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수 해결할 일을 앞당겼을 따름이다. 신이 살인은 예측했을 테지만 아마도 외과 수술은 예측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신은 자신이 발명해서 조심스레 피부로 감싸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은폐하고 봉합한 체제 내부에 인간이 감히 손을 집어넣으리라곤 꿈도 꾸지 못했다. 토마시는 처음으로 마취 상태에서 축 늘어진 환자의 피부에 메스를 대고 확고한 힘을 가해 그 피부를 찢고 다시 정확한 솜씨로 봉합하면서 (마치 외투 자락이나 치마, 커튼 자락처럼 영혼 없는 형겊 조각을 대하듯) 아주 순간적이지만 강렬하게 신성모독을 느꼈다. 그러나 그가 의학에 이끌린 것은 필경 이런 점 때문이었다! 이 필연, 그의 가슴속 깊이 뿌리내린 이 ‘es muss sein!‘이었으며 그를 이 필연으로 내몬 것은 우연도, 외과 과장의 관절염도 아니며 외부에서 유래한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 P300
물론 의학에 대한 그의 애정에서 비롯된 "es muss sein!"은 내면적 필연성이었던 반면, 그때 그것은 사회적 관습이 개입한외부적 "es muss sein!"과 관련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결 어려웠다. 내면의 명령은 더욱 강렬하고 그래서 더욱 강하게반항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외과의사는 사물의 표면을 열고 그 안에 숨은 것을 들여다본다. 토마시에게 "es muss sein!"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가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런 욕망일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때까지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던 모든 것을 털어 버렸을 때 삶에서 무엇이 남는지 보고 싶은 욕망. - P304
‘자아‘의 유일성은 다름 아닌 인간 존재가 상상하지 못하는 부분에 숨어 있다. 인간은 모든 존재에 있어서 동일한 것, 자신에게 공통적인 것만 상상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개별적 ‘자아‘란 보편적인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따라서 미리 짐작도 계산도 할 수 없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베일을 벗기고 발견하고 타인으로부터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다. - P308
그는 여자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지닌 상상 못 하는 부분, 달리 말해서 한 여자를 다른 여자와구분 짓는 이 100만 분의 1의 상이성에 사로잡힌 것이다. - P309
그녀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자 불현듯 그녀가 바구니에 넣어져 물에 떠내려 와 그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은유가 위험하다는 것을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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