두 다 보기는 불가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와 맞을지 간을 보기 위해 빨리 보기로 1,2편을 훑어 보기도 하고,
대사가 없는 장면을 건너뛰기로 넘겨 보기도 한다.
#시간가성비 사람들은 그 작업을 그렇게 부른다.
시간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빨리 보거나 건너뛰며 보는 것이다.
물론, 너무 대충 봐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거나
다른 사람들과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시간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다며 이 같은 행동을 한다.
왜, 사람들은 작품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내용도 모두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완독에만 집중하는 걸까?
일본 작가가 일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해서 얻은 조사의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의 실정과 다소 다를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결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콘텐츠를 소비한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많아지면서 이 같은 이유는 줄었을 수도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가 화두에 올라오는 경우는 적지 않다.
그때 이야기하는 족족 모른다고만 하면 대화가 이어지질 않으니
나름의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도 콘텐츠 시청은 필수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더더욱 집중해서 볼 필요가 뭐가 있을까?
유튜브 줄임 영상을 보거나 빨리 감기, 건너뛰기로 내용만 파악하면 그만이다.
이 책을 보면서 살짝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작품 해석은 전문가에게 맡기기'
마블 시리즈나, 신세계 에반게리온, 게임에서 원작을 가져온 영화 등
공통점은 세계관이 있다는 것이고, 해석이 난해하거나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마니아층이 있는 이런 작품들에 대한 해석은 '덕후'들에겐 큰 즐거움이다.
반면에, 스토리가 즐거워 보는 사람들에겐 작품 해석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 봤자 전문가를 이길 수 없다. 고로 포기한다.' 가 된다.
그래서 스토리만 즐기며 자막을 보며 빠른 배속으로 영화를 즐기고,
진부한 싸움이나 중요하지 않은 장면은 건너뛰기 해버린다.
영화를 모두 보고 나면 궁금했던 내용이나, 심오한 부분을 검색해서 해갈하면 된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포기해서 시간을 아끼는 행위,
즐거움에 집중하고 더 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위가 시대의 변화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못하는 것에 집중하며 자책할 필요 없이 인정해버리는 초심플한 행위가 왜인지 인상 깊었다.
책을 읽는 내내 공감과 이해가 되면서도, 계속 남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왜 빨리 감기에 대한 이야기를 책까지 썼을까?"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웃음을 당하는 쪽이 될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빨리 감기에 대해 일일이 쌍심지를 켜는 사람이 있었대" 하고.'
'빨리 감기가 어떻게 필연성을 획득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다만 그래도 역시 의문이 남는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본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일까?
2022년 2월
생후 3개월 된 아들 곁에서,
이나다 도요시'
아, 저자도 그냥 궁금했구나.
빨리 감기는 트렌드이자 현상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아무 생각 없이 일상으로 치부하던 나에게도
사회적 이유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드라마도 길다고 16부작으로 줄어들던데 12부작을 넘어
그마저도 길다며 8부작까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점점 한 가지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시대에 접어든 만큼,
핵심만 간결하게는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부분이 아닐까?
단순히 빨리 보기라는 행동에 근거에 궁금증을 자아내고,
그에 따른 인터뷰와 내용을 조사해 사회적 현상의 근간을 파악한 작가의 호기심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은 현대지성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