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철은 맨발로 그 다리의 널판들을 가로지르는 경주를 좋아했다. 널판은 60센티미터 정도 간격으로 고르게 놓여 있었다. 보름달이 뜰 때는 쉬웠다. 발을 디디는 곳이 보였으니까. 하지만 안 그런 밤에는 칠흑처럼 어두웠고 그러면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발을 디뎌야 했다. 한마디로 믿음이었다. 믿음과 타이밍. 미끄러졌다 하면, 타이밍이 조금만 어긋났다 하면, 발이 널판 사이로 미끄러져들어가 정강이뼈가 뚝 부러질지도 몰랐고, 까딱 잘못하다가는 만약 재수가 없어서 발이 쑥 빠져버리는 날에는, 10미터 아래 강물 속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어리고 자신감이 넘쳤던 우리는, 물론 한 번도 미끄러지거나 빠지거나 비틀거려 본 적 없었다. 머릿속으로 리듬을 타면서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요령이었다. 그렇지만 말했듯이, 정작 중요한 점은 믿음, 나무 널판이 내가 발을 디디는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맹목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그리고 널판은 항상 그랬다. - P166

우리는 레이철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향해 차를 몰고 갈 때 아이작 킹을 보았다. […]
우리는 언덕에, 보이지 않는 곳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멀리 있는데도 여전히 그가 두려웠다. 지금은 내가 그를 진짜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네댓 명의 아이들과 한꺼번에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는 날 밤이면, 나는 내가 그를 미워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 상황의 무익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가, 다른 아이들처럼 패배를 인정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그가 미웠다. 나머지 우리들처럼—내 부모님이 그러는 것처럼, 태너가 그러는 것처럼, 내가 그러는 것처럼—자신의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그가 미웠다. - P174

영화가 끝난 뒤 우리는 오래도록 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계속 얘기를 했지만, 우리 둘 중 누구도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밤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나는 지금은 확신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나중에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그 아이는 계속 딴생각을 하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나는, 그 아이 입으로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레이철이 그 밤을 그리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176

여름의 끝자락에 있는 모든 도시들이 그러하듯, 도시는 슬퍼 보였다. 레이철이 그 여름 그 안에서 보았던 모든 가능성은 사라지고, 이제 해마다 반복되는 음울한 면모를 변함없이 드러내는 듯, 도시는 벌써부터 춥고 공허해 보였다. - P177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 아이가 그렇게 떠나버리는 것에 화가 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 역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차를 몰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갑자기 그 아이에게, 내가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것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말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를 기억하겠다는 내 마음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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