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이란 타인의 관심을끌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정작 이들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경멸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이다. 타인의 고통, 심지어는 자기의 고통까지도 비참하게 전시해야지만 겨우 관심을 주는 저 ‘인간‘들을 혐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관심이 보이는 얄팍한 연민을 경멸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관심을 갈구하면서 동시에 사람을 혐오하게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P220

말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내 말을 듣는 ‘그‘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가 듣는 이를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사람으로 여길 때 사람은 듣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게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듣는 사람이 될 때 사람은 말을 할 때보다 더 스스로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느끼며 자존감의 고양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이듣는 이를 기쁘게 하고 듣는 것을 지속시킬 수 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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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영화에 대해 샹탈은 말한다.

"저는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그러면 제가 사람들에게 두 시간을 훔친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그 시간을 살아낸 것이 되지요."

산에 오르니 너무나 아름다워서
내가 실존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풍경은 떠난 이후에야
비로소 그것을 겪었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응시하기,
이것이야말로 죽음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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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페스티벌
대상 후보에 여성은 아무도 없었다.

이 시기에 나는
타인이 내게서 떨어져 나가도록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통이 멈추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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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민낯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곳이 아니다. 사회라는 공간에 나갈 때 우리 모두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 Erving Goffman이 이야기한 것처럼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 놀이를 한다. 가면을 쓰고 만나는 것이다. 그 가면 뒤의 민얼굴이 어떠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에 충실한가, 아닌가 여부다. 역할에 충실하다면 우리는 그의 민낯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고 무관심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에서 만나는 시민들이 서로 지켜야 하는 예의다. 이런 점에서 사회 가운데서 상호작용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가면을 쓴 존재, 즉 위선자다. - P191

고통은 비교할 수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겐 절대적인 것이다. 세계의 붕괴와 그 세계를 다시 지을 수 있는 언어의 박탈로 인한 고통이라는 점에서 각자의 고통은 개별적이고 고립되어있으며 그렇기에 절대적이다. 고통은 그 수준이나 정도를 가늠하여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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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베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또한,
전쟁으로 인해 아이에 대한 욕망이
완전히 꺾여버렸으므로."

(이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일어난 테러에 나 역시 같은 다짐을 하게 된다.)

어떤 몸은 다른 몸보다 더 아름답다고 그 누가 판단하는가.

토베는 섬이란 생산적인 고독의 상징이라 여긴다.

고독과 대면할 수 없다면
진정한 자유는 없다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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