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최후의 말을 원하고, 그 말은 너무도 근본적인 것이어서 현실 속의 도달할 수 없는 부분과 뒤엉켜 있다. 나는 논리에서 이탈해 버릴까 봐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 본능과 솔직함에, 그리고 미래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맞이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미래가 되고, 모든 시간은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된다. 그러니 논리에서 벗어난다 한들 무슨 손해가 있을까? - P17

나는 아주 새롭고 참된 단계로 진입하면서 그 단계 자체에 호기심을 느낀다. 그건 그림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고 직접적이다. 마치 당신과 함께했던 순간들처럼. 내가 당신을 사랑했을 때, 나는 그 순간들 속으로 깊이 내려앉았고, 그래서 그것들을 지나쳐 갈 수 없었다. 그것은 주위를 둘러싼 에너지에 닿은 상태이며 나는 몸서리친다. 어딘가 미친, 미쳐버린 조화. 나도 안다, 내 시선은 세상에 완전히 항복한 원시인의 시선과 같을 것이다. 선이 굵은 선과 악만을 허용하고, 머리카락처럼 악에 뒤엉켜 있는 선에 대해서는, 선이기도 한 악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신들처럼 원시적인 시선. - P17

새로운 시대, 나 자신의 시대, 이 시대가 즉시 나의 도착을 알린다. 나는 충분히 용감한가? 지금으로선 그렇다: 왜냐하면 나는 먼 고통에서 왔으니까. 나는 사랑의 지옥에서 왔고 이제 당신에게서 벗어났으니까. 나는 멀리서, 중대한 혈통에서 왔다. 나는 삶의 고통에서 왔다. 그리고 더 이상 그걸 원하지 않는다. 나는 행복의 전율을 원한다. 나는 모차르트의 공정함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모순을 원하기도 한다. 자유? 그건 내 마지막 피난처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유를 강요했으며, 그것을 재능처럼 지니지 않고 영웅적으로 보유한다: 나는 영웅적으로 자유롭다. 그리고 흐름을 원한다. - P22

이 지금–순간, 나는 경이를 향한 산만하고도 종잡을 수 없는 갈망에, 그리고 수도꼭지에서 나와 향기 가득한 정원 잔디밭으로 흘러가는 물에 비친 태양의 무수한 반사광에 에워싸여 있다. 정원과 반사광들은 내가 지금 여기서 지어낸 것이고, 그것들은 내 삶 속 이 순간의 말하기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도구다. 내 상태는 물이 흐르고 있는 정원이다. 나는 그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시간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말들을 섞으려 한다.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 건 눈으로 볼 때처럼 빠르게 읽어야 한다. - P23

나 자신을 새로 만들고 당신을 새로 만들기 위해, 나는 정원과 그림자의 상태로 돌아간다. 상쾌한 현실, 나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만약 존재하려면 세심한 주의를 계속 기울여야만 한다. 그림자 주변에는 흥건한 땀의 열기가 있다. 나는 살아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내 한계에 다다르지 못한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러면 그 한계의 경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아니, 위험한 자유의 모험에는 경계가 없다. 그리고 나는 위험을 감수한다. 나는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산다. 나는 노랗게 흔들리는 아카시아들로 가득하며, 나는 이제 막 여정을 시작한 자이며, 나는 내 인생의 걸음걸음이 어떤 잃어버린 바다로 이어질지 추측해 가며 비극적인 기분으로 여정에 나선다. 나는 내 안의 구석진 곳들을 미친 듯이 통제하고, 그 발광은 너무도 강렬한 아름다움으로 나를 질식시킨다. 나는 이전이고, 거의이고, 전혀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당신에 대한 사랑을 그치면서 얻게 되었다. - P25

그래, 이것은 삶에 의해 보이는 삶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붙잡는 법을 갑자기 잊어버린다. 존재하는 것들을 붙잡는 법을 모르는 나는 무엇이든 상관치 않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산다: 나는 실수들로부터 거의 자유로워졌다. 나는 자유롭게 풀려난 말馬이 맹렬히 달리게 한다. 나는 힘차게 달려가는 자, 오직 현실만이 내 한계를 설정한다. - P26

나는 약한 걸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미친 리듬에 사로 잡힌 약한 여자일까? 만일 내가 강하고 단단했다면 그 리듬이 들리기나 했을까? 나는 어떤 답도 얻지 못한다: 나는 있다. 내가 삶에서 얻는 답은 그것뿐이다. 하지만 나는 무엇으로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나로 있다. 가끔 나는 비명을 지른다: 더 이상 내가 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나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고,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삶의 음역대를 형성한다. - P30

따라서 글쓰기는 말을 미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말은 말이 아닌 것을 낚는다. 행간에 있는 말 아닌 것이 미끼를 물면 글이 쓰인 것이다. 행간에 있는 것이 잡히고 나면 안심하고 말을 내버릴 수 있다. 바로 여기가 비유가 끝나는 곳이다: 말이 아닌 것, 미끼를 물기, 말에 통합되기. 그러니 당신을 구원하는 건 넋을 놓은 글쓰기다. - P31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게 될까? 순간들을 말할 것이다. 나는 너무 멀리 가고, 그래야만 존재한다. 나는 열렬히 존재한다. 이 엄청난 열기—언젠가는 삶을 멈출 수 있을까? 이 슬픔이여, 너무도 많이 죽는 나여. 나는 땅을 뚫고 내려가는 뿌리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간다. 나는 열정이라는 재능을 얻은 자, 마른 나무의 모닥불 속에서 뒤틀리며 타오른다. 내 존재를 확장하고픈 나는 내 너머에 존재하는 비의秘儀를 그것에게 가져다 준다. 나는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내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모은다, 시간, 시계의 똑딱거림 속에서 고동치는 시간.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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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첫 방북이 떠올랐다. 마찬가지로 원산에서 고속도로를 지나 이 자리로 옮겨진 모두가 고개를 숙일 때, 나 혼자 멍하니 동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내 뒷머리에 손을 얹고 억지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몇 초 후 다시 머리를 들 때까지 그 손은 계속 내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부동자세에서 풀려난 후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머리를 누르다니, 부모도 한 적이 없는 짓이었다.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름 끼치는 굴욕감을 맛보았다. - P65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북한 사람은 현지 매체의 카메라 앞에서든 해외에서 취재를 온 인터뷰에서든 "장군님 덕택에 행복합 니다. 감사합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라고 말한다.
평양에서 나고 자란 양씨 집안 아이들은 〈디어 평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많이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 한다. 조부모를 향한 소박한 감사 인사처럼 보이는 이 말이 실은 강렬한 아이러니라는 것을 파악한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 P67

아버지는 이미 일흔넷이었으므로 고희연이라고 주장하기는 다소 애매했지만, 부모님에게는 소정의 목적이 있었다. 오빠들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에 사는 먼 친척들까지 평양으로 불러 모아 성대한 잔치를 여는 것이었다. 칠순 잔치는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이 평양으로 갈 통행 허가증을 얻기 위한 ‘공식‘ 사유였다. 정년퇴직 후 조총련 오사카 본부의 간부가 된 아버지는 칠순 잔치를 당신이 건강할 때 해야 할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다. 6.25전쟁 전에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갔다가 차별과 빈곤을 견디지 못하고, 북송 사업으로 북에 넘어간 친구들도 초대해야 한다며 목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옥류관에 불러 모아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에 크게 뽑아서 돌릴 거야. 액자에 딱 넣어서 선물이랑 돈도 좀 넣어주고. 그게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아버지는 늘상 야릇한 표정으로 말했다. - P70

아버지는 북송 사업의 선봉대 역할을 자처했다. 북을 지지하는 조총련과 한국을 지지하는 민단의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동포 사회에서 격렬한 사상투쟁을 벌인 활동가였다. 자신이 가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미화해서 타인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무모함을 혁명적 임무라고 믿고 수행했던 것이다. 자기 자식들 손에까지 편도 표를 들려서 북한에 보낸 몇 년 후, 그 나라에 방문해서야 누구보다 북송 사업의 실태를 잘 알게 된 사람이었다. 후회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뿐더러 용서받을 수 없다는 자각도 있었을 터이다. 세 아들과 가족들이 ‘인질‘이 되고야 말았으니 그 체제에 순응하며 살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훈장을 달고 활짝 웃는 부모님의 얼굴이 피에로 같다고 생각하며 나도 웃었다. 북조선을 조국으로 선택해 살아온 두 분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믿고 살기로 했을 뿐이었다. 그런 부모님이 웃고 있었다. - P71

뉴욕에 오기 전 함께 일했던, 일본을 대표하는 TV 뉴스 프로그램의 디렉터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베개 밑에 깔린 리모컨 스위치를 누르니 항공기가 충돌해 연기를 내뿜고 있는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을 모든 채널에서 내보내고 있었다." […]
그날부터 조지 부시 대통령은 연설 때마다 미국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나라들을 언급했다. 언론에서 ‘DPRK(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가 오르내릴 때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결국 미국은 이듬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는데, 일본이든 미국이든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를 적대시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연일 무력에 의한 보복을 외쳐대는 것 또한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 P75

"안녕, 영희.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 파일이 학생비자 신청을 위해 대사관에 제출할 서류예요. 불안하겠지만 정신 바짝 차려요. 당신은 우리 대학원의 정식 학생이고, 어떠한 정치적 상황에서도 학생의 배울 권리를 지키는 것이 대학의 의무입니다. 만약 미국에 오기 위한 비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직접 주일 미국대사관에 요청할 거예요. 이 건에 관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우리에게 맡겨요. 가족을 만나러 간다면서요. 여행 잘해요!" - P80

아버지는 저녁에 반주를 들 때마다 뉴욕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한국인 유학생 친구가 많이 생겼다고 하자 무척이나 기뻐했 다. 어머니는 남편과 딸이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안심하면서 평양으로 가져갈 짐을 싸는 데 여념이 없었다. 뉴욕에서 오사카까지도 멀지만, 오사카에서 평양까지 가는 길 또한 쉽지 않은 여정이다. 어이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돌아가면 그만큼 평양의 가족들은 기뻐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던 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와주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조카들에게 ‘뉴욕 고모‘는 인기 만점이었다. 부모님에게도 뉴욕에서 일부러 와준 딸은 자랑거리였다. 가장 중요한 점은 30년 만에야 겨우 가족이 모두 모였다는 사실이었다. - P81

나는 옥류관에서 열린 잔치를 카메라로 기록하면서 채플린의 말을 떠올렸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내 가족을 롱숏으로 바라보기 위해 렌즈의 힘을 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해도 미워해도 답답해도 멀리 떨어져 살아도 가족과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기란 쉽지 않다. 그러한 존재를 부감하여 다각도로 보기 위해서는 밀어낼 필요가 있다. 가족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원거리에서 응시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해부하여 내 백그라운드의 정체를 넓고도 깊게 알고 싶었다. 그런 다음 가족과 나를 분리하고 싶었다. - P87

아버지의 연설을 들으며 내 가족을 해부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던 아버지가 실로 많은 말을 삼키면서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 역시 많은 말을 삼켜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 번은 꼭 해야지" 하던 아버지의 말과 연설 사이에 나는 서 있었다. 둘 다 아버지의 말이었다. 둘 다 아버지였다. 잠옷 차림으로 진심을 말하는 아버지도,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아버지도 모두 나의 아버지였다.
드문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어른‘들이 그렇게 본심과 명분 사이를 오가지 않을까. 본심 속에도 명분이 있고 명분도 본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다면체라 여러 측면으로 둘러 싸여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비범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평범해 보여도 인간이란 그러한 생명체인 것이다. 훈장을 단 아버지를 보면 잠옷 차림의 아버지가 떠오르고,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혁명을 외치는 아버지도 평범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P88

"수용소에 들어가서 몇 년 후에 무죄라고 밝혀지면 보통은 손 해배상감이지."내가 말했다.
"너는 입 다물고 있어." 어머니가 말했다.
불합리한 일은 어느 나라에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가족이 살고 있는 나라의 불합리성에는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원래 그런 나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예외로 두는 건 불 공정한 것 아닌가. ‘김씨 왕조‘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공정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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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가운데 갇혀 있으니 슬슬 정신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더욱이 초반에는 부지도 완공되기 전이었고 이렇다 할 연구실도 없었기에 나는 내가 정말로 살짝 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게 미쳐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프로젝트의 규모며 일이 진행되는 속도며 우리가 만드는 진짜 무기까지, 모두 다. 사람들이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다. 뉴멕시코의 사막은 뜨거웠지만 많이, 아주 많이 아름다웠다. 로스앨러모스는 암적색 토양의 깎아 지른 절벽 위 메사 언덕에 자리했는데, 나무와 관목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숨막힐 듯한 절경이었고, 내가 가본 어느 곳 보다도 아름다웠다. 뉴욕 출신인 나는 서부가 처음이었기에 딴 세상에 온 기분이었다. 화성이나 뭐 그런 곳. 그곳은 신성한 터의 오묘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문명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감시하는 눈도 없고 신조차도 아득해 들여다볼 수 없는 피난처.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이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 P137

나는 계속 바둑에 돈을 걸었다. 그만큼 매력적이었으니까. 보기에는 단순해서 오 분이면 규칙을 가르칠 수도 있다. 정사각형 격자판에 검은 돌이나 흰 돌을 두어 상대방 돌을 둘러싸고 최대한으로 영토를 장악하면 된다.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미칠 듯이 어렵고 체스보다 훨씬, 훨씬 더 까다롭다. 우리 중 일부는 바둑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바둑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느새 마음을 사로잡아 꿈속에서도 바둑을 뒀다. 무엇을 하건 늘 머리 한쪽에서는 바둑을 뒀다. - P144

그때 그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조언을 건넸다. "자네가 사는 세계를 자네가 책임질 필요는 없는 거야." 그런데 언제나 실실 웃으며 즐거워했던 건 폰 노이만뿐만이 아니었다. 로스앨러모스에서 했던 작업을 돌이켜보면, 아내 일로 겪은 개인적인 비극과 상실, 유럽에서 벌어지던 온갖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시절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순간으로 남아 있다. 남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면서도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장난을 멈추지 못했다. 계속해서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 P149

폭발 시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용접용 안경이 전원에게 주어졌다. 자칫 잘못하면 눈이 멀 수도 있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2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 어두운 안경까지 쓰면 구경은 개뿔 아무것도 안 보일 테지! 게다가 환한 빛 때문에 눈이 상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자외선이다. 자외선은 유리를 통과 못하니 나는 트럭 앞유리창 뒤에 있기로 했다. 그러면 안전하게 그 빌어먹을 것을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맙소사, 그건 나의 착오였다! 섬광의 차원이 달랐다. 번쩍이는 순간 나는 눈이 멀었다고 확신했다. 찰나의 순간에 내 눈엔 빛 만이 보였다. 하얀빛이 내 눈을 가득 채우고 머릿속을 지웠다. 끔찍하리만치 불투명한 광채가 온 세계를 삭제했다. 빛의 거대 함은 형용할 수 없었고 너무 순식간이라 반응할 새도 없었다. 고개를 뒤로 획 젖히며 시선을 돌리자 황금색, 보라색, 연보라색, 회색, 파란색으로 불타듯 환해진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봉우리와 틈새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났다. 정말로 상상 이상이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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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의 의식에 관해 자주 생각한다. 그건 분명 인간의 의식보다 어둑할 것이고, 꿈같이 덧없을 것이고, 반쯤 녹은 양초처럼 작은 생각들은 절대 윤곽이 또렷하게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명쾌하게 생각하느라 기를 써야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 P71

바깥 한기를 막아주는 묵직한 커튼 사이로 아침의 첫 빛줄기가 내리비치던 순간에 나는 형에게 물었다. 그때는 답을 듣지 못했지만, 손에 한가득 나사를 들고 앉아 있던 나를 두고 위층으로 내달려 침대 위에 옹송그린 채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미 혼날 채비를 하던 형은, 그에 대한 답을 내리고자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앞으로 무엇이 닥칠지. 미래에 형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직조기를 바라보던 형은 어쩐지 어렴풋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미래를 내다보고 고통스러워했다는 확신이 든다. 그 환영은 형을 표독스럽게 붙들었고, 이전까지는 오직 게임과 폭탄을 향해서만 느끼던 섬뜩한 이끌림에 불을 지폈다. 그런 것을 정확히 감지할 수 없었던 나조차도 발치에 흩어진 기계의 잔해를 보고 있자니 속이 살짝 메스꺼워졌다. 그 감각은 이후로도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 P79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자기 상상에 심취한 그들이 부러웠다. 그때 나는 다 알면서도 일부러 주변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륙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십대로 예쁨받는 즐거움에 젖어 전쟁의 숙명 따위를 걱정할 시간이 없었다. 참 한심한 생각이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안에서 큰 전투가 벌어진 건 아니었으니까. 헝가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곡창지대였기에 전시 기근으로 밀 가격이 치솟으면서 부자는 더욱더 부유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다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굴었다. 끔찍해 보이리란 것을 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인류에 관한 단순한 진실을 아주 일찍이 깨쳤다. 문 앞에서 악마가 문을 두드리는 와중에도 우리 인간은 춤출 수 있다는 것. 내가, 그리고 우리 대다수가 그랬다. 그런데 그게 진짜 우리 탓이려나? - P82

사방에서 폭발적으로 산업화가 일어났으나 우리의 도시는 여전히 봄철의 제비꽃 내음을 머금고 있었다. 우린 부족한 게 하나 없었다. 날마다 새로운 게 나오는 듯했다. 새로운 발견, 새로운 농업 생산량 기록, 새로운 상품, 새로운 옷. 새로움의 짜릿함이 항상 존재했다. 그래서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했다. 즐기는 것. 우리는 놀았다. 이 전쟁에서 저 전쟁으로 넘어가는 동안에도 흥청망청 술에 취해 춤을 췄다. 달리 뭘 할 수 있었을까?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멋진 세상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의 놀이란 다급한 것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었다. 잴 것 없이 무조건 즐거워야만 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뭐가 닥칠지 알고 있었으니까. 왜인지는 몰라도, 우린 그냥 알았다. 남자건 여자건. 돈이 많건 적건. 유대인이건 비유대인이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애들처럼 굴며 어린애들이 가장 잘하는 짓을 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척 그냥 계속 노는 것. 세상은 알아서 굴러갈 테니까. - P83

칸토어는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연구하라고 등 떠미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알 수 없는 은밀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후 그는 자신이 무한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신의 개입 때문이었노라고 확신하게 됐다. 진정한 계시가 모두 그렇듯, 칸토어는 자신이 받은 계시가 위대하고 초월적인 확실성으 로 인류를 이끌리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누구도 그의 무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고, 적들은 기를 쓰고서 그의 앞길을 망치고 연구를 좌절시키려 들었다. 칸토어는 당연히 프로이센에서 내로라하는 대학 어디서든 교수직을 맡을 수 있었지만, 후미진 할레에만 머무르며 점점 줄어드는 친구와 동료 무리에게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의 연구가 몇몇 사람에게 불러일으킨 두려움은 결국 우리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것이 지고하고 완벽한 형태의 무한임에도, 진정한 무한을 바라볼 가능성을 파괴하는 일종의 근시안이다. 얼마 전 미타 그레플레르에게서 편지를 받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그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내가 발표하려던 글이 ‘약 백 년은 시대를 앞섰다‘라고 평했다. 그러면 1984년까지 기다리라는 소리인데, 그건 누구에게나 과한 요구가 아니던가! 누가 뭐라건 간에 나의 이론은 바위처럼 굳건하다. 그것을 겨냥한 화살은 족족 되돌아가 암살을 시도한 자의 심장에 꽂히리라." - P101

의심은 그 자체로 우리를 구원할지 모른다. 처음부터 없던 믿음보다 사라진 믿음이 더 나쁜 까닭은, 성령이 저주받은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나며 생긴 구멍처럼 떡하니 공백을 남기기 때문이다. - P112

거대한 탱크가 덜컹거리며 대로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맹세컨대 야노시는 주인이 남은 음식을 제 밥그릇에 붓는 소리를 들은 개처럼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쳤다. 다 큰 어른이 탱크를 보겠답시고 어린애처럼 사람들 머리 위로 방방 뛰어대고, 아마도 훗날 우렛소리와 함께 유럽을 짓밟을, 산 자와 죽은 자의 뼈를 으스러뜨리고, 대륙에 들이닥쳐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방식으로 우리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고 굶기고 고문하고 몰살한 나치의 무력 기습을 이끌게 될 바로 그 죽음의 차를 얼빠지게 쳐다보며 손을 꺾어대는 모습은 정말로 섬뜩했다. 괴이한 기계에 정신이 팔린 그를 보면서, 그가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던 나는 그에게 희망은 거의 남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우리 모두에게 희망은 거의 없었고, 나에게는 분명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P114

나는 이미 나름의 이민 계획을 세워둔 상태였지만, 그는 나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했다. 알았다고는 했으나 그가 어째서 이민을 미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왜 계속 유럽에 머무르려 하는지, 독일에는 왜 자꾸 가는지 물었다. 그는 수학의 기초에 가까이, 거의 다 근접했노라고 했다. 머릿속에서 그것이 간질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 역사, 특히 고대 제국 쇠망사 에 별나게 집착했던 연치는 나치를 무한히 혐오하면서도 정확히 언제 독일을 뜨면 될지 알 수 있으리라는 자기 확신이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정확히 미래를 내다보았는가를 지금 와 생각하면 전율이 인다. 그의 예지력은 정보를 처리하고 역사의 물결에서 현재의 알갱이들을 걸러내는 뛰어난 능력에서 기인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능력이 있었기에 그는 진심으로 안심했으며,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내 꺾였을 과신에 차 있었다. 야노시는 실로 한참을 앞서 있어 마치 모든 것을 과거의 일처럼 돌아보는 듯했다. - P116

힐베르트 프로그램은 그렇게 종말을 고했다.
연치는 괴델의 말을 즉각 이해했으나 처음에는 쉽사리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괴델이 옳다면 연치를 비롯해 어느 누가 무슨 짓을 하건 간에, 수학을 공리화하는 일도, 그토록 찾아 헤매던 논리적 기초를 발견하는 일도 불가능했다. 내부 역설과 모순에서 자유로운 공리의 형식 체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체계의 규칙으로 결코 증명할 수 없는,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참인 진실과 명제가 내포되므로, 체계는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괴델이 연치에게 보인 것이었다. 괴델의 발견은 우리가 과거에 생각하지 못한, 존재론적 한계라 할 수 있는 무언가였다. 증명 불가한 진실은 수학자의 악몽이었고, 연치에게는 사적인 재앙이었다. 어떤 새로운 지식이나 이론으로도 메꿀 수 없는 거대한 틈새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괴델의 논리에 깃든 철학적 함의란 실로 엄청났으며, 훗날 불완전성정리라고 알려진 그의 이론은 오늘날 인간 이해의 한계를 시사하는 근원적인 발견으로 여겨진다. - P119

괴델의 정신쇠약에 관해서는 워낙 기록이 많지만, 그가 않았던 유형의 편집증이 그가 몰락한 원인인 동시에 수학적 위업의 뿌리였다는 데는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빈 대학교에서 아주 젊은 시절의 괴델을 보았던 어느 교수는, 그가 불안정한 이유가 연구의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애당초 불안정한 상태여야 괴델처럼 사고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두 관점 다 옳다고 본다. 몇 차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나는 그의 논리와 논리적 사고가 점점 심해지는 정신착란과 떼어놓을 수 없이 엮여 있음을 감지했다. 어떻게 보면 편집증은 논리가 미쳐 날뛰는 상태라 할 수 있으니까. "혼돈은 모두 잘못된 외피를 두르고 있다." 괴델은 이렇게 적었다. 그는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지극히 흔하고 일상적인 일들 뒤에서 그것을 은밀히 조종하는 음모와 힘을 보게 된다. 하지만 괴델을 망친 건 마음의 불균형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들여왔으며 우리가 여태껏 극복하지 못한 생각 때문에도 타격을 입었다. 증명 불가한 진실과 불가피한 모순. 이 자기 지시적인 논리의 악몽이 무시무시한 악마처럼 그를 집어삼겼다. 그 악마는 지상에 내려오고 나면 무슨 수로도 다시 쫓아낼 수 없는 존재였고, 나의 벗 야노시마저 갉아먹은 존재였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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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방북했을 때는 농촌 사람들이 일손을 멈추고 일본에서 온 방문단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땅에 쪼그려 앉아 작업을 하다가도 버스가 지나가면 일어나서 손을 흔들거나 경례를 보냈다. 버스에 탄 방문단 사람들도 기쁘게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나는 그들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본인의 의지인지 의무인지 몰라 복잡한 마음이 들어 웃을 수 없었다. - P64

"위대한 지도자님 아래, 조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당한 사회주의의 길을 걷고 있으며 우리 인민에게는 승리가 약속되어 있습니다"라는 버스 가이드의 진부한 멘트에도 "비록 지금은 ‘고난의 행군‘을 견뎌야 할 시기지만"이라는 둥 이전까지는 들어본 적 없던 본심이 섞여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사람들의 표정과 겹치는 교조적인 말에 더욱 마음이 쓰렸다. 평양에 도착하고 나서도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주시하기로 마음먹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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