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위로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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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얇은 책이라서 쉽게 덤볐지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가리가 넘어지지 못한다며 슬퍼하고, 다람쥐는 개미에게 할 말이 있다고 오라고 하더니 다시 편지로 말하겠다고 가라고 한다. 우울해한다고 말해주니 기뻐하다가 기뻐한다고 하니 우울해하는 거북이와 모든 걸 다 알아서 머리가 무겁다고 하는 개미 하지만 정작 다람쥐 집에 있는 꿀단지는 모른다.

점점 내 머릿속이 더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내가 너무 어른들의 세계에만 빠져서 상상력이 부족했던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얇은 책한테 질 수 없지란 생각에 계속 읽어내려갔다.

외투를 사서 걸친 귀뚜라미를 보고 다람쥐는 처음 보는 친구라며 외투라고 부른다. 귀뚜라미는 그렇게 외투로 살아가다가 더운 여름이 오자 드디어 외투를 벗고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사자는 스스로가 무서워 어설픈 삐약삐약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코끼리는 다람쥐에게 찾아와 너가 지겨워지면 저 멀리 던져버릴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런 코끼리에게 다람쥐는 조용히 버드나무 잎차를 마시라며 권한다.


어느 순간 어처구니없고 혼란스러웠던 동물들의 이야기가 사실은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귀뚜라미의 외투는 사회 속에 살아가기 위해 외투를 입고 가짜 내가 되어 사는 모습이다. 그 후 나답지 못하게 살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라는 개성을 살고자 하는 모습이 귀뚜라미가 외투를 벗어던지고 날아오르는 모습과 함께 상상하게 되었다.

뿐만이랴, 넘어지지 못해 슬픈 왜가리를 보면서 왜 하지 못하는 것에 집착하며 슬퍼할까, 왜가리는 날 수도 있고 늘씬한 긴 다리로 물속을 쉽게 걸어 다닐 수도 있는데 하며 왜가리의 장점을 생각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본인의 장점을 생각하는 것보단 왜가리처럼 하지 못하는 것에 집착하며 슬퍼하는 날이 많지 않은가, 좋은 집착은 발전이 되지만 부정적인 집착은 우울감만 키울 뿐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람쥐를 중심으로 동물들의 이야기가 짧게 짧게 이어지는데 어느 주제 하나 그냥 넘어갈 내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얇지만 쉽게 넘기며 읽을 수가 없었고 중간중간 삽입된 일러스트는 힐링포인트일 정도로 마음에 평안함을 주었다.



책을 읽으며 밑줄 그은 문장을 모두 모아놓고 보니 숲속 동물들의 이야기가 모인 줄 알았는데 대부분이 다람쥐의 말이었다. 또 한 번 놀라워하며, 다람쥐의 멋진 인성? 과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왜 나는 오랫동안 생각을 못 할까?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 - 다람쥐가 개미에게 묻다

나는 항상 생각만 해, 항상. 한 번쯤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외쳐본다면 어떻게 될까. 다들 대답해 주겠지. - 홀로 보내는 생일마저 망친 외로운 오징어

다른 데로 이사할 좋은 기회야 -코끼리가 망가트린 집에 홀로 남은 다람쥐

나는 나 자신이 지겨워질 때가 있어, 넌 그럴 때 없니? - 다람쥐가 개미에게 묻다

"세상에나 세상에." 다람쥐는 이렇게 말하며 꿀단지를 그에게 더 가까지 밀어주었다. -가끔 꿀이 무서워 도망친다는 개미에게

개미에게 배운 대로, 뭔가를 찾으려 하면 오히려 절대로 못 찾는다는 게 떠올랐다. - 다람쥐의 생각

'어쩌면 개미는 내 상상 속에만 있을지도 몰라' - 다람쥐의 생각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던져버리겠다며 주절주절 떠드는 코끼리에게 조용히 버드나무 잎차를 내밀던 다람쥐, 호들갑 떨던 개미에게 꿀단지를 밀어주었던 다람쥐의 따스한 위로를 혼란스럽고 복잡하기만 한 당신도 함께 받기를 바란다.


나는 항상 생각만 해, 항상. 한 번쯤은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외쳐본다면 어떻게 될까. 다들 대답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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