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생명 영역 밖의 어두운 접경지대를 가지고있다. 그리하여 잠든 사람들의 분해된 사유(思惟)는 그들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데, 그것은 살아 있으며 동시에 죽은 연무(煙霧)이며, 허공에서 역시 사유하고 있을지도 모를 개연성과 결합된다. 그로 인해 복잡한 뒤얽힘이 비롯된다. 꿈이라는 구름이 자신의 짙은 농도와 투명성을 오성이라는 별 위에 쌓아 놓는다. 그러면 명료한 시각을 환영이 대신하게 되고, 닫힌 눈꺼풀 위에서는, 무덤 속에서 파괴 작용 일어나듯, 실루엣들과 모습들이, 촉지할 수 없는 것 속에서, 풍화되기 시작한다. 그다음에는 신비한 존재들이 분산되어, 잠이라는 죽음의 변두리에서 우리의 생명과 혼합된다. 유충과 영혼의 그러한 교착(交錯)이 허공에서 이루어진다. 잠들지 않은 사람조차도, 음산한 생명으로 가득한 공간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음을 느낀다. 주위의 환영이, 짐작되는 그러한 실체가, 그를 거북하게 한다. 다른 이들의 잠에서 발산된 유령들 사이로 지나가는 깨어 있는 사람은, 곁으로 지나가는 형체들로부터 얼떨결에 물러서고, 보이지 않는 존재와의 적대적인 접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거나 느낀다고 믿으며, 매 순간 곧 사라져 버릴 형언할 수 없는 만남이, 갑작스럽고 모호하게 이루어진다고 느낀다. 꿈들의 야간 분산이 한창 이루어지는 곳 한가운데를 걸어가노라면, 숲 한가운데에 서 있는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 P226

예민함은 육감적인 데서 발원한다. 게걸스러움은 까다로움을 내세운다. 진저리치는 찡그림은 욕심에 어울린다. - P298

혼인의 포악성은, 영영 다시 움직일 수 없는 결정적인 처지를 만들어 내고, 개인의 의지를 몰수하며, 선택을 죽인다. 문법처럼 문장 구성법을 가지고 있으며, 영감을 철자법으로 대체하고, 사랑을 받아쓰기로 변질시킨다. 삶의 신비를 궤주(走)시키고, 주기적이며 숙명적인 기능에 투명성을 강제로 부과하고, 구름에서 슈미즈 입은 여인의 모습을 지워 버리고, 권리의 행사자나 수혜자 모두에게 한정된 권리만 주고, 저울을 한쪽으로만 잔뜩 기울여 굳건한 성(性)과 강력한 성 간의, 혹은 힘과 아름다움 간의 매력적인 균형을 무너뜨리고, 결국 여기에는 상전 하나 저기에는 하녀 하나를 만들어 낸다. 반면, 혼인의 굴레 밖에는 남자 노예 하나와 여왕 하나가 있다. 침대가 점잖은 물건으로 간주될 만큼 그것을 산문적으로 변질시키다니, 그보다 더 상스러운 일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잘못이 아니라니, 상당히 멍청한 말이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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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수 해결할 일을 앞당겼을 따름이다. 신이 살인은 예측했을 테지만 아마도 외과 수술은 예측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신은 자신이 발명해서 조심스레 피부로 감싸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은폐하고 봉합한 체제 내부에 인간이 감히 손을 집어넣으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토마시는 처음으로 마취 상태에서 축 늘어진 환자의 피부에 메스를 대고 확고한 힘을 가해 그 피부를 찢고 다시 정확한 솜씨로 봉합하면서 (마치 외투 자락이나 치마, 커튼 자락처럼 영혼 없는 형겊 조각을 대하듯) 아주 순간적이지만 강렬하게 신성모독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의학에 이끌린 것은 필경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 필연, 그의 가슴속 깊이 뿌리내린 이 ‘es muss sein!‘이었으며 그를 이 필연으로 내몬 것은 우연도, 외과 과장의 관절염도 아니며 외부에서 유래한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 P300

물론 의학에 대한 그의 애정에서 비롯된 "es muss sein!"은 내면적 필연성이었던 반면, 그때 그것은 사회적 관습이 개입한외부적 "es muss sein!"과 관련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결 어려웠다. 내면의 명령은 더욱 강렬하고 그래서 더욱 강하게반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외과의사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안에 숨은 것을 들여다본다. 토마시에게 "es muss sein!"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런 욕망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 P304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 P308

그는 여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지닌 상상 못 하는 부분, 달리 말해서 한 여자를 다른 여자와구분 짓는 이 100만 분의 1의 상이성에 사로잡힌 것이다. - P309

그녀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자 불현듯 그녀가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 와 그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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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였다. 그녀를 짓눌렀던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 P191

집단수용소, 그것은 밤낮으로 서로 뒤엉켜 사는 세계였다. 잔인성과 폭력은 이 세계의 부수적(전혀 필연적이지 않은) 측면에 불과했다. 집단수용소, 그것은 사생활의 완전한 청산이었다. - P210

사랑이 탄생하는 순간은 이런 것과 유사하리라는 것을 테레자는 알았다. 여자는 분노에 찬 영혼을 부르는 목소리에 저항하지 않는다. 남자는 자기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영혼의 여자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토마시는 결코 사랑의 함정 앞에서 안전하지 못하고, 테레자는 매시간, 매분마다 그를 위해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가질 수 있는 무기란 무엇일까? 오직 자신의 정조뿐.
처음부터, 첫 날부터 마치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 버린 듯 그녀가 그에게 바쳤던 정조, 그들의 사랑은 비대칭적인 이상한 건물이었다. 그들 사랑은 단 하나의 기둥으로 세워진 거대한 궁전인 양 정조에 대한 테레자의 절대적 확실성 위에 정초된 것이다. - P251

토마시가 그런 사진을 받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녀를 내쫓을까? 그렇지는 않겠지. 그건 아니야. 그러나 그들 사랑의 위대한 건물은 보기 좋게 파괴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건물은 그녀의 정조라는 단 하나의 기둥으로 지탱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제국과도 같아서 제국을 떠받치는 이념이 사라 지면 이념과 함께 제국도 멸망하는 것이다. - P266

당신의 무지 탓에 이 나라는 향후 몇 세기 동안 자유를 상실했는데 자신이 결백하다고 소리칠 수 있나요? 자, 당신 주위를 돌아보셨나요? 참담함을 느끼지 않나요? 당신에겐 그것을 돌아볼 눈이 없는지도 모르죠!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뽑아 버리고 테베를 떠나시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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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일들이 자연 속에서 일어날 경우, 우리는 그것을 변덕이라 칭하고, 운명 속에서 일어날 경우 우연이라 칭하지만, 그것은 모두 우리 눈에 언뜻 포착된 법칙의 토막이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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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無限)이 열리는 순간, 그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폐쇄는 없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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