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겨울
아들린 디외도네 지음, 박경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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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분명 흔한 성장소설은 아닐 것이다. 잔인했고 잔혹했다. 그만큼 크게 슬펐고 그들이 안타까웠다. 


소설을 읽는 내내 괴로울 정도로 몰입했다. 그저 소설이라고 한걸음 물러서서 봐도 됐지만, 몰입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배움의 발견'이 떠오른 이 소설은 시작부터 강했다. 


"우리 집에는 방이 네 개 있었다. 내방, 동생 질의 방, 부모님 방, 그리고 시체들의 방."


15살 여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소설은 사냥을 좋아하는 아빠와 그의 폭력 속에 아메바가 된 듯한 엄마, 그녀가 아끼는 남동생까지 총 4명의 가족이 있다. 나중에 데리고 온 새끼 강아지였던 도프카까지. 


 분명 가족이 함께 두려움 없이 웃었던 어렴풋한 추억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버지 한 명 때문에 늘 언제 깨질지 모르는 고요함 속에 지내야 했다. 사냥에 실패하거나 그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늘 엄마가 희생양이 되어 폭력 앞에 무기력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과 그녀의 동생 질 앞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다. 아이스크림을 팔던 할아버지가 그녀가 주문한 휘핑 때문에 휘핑 기계가 폭발해 얼굴 반쪽이 날아가는 사망사고가 터진다. 어린아이들이 이겨낼 수 없는 끔찍한 사고였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심히 집으로 돌아가 평소처럼 티비를 본다. 


 나는 이때 '배움의 발견'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무지함이 가정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고, 아이들의 미래 또한 정상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녀의 동생은 사건 이후 불안정한 정서를 보이다가 동물을 죽이고 희열을 얻는 일을 반복한다. 


 그녀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타임머신을 개발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며 과학과 수학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월반까지 하게 되는데, 여자는 남자보다 뛰어나면 안 된다는 아버지의 수직사고를 자극하고야 만다. 결국 그녀는 사냥놀이의 목표물이 되어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그들의 사냥팀으로 부터 도망쳐 어두운 산을 헤집고 다녀야 했고, 어느 날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 손에 죽임을 당할 각오를 해야 했다. 



 결국 그 집의 가장 강했던 것과 가장 약했던 것이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 속엔 죽음까지의 여정에 우리의 사회적 모습이 모두 등장한다. 고통을 다른 곳으로 돌려 희열로 맞바꿨던 질과, 그런 질을 살리는 것이 자신 삶의 이유였던 주인공, 고통 앞에 아메바와 같이 굴복당한 그녀의 어머니, 이런 사람들을 돕는 자들과 그로 인해 고통을 짊어진 사람들, 고통의 원인이 된 사람들 .. 결국 모두가 이어지는 것 같았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된다. 가해자는 다시 피해자가 된다. 남편의 폭력을 당한 피해자였던 어머니는 딸이 당하는 폭력 앞에 힘을 쓸 수 없는.. 침묵하는 가해자가 된다. 가족에게 최대 가해자였던 주인공의 아버지 또한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자란 피해자였다. 그녀도 그녀의 동생도 모두 가해자였고 피해자였다.


 상처는 결국 분출되고 표출된다. 그렇게 흘러내린 나의 상처가 누군가에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고 우리는 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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