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울면 가슴부터 미어졌다. 혼자 우는 눈물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가끔 무방비가 되어 버린다.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 우는지가 중요했다. 나도 누군가 왜 우는지 물어봐줬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 P98

산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 여인도 내 눈에서 산 사람의 독기를 봤을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형제들은 가난은 대물림되는 거라 노래를 했지만 가난한 건 그들의 의식이었다. - P120

내가 당당하게 밥을 얻어먹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비겁한 나는 부자 친구가 사주는 밥은 주눅 든 얼굴로 얻어먹었다. 왜 가난한 자가 주는 밥은 양심의 가책도 없이 얻어먹었을까? 몇 배로 돌려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을까?
나는 돌려주지 못했다. 앞만 보는 직진형인 내게는 돌아볼 얼굴이 없었다. 이제 고개 돌려도 그녀는 없다. 동네 친구였던 그녀는 동네처럼 사라졌다. - P122

나는 내가 살아온 것이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술집 여자의 밥 한 공기 같은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고 살았다. 내가 사람의 직업이나 계층을 보지 않고 인간성을 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 P128

연애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햇빛이 있는 강변이나 숲 속에서 광합성을 하고 싶었다. 베개처럼 편한 남자의 팔이나 배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누워서 책을 읽고 싶었다. 햇빛은 나뭇잎에 어른거리고 바람이 내 볼을 만지고 지나가는 꿈 말이다. 이룰 수 없으니 판타지인 것이다. - P132

소녀가 된 쪼깐이는 어느 날 닭장에서 훔친 계란 몇 알을 들고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면서기에게 ‘풍양 조씨, 쪼깐입니다.‘ 공손하게 말하고 계란을 올려놨다. 꼬마 같은 소녀가 나이배기라는 것에 놀라고 영민함에 놀라고, 면서기는 여러 번 놀랐다. 한문의 뜻을 물어 흡족한 이름을 지었으니 ‘조조간‘이었다. 이를 조에 가릴 간이었으니 팔삭둥이에 어울렸다. 할머니는 ‘남들보다 일찍 사물을 가렸다‘는 영재로 자가 해석했는데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도 쪼깐이는 쪼깐이였다. 혼인하는 날 쪼깐이를 처음 본 할아버지는 신부의 행방을 물었다고 한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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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는 날은 힘들었다. 같이 나동그라져 누워 있기도 했다. 추수가 끝난 벌판도 하얗고 먼 산도 하얗고 하얀데 길은 멀었다. 아버지는 가끔 정신이 들면 물었다.
"힘들지?"
나는 대답했다.
"아니."
아버지가 빚쟁이들에게 멱살을 잡히는 것을 본 후로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 P83

내 업무는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는 일이었다. 가끔 학술 자료가 필요하면 미리 전화를 하고 학교로 찾아갔다. 친구가 강사로 있는 대학에 자료를 구하러 갔다가 남자를 만났다. 남자가 웃으면 같이 웃고 싶어졌다. 그와 휴일에 만나서 북한강을 보러 갔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강물을 보면서 웃었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커다란 느티나무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팔랑이며 우우 노래를 불렀다. 그가 휘파람을 불자 바람이 강 위로 달아났다.
[…]
피로연에서 술을 마셨는데 얼굴만 창백해졌다. 그의 말이 기억났다.
‘꿈이 뭡니까?‘
신랑 신부가 여행을 떠나고 2차 피로연에서 처음으로 혀가 꼬였다. 친구들이 술주정을 하는 내가 귀엽다고 웃어댔다.
돌아오는 길에 술이 깼다. 소주를 사서 집으로 들고 갔다. 늦었지만 그의 질문에 혼자 대답했다.
‘내 꿈은 평범해지는 겁니다.‘
아버지의 꿈도 평범해지는 것이었다. 아버지처럼 길에 쓰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없어야 한다. - P84

오전 강의만 있는 날은 일찍 돌아와 가끔 그의 방에 들어갔다. 방문이 닫혀 있었지만 잠근 상태는 아니었다. 그의 책장에서 책을 집어 방으로 갖고 와서 읽었다. 연필로 밑줄 친 문장은 더 유심히 보았다.
‘진실을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선 진실에다가 반드시 거짓말을 덧대야 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이었다.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밑줄도 기억한다.
‘사랑해서 하는 결혼은 불행하다.‘
책을 다 읽고 그가 줄을 친 까닭을 이해했다. 좋은 사람이었다. 세상에 없는 그가 가끔 궁금했다. 경영학 전공이라는데 문학과 사상집이 많았다. 무엇을 꿈꾸었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타인의 사유가 거기 있었다. - P86

망설였던 책 몇 권이 또 생각나서 한밤중에 그의 방으로 갔다. 낮에 보았던 방과 어딘지 달랐다. 까치발로 맨 위 책장의 책을 꺼내는데 책이 움직였다. 누군가의 손이 내가 책을 잡기 편하도록 밀어주고 있었다.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나는 흐느껴 울면서 책을 집어들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 P87

베토벤은 수녀원의 사택에서 나를 기다렸고 봄날의 버스 안에서 흐르던 나훈아의 노래는 담요처럼 따뜻했다. 파블로 카잘스는 술 취한 내 가슴에 구멍을 뚫었고 피아졸라는 한때 내게 있었던 남자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꼬집힌 풋사랑‘은 주정뱅이 아버지였지만, 그리웠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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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화파의 그림들과 마주친 때가 그런 버릇이 들기 시작하던 때였다. 처음에는 그 그림들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 그림들에서 흔히 보이는 대칭적인 구도와 노골적인 시선이 무례하고 적대적으로 느껴졌다. 그 그림들은 내가 당시에 관심을 두었던 다른 그림들, 예컨대 벨라스케스, 마네, 티치아노, 세잔, 카날레토의 그림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낯설었다. 그 시에나파 그림들은 기독교적 관례와 상징이라는 은둔 세계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 그림들이 기쁨을 주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의 의향을 거스르다시피 하면서 계속 그 그림들을 보러 갔다. 잠깐 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그 그림들을 보면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그리고 해석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잔틴도 아니고 르네상스도 아닌 그 그림들은 오케스트라가 악기를 조율하는 휴식 시간처럼 악장과 악장 사이의 파격으로서 홀로 서 있었다. - P13

내가 예약한 숙소는 오래된 팔라초의 일부였다.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천장과 완벽하게 균형 잡힌 방들이 있는 팔라초였다. 수수한 건물 외관 덕분에 내밀한 공간의 아름다움이 한층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후로 지내면서, 또 그 집을 나설 때마다, 심지어 뒤돌아보지 않고서도 그 건물의 절제된 외관을 의식할 때가 많았다. 그 모습은 온갖 비밀을 다 털어놓고 싶어질 만큼 듬직한 동지 같았다. 그 장소로 인해 새로 만나는 건물이 새로 만나는 사람처럼 그때껏 우리 안에서 잠자고 있던 열정을 일깨울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우리는 건물이 일으키는 그런 변화를 대체로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그런 변화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많은 경우 상호적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듯이, 방의 정취도 우리가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표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사라지지만, 아주 작은 그림자 같은 파편이 남는다. 그러지 않고서야,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아름답고 고운 것에 쏟아진 관심을 오래 담았던 방에서 고요하게 고양되는 일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숙소로 돌아갈 때마다 내 마음은 기대로 부풀었다. 시에나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시에나 어디를 가든 마치 비밀스러운 노래처럼 그 방들이 주는 기쁨을 품고 다녔다. - P18

장식을 삼간 외부와 장려한 내부, 겉에서 보이는 침착한 초연함과 안에서 보이는 극진한 보살핌과 사려 깊음, 열렬한 심장을 감춘 겸손하고 또 절제하는 얼굴의 장난이 시에나의 관습이자 그 도시가 즐겨 펼치는 마술이다. - P19

우리는 흔히 건축물을 인간의 삶이 형성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특정한 기능과 활동을 위한 장소로 생각한다. 시에나는 이에 저항한다. 띠처럼 이 도시를 둘러싼 방벽은 물리적 경계인 만큼이나 정신적 베일이기도 하다. 방벽은 그 자리에서 침략군을 막는 동시에 시에나의 자기감을 지킨다. 여기서 독립은 그저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자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요청이자 자기 본성에 맞게 존재할 권리와 정신의 주권에 결부된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이다. - P20

그 도시에서 보낸 첫날에 다이애나와 나는 시작도 끝도 정해져 있지 않은, 그런 흔치 않은 대화를 나눴다. 시에나라는 도시 자체가 조장하는 듯한 셀 수 없이 잦은 모퉁이 돌기와 온갖 방해를 겪어 가며 대화는 이어졌다. 시에나가 말은 없어도 적극적인 제삼자인 양 우리 대화를 지휘했다. 그게 대도시의 주요 기능이지 하고 생각 했던 기억이 난다. 대도시가 있는 이유는 얼마간은 우리가 서로 더 잘 이해하고 또 더 잘 이해되도록 만드는 데 있으니까.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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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성은 고대부터 화롯불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민요를 부르고 시를 엮어왔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속삭임으로 전승 되어온 이야기의 우주를 내게 펼쳐 보여주셨다. 그리고 이는 우연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여성들은 밤에 이야기의 기억을 풀어내는 일을 맡아왔다. 그녀들은 이야기의 직조자였다.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물레를 돌리며 이야기의 실을 감았다. 그녀들은 그물망을 쳐서 세계를 불든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은 기쁨, 환상, 고뇌, 공포, 내밀한 믿음을 엮어나갔다. 그녀들은 단조로운 세계에 색깔을 입혔다. 그녀들은 동사와 털실을, 형용사와 실크를 얽어 짰다. 그래서 텍스트(text) 와 직물(textile)은 수많은 단어를 공유한다. 우리는 줄거리의 씨실과 날실을 엮고, 논쟁의 매듭을 짓고, 서사의 갈등을 풀어내며, 연설을 미려한 말들로 수놓는다. 그렇기에 고대 신화가 페넬로페의 천, 나우시카의 튜닉, 아라크네의 자수, 아리아드네의 실, 모에라이가 관장하는 목숨의 실, 셰에라자드의 마법의 양탄자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주는 것이다. - P490

인종, 피부색, 출신지가 아닌 무엇으로 스코틀랜드, 갈리아, 히스파니아, 시리아, 카파도키아, 모리타니 주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을까? 방대한 확장을 통해 로마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열망을 공유하고, 하나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건 언어, 사상, 신화, 책이라는 날실이었다. - P495

스티븐 그린블랙(Stephen Greenblatt)이 지적하듯, 고대 세계에는 문화의 핵심이 책의 무한한 생산이던 시절(아주 긴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그 많은 책을 어디에 뒀을까? 어떤 방식으로 선반에 정리했을까? 그 방대한 지식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이런 환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그 풍요로움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책은 점진적으로 대량 멸종을 맞이했다. 끝나버렸다. 그리하여 안정적으로 보이던 것은 깨지기 쉬웠음이, 영원하다고 믿었던 것은 일시적이었음이 드러났다. - P496

새로운 시대가, 우리를 정의하던 사상들이 심연의 벼랑 끝에 몰린 수백 년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의 횃불과 책을 좀먹는 벌레들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의 꿈은 다시금 위험에 처했다. 인쇄기가 발명 될 때까지 수천 년에 걸친 지식을 보존하던 극소수의 사람들은 영웅적이면서도 거의 불가능한 구조 작업에 착수했다. 모든 것이 파멸되지 않은 이유, 그리스인과 로마인의 사상과 과학적 업적과 상상력과 법률이 살아 있는 이유는 수 세기에 걸친 탐색과 실험 끝에 얻은 책이라는 단순한 완벽함 덕분이었다. 책 덕분에, 그리고 어둠 속의 여행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역사는, 스페인의 철학자 마리아 삼브라노(Maria Zambrano)가 지적하듯, 언제나 재탄생을 위한 길을 지니고 있었다. - P498

책의 발명은 파괴에 저항한 우리의 끈질긴 투쟁에서 가장 큰 승리일 것이다. 우리는 잃지 않고 싶은 지혜를 갈대, 가죽, 천, 나무, 빛에 맡겼다. 그것들의 도움으로 인류는 발전과 진보라는 경이로운 역사를 경험했다. 우리의 신화와 지식이 담긴 책은 세계 각지에서 수 세기에 걸쳐 이어진 여러 세대의 독자를 통합하여 협력의 가능성을 배가한다.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rg)는 「책벌레 멘델」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은 우리의 숨결을 초월하여 인간을 하나로 묶어내고 무상과 망각에 맞서 우리를 지켜내기 위해 존재한다." - P503

수 세기 동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언어와 지식을 잊어버렸듯이, 이 모든 발견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독일어로 작품활동을 한 영국 작가 엘리아스 카네티 (Elias Canetti)는 이렇게 답했다. "한 시대가 이전 시대와 단절되고 세기가 탯줄을 끊어버린다면 우리는 미래가 없는 우화밖에 만들지 못할 것이다. 질식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 P504

유럽의 토대를 마련한 문명들의 특징이 창의성, 화려함, 폭력, 분노의 이상한 조합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불안은 거의 후기 근대성의 공리이다. 유럽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해 중 하나였던 1940년, 점령당한 프랑스에서 탈주한 발터 베냐민은 이렇게 썼다. "문화에 대한 기록은 동시에 모두 야만에 대한 기록이다." 이성의 영역에서 야만이 지속되고 계몽이 악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뼈아픈 증거에 직면한 슈테판 츠바이크는 1942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P505

우리는 누구든 불완전한 선조 를 정당하게 비난할 수 있고, 또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모순과 둔감함을 진단하게 될 후손의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문학을 흑백 잣대로 단순화하려는 충동을 물리친다면 문학을 훨씬 잘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통찰력을 키울수록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잘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자 여행가인 페르난도 산마르틴(Fernando Sanmartin)은 이렇게 썼다. "과거는 우리를 정의하고, 우리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우리를 정신분석이나 위장으로, 마약이나 신비주의로 이끌기도 한다. 독자인 우리에게 과거는 책 속에 있다. 좋건 나쁘건 말이다. 우리가 읽는 옛 책들은 오늘날에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열정이나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페이지를 마주하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은 언제나 하나의 메시지이다." - P506

책은 끔찍한 사건을 정당화하기도 했지만, 과거에 인류가 건설한 최고의 이야기, 상징, 지식, 발명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일리아스』를 읽으며 우리는 한 노인과 그의 아들을 살해한 살인자 사이의 가슴 아픈 화해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다. 사포의 시에서 우리는 욕망이 저항의 한 형태임을 발견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우리는 타자의 관점을 배우게 되고, 『안티고네』에서 우리는 국제법의 존재를 엿본다. 『트로이아 여인들』에서 우리는 우리가 지닌 야만성에 직면하며, 호라티우스의 글에서 우리는 "감히 알려고 하라."라는 문장을 만난다.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에서 우리는 쾌락을 엿보고, 타키투스의 책을 통해 우리는 독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며, 세네카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최초의 평화주의자의 외침을 듣는다. 책은 우리에게 시들지 않는 선례를 물려주었다. 인간의 평등, 지도자 선택의 가능성, 아이들에게 노동보다 교육이 낫다는 직감, 병자와 약자와 노인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 등, 이 모든 발명은 고대의 발견, 즉 불확실한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고전을 통해 가능했다. 책이 없었다면 우리 세계의 가장 좋은 것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 P506

그렇다면, 이야기란 무엇인가? 그건 말의 연속체이다. 폐를 떠나 후두를 통과하는 공기의 흐름이 성대에서 진동하고 혀가 입천장, 치아, 입술을 어루만지며 최종적인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깨지기 쉬운 것을 구해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인류는 글과 책을 발명함으로써 절대적 파괴에 맞섰다. 그 발견 덕분에 타인과 만날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이 생성됐고 사상의 기대 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책에 대한 사랑은 신비롭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서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슬을 만들어냈으며, 세월을 따라 훌륭한 이야기와 꿈과 사유의 보물을 구해냈다. - P511

이 글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음유시인, 발명가, 필사가, 도안가, 사서, 번역가, 서점 운영자, 노점상, 선생, 현자, 스파이, 반역자, 여행자, 수녀, 노예, 모험가, 인쇄업자가 만들어낸 놀라운 집단적 모험이자 신비로운 충성심으로 단결한 그들의 가려진 열정이다. 사교 클럽에서, 집에서, 요란한 바다에 인접한 산봉우리에서, 에너지가 집중된 도시에서, 혼돈의 시기에 지식의 피난처가 된 외딴 지역에서 책을 읽는 독자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 잊힌 사람들. 익명의 사람들. 그들 모두가 우리를 위해 그리고 미래를 살아 갈 사람들을 위해 투쟁했다. - P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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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의 용도는 밭이었는데 몇 년간 묵어서 거의 잡초밭이었다. 우리는 잡초를 제거하기 시작했고, 5분도 안 되어 저질 체력의 남자가 나무 아래에 앉았다. 나는 낫의 날 방향에 따른 작업의 효율성을 생각하며 일을 했다. 무뎌지는 기미가 보이면 다른 낫으로 교체해서 다시 일했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옆 밭의 할머니가 남자에게 다가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저런 일꾼은 어디서 구했디야? 나도 좀 빌려줘!!" - P18

「닳아지는 살들」이나 「오발탄」, 최인훈의 「웃음소리」 는 청각 소설이었다. 책을 읽고 혼자 해가 지는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 귀에서 소리가 들렸다. ‘가자!‘ 절규이거나 살아 끝날 것 같지 않은 규칙적인 굉음이었다. 그때 나는 인생을 선빵당한 느낌이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누군가에게 ‘사랑해‘ 선빵을 날리고 싶어졌다. 햇살이 삶에 지친 그림자를 끌며 지나가지 않는가! 맞고 기절하든지 말든지. - P21

12살 여자아이의 공장은 밤 11시도 불사하는 가혹한 곳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도 없이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는데 사는 게 억울했다. 그때 내가 처마 밑에서 억울함으로 떠올렸던 생각이 나중에 보니 엥겔스 의대정부 질문에 있던 내용들이었다.
‘노동할 수 있는 최소 연령은 몇 세부터인가!‘ - P23

기억이 다시 꼬이기 시작한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겠다.
바람이 소슬해졌다. 집에 가면 오늘 읽은 소설의 독후감을 써야겠다. 기억이 나의 뺨을 때리기 전에. - P28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해서 자식을 키운 것이 아니었다. 혼자 자식들을 키우다 보니 강해진 것이었다. - P31

나의 엄마는 혼자 생계를 짊어지고 모진 세상을 억세게 살았다. 그녀의 해방구는 욕설이었는데 노점상을 하거나 보따리 장사를 할 때도 손님과 싸움이 붙으면 거나한 욕설로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했다. 욕설의 내용을 보면 우선 상대방의 집안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이를테면 조상을 쌍놈이나 후레자식으로 만들어 가문에 먹칠을 했다. 그다음 인체의 신비를 이용해 구석구석 세심하게 기운을 뺐다. 쌔가 만발하고 눈까리가 썩어 문드러지며 대가리를 절구에 빻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 동반자살을 노래하는 것이었는데 ‘오늘 너 죽고 나 죽자‘였다. - P49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은 내 영구 머리를 어루만지며 최면을 걸었다. 너는 이 나라를 짊어질 인재로 우리나라를 쌍놈의 나라로 만들면 안 된다는 요지였다. 방언 터지듯 입에서 나오는 욕설과 달리 나는 아름다운 문장을 좋아했다. 『빨강머리 앤』 끝줄의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세상은 평화롭도다.‘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독후감을 썼는데 읽어본 선생님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돌아온 탕아‘ 보듯 반색했고 ‘수렁에서 건진 내 딸‘ 보듯 예뻐했다. - P51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여자아이들에게 B군이 "야, 이 미친년들아!"를 시전한 것이다. 나는 그날 햄버거를 뜯어먹는 B군에게 왜 욕을 하면 안 되는지 눈물로 설명을 했다. 그날 B군이 내게 한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욕을 하면 엄마가 슬프구나. 근데 할머니는 내가 욕을 하면 막 웃거든!" - P52

성장한 아들들과 독서토론을 할 때 각자의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내가 튀어나온다.
"싸가지 없는 새꺄!" - P52

"공부의 목적은 인격의 함양이지. 암, 그렇고말고! 다음에 잘하면 되지."
그렇게 말하고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악을 썼다. - P60

나는 병원에서 시어머니를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고부가 아닌 같은 여자로서 느끼는 슬픔이었다. 왜 성년인 자식의 인생까지 간여하고 걱정을 하십니까. - P64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돈을 벌지만 살림을 남에게 맡겼고, 아들을 존경하는 기색도 없이 혼자 책을 보았다. 게다가 각방을 쓰며 해외 출장이다 뭐다 하며 집을 자주 비웠다. 음식을 해서 시누이에게 갖다 바치지도 않았다. 친정 식구들이 자주 들락거리며 재산을 빼돌리는 것 같았는데, 그녀는 내가 축적한 재산을 당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분통을 터트렸다. 어느 날 내가 말했다.
"아들을 데려가셔도 좋아요."
그녀의 표정이 생각난다. 억울하고 분하고 황당한 얼굴이었다. 여자가 시집을 오면 그 집안의 노예인데, 노예가 노예인 줄 모르니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세상을 뜨기 전 병원에서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작은애야, 내 아들을 잘 부탁한다."
오십이 넘은 아들의 무엇을 부탁한다는 것이었을까.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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