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 김솔 짧은 소설
김솔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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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솔작가의 짧은 소설이 모인 책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이다.



 제목부터 왜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벌써부터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렇다. 이책은 짧은 수십개의 소설들이 모여 한권이 책이 되었는데, 아마 한 주제 한 주제를 읽고 나서 당신은 쉽사리 다음 주제를 읽기 힘들것이다. 아니 읽지 말기를 권한다.



어떤 주제는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외치며 방탈출 게임을 할 때 단서를 찾으려고 고민하듯 소설의 의미를 찾아 탈출하려 고민하기도 할 것이고, 어떤 주제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 버려서 웃음지으며 나의 생각을 함께 뒤섞으며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설령 그 의도가 맞든 틀리든 말이다.



 작가의 짧은 소설 중 '각인'은 아마도 작가의 스타일을 모두 보여준 주제가 아닐까 싶다.


소설은 어느날 백조가 유색인종만을 공격했다는 기사로 시작한다. 야생동물보호구역 담당자인 영국인 제프는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녀는 인도인과 결혼 후 딸을 낳고 이혼했다. 그 후 다시 인도인과 연애를 하고 있다. 제프는 딸에게 이혼을 안겨준 유색인종 인도인과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느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딸은 그런 아버지를 향해 인종차별을 멈추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프는 소설의 마지막에 딸에게 이렇게 외친다.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하고 있지만, 너희들도 머지않아 인종차별주의자로 전락할 거야. 하지만 두 가지 사실만큼은 꼭 명심해라. 인도 사람들이 황당한 이유를 들어 이 말썽꾸러기 백조를 마을에서 쫒아낸 다음엔 너를 찾아갈 것이다. 그 소란이 백인들의 편협한 교육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소동의 원인은 피부색에서 찾으려 할 것이란 말이다. 내 딸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리면 두개골이 박살 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을 거라고. 그러니 외출할 때 만이라도 제발 너도 네 어머니처럼 히잡을 쓰고 다니면 안 되겠니? 백조는 히잡을 아주 좋아하니까. 그것도 흰색 히잡을. 도대체 영국으로까지 이민 온 인도인들은 정작 순수 영국인의 자랑스러운 전통인 히잡을 쓰는 걸 왜 따르지 않는지 네 남자 친구에게 제발 물어보거라." 


 


 소설은 평온하게 흐르던 내용이 꼭 마지막 한구절로 인해 잔잔한 물결에 돌을 던지듯 출렁인다. 


그리고 그 구절을 다시 읽게 되고 또 전체를 생각하게 만든다.  각인도 그랬다. 영국인의 전통인 히잡이라니. 그것도 흰색 히잡이라니. 그들의 문화 정체성을 흔들어버렸고 백인의 피부색을 히잡의 색으로 언제든 바꿀 수 있게 만들어버렸다.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딸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아버지 제프가 인도인을 싫어하게 된 것이다'였던 생각이 마지막 문장으로 뒤집어져버렸다. 제프는 '인도인들이 왜 히잡전통을 따르지 않는지'란 질문을 통해 만약 딸의 남자친구의 피부색이 흰색이었다면 그만큼 그를 미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결국 그가 유색인종만 골라 공격하던 백조였던 것이다.


 '각인'이라는 제목 또한 이미 어릴적 부터 인종차별주의자로 각인되어 살아온 전통 영국인 제프가 미처 인정하지 못하고 있던건 아닐까란 생각과 함께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각인시켜주었다란 두가지로 해석해보았다. 



책은 총 40개 주제로 이루어져있는데 난 겨우 14개를 해석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나만의 기준으로 말이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해석하지 못한 주제를 찾아서 타인의 시선을 통해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내용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 내용들이었다.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한다면 모임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흥미로웠고, 추리소설처럼 여러가지 생각을 이끌어보기 좋은 기회였다.



반전도 주고 모호함도 주는 매력적인 책이다.


만약 당신이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면 이 책의 몇가지 주제만 뽑아서 토론을 해보는것도 굉장히 흥미로울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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