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 -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배우다 삶과 이야기 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두 글자만 보아도 선득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책을 펼치기 전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이 책을 엮은 '엮자의 말'을 읽으며 그 흥분에 함께 동참하는 듯하였다. 두려움은 흥미로 바뀌었고 이 책을 덮을 즈음엔 수많은 감정을 거친 후 마음이 평온해졌다.

저자는 정신과 의사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도우며, 그들이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중 어린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아이들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누구보다 죽음을 잘 알았고 표현했다.

부모 중 누군가가 죽음을 기다릴 때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죽음을 이미 예견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숨겨봤자 남는 건 후유증뿐이다.

그런 경우엔 아이들에게 엄마가 애벌레처럼 고치 속에 들어가 있지만 아직 살아 있고 그들이 하는 말을 다 들을 수 있다고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엄마는 음악도 들을 수 있지만 다만 이야기를 나누거나 반응을 할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이 과정에 아이들을 참여시킨다면 아이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멋진 인생 경험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병실이나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면 아이들은 아마 -특히 아이들이 병원에 들어갈 수 없는 미국의 경우ㅡ 끔찍한 악몽을 꾸게 될 겁니다. 엄마가 병원에서 끔찍한 일을 당할 것이라고 혼자서 제멋대로 상상할 테니까요. 그런 데다 장례식에까지 참석하지 못한다면 한없는 공포를 키울 것이고 결국 엄마의 죽음은 해결되지도 극복되지도 못한 채 아이의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돌이 될 것입니다. 아이는 아마 오래오래 그 돌에 짓눌려 힘들어할 테고요.

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 中

아이들을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지 말라고 당부한다. 언젠가 밖으로 옮겨 심어야 할 아이들을 감싸기만 한다면 아무런 면역체계를 갖지 못한 채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감당할 어려움은 아이들의 언어로 전하여 함께 나누는 것이 맞다고 말이다.

죽음은 사실 육체를 벗어나는 것뿐이다. 끝이 아니기에 우린 이곳에서 사랑을 전하며 살아야 한다. 저자는 기독교인인가 싶을 정도로 성경 이야기와 성경 속 사실들을 열거한다. 하지만 분명 그는 기독교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고 이는 임사체험을 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 한 결과 분명 그 이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각자의 이유를 대면서 거짓이라고 한다. 믿건 안 믿건 그들의 선택이다. 하지만 죽음 이후가 있다는 걸 인지한다면 우린 죽음을 더 이상 두려운 존재로 바라볼 필요가 없다. 더 나아가 자유라고 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삶을 살면서, 삶에 대한 태도를 함께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은 온전히 자신이 만들어가며, 자신의 책임이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마음의 소리보다는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이는 어릴 적부터 '네가 무얼 해야 내가 무얼 해줄 거야'와 같은 조건적인 사랑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을 더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주 다정한 말투로) 세상을 치유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치유해야 합니다. 그전에는 세상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멸시하고 심판하거나 비판한다면 여러분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베트남, 마이다네크, 아우슈비츠에 책임이 있습니다. 진심입니다. (청중석이 조용하다.)

충만한 삶, 존엄한 죽음 中

죽음을 이겨냈더니 이번엔 삶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난 마지막 장에 이르러 저자가 좀스러운 남자를 증오할 정도로 싫어하는 이유를 찾는 여정을 보았다.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상처였다. 그녀는 원인을 찾았고, 그 사실을 털어냈고, 이겨내었다.

마음속 상처를 찾는 것만큼 힘든 게 없다. 해결되지 않는 마음속 상처들이 나로 인해 화를 내게 하고 관계를 망치는 일을 반복적으로 일으키기 때문이다. 심리학 책, 자기 계발서를 읽고, 심리 상담을 아무리 받아보지만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다. 그만큼 상처를 치유하는 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상처를 사람에게 털어놓거나, 글로 풀어내고 상처를 인정하는 한 걸음들이 쌓여서 자신이 치유될 때 비로소 자유롭게 될 것이고, 저자처럼 세상을 치유하는 사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 이후의 아름다운 자유를 맛보기 위해서라도, 자살을 끊어내고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해서 남을 사랑하기까지 이르른다면, 더없이 멋진 세상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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