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와 함께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시간에 관해 내 생각을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P174
하밀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시인들이라고 했었는데, 나는 그가 나를 빅토르라고 불렀던 것이 갑자기 떠올라 웃음이 났다. 어쩌면 신이 할아버지를 통해 시인이 되라는 계시를 내게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상 속에서 힘차게 날아오르는 희고 붉은 새들을 보았다. 새들의 발에는 내가 함께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끈이 달려 있었다. - P179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P252
내 말을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 유태인 노인네의 눈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 눈은 하밀 할아버지가 "이건 최고로 아름다운 양탄자란다"라고 말하던 양탄자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하밀 할아버지는 아름다운 양탄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으며, 알라신도 양탄자 위에 앉아 있었다고 믿었다. 내 생각에는, 알라신이 속임수 더미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지만. - P254
"로자 아줌마, 왜 내게 거짓말을 했어요?" 그녀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했다구?" "열네 살인데, 왜 열 살이라고 하셨냐구요."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로 그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나는 덥석 그녀를 끌어안았다.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한 팔로는 마치 내 아내인 양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 P256
"이제 모두 다 지겨워요. 로자 아줌마만 빼고요. 아줌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이에요. 의사들을 즐겁게 해 주자고 아줌마를 식물처럼 살게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게 할 생각은 없어요. 내가 불쌍한 사람들 얘기를 쓸 때는 누굴 죽이지 않고도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다 쓸 거예요. 그건 누굴 죽이는 것과 같은 힘이 있대요. 선생님이 인정머리 없는 늙은 유태인이 아니고 심장이 제자리에 붙어 있는 진짜 유태인이라면, 좋은 일 한번 해주세요.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주세요. 생이란 것은 아줌마를 엉덩이로 걷어차버렸어요. 그놈의 알지도 못하는 하느님 아버지란 작자 때문이에요. 그 작자는 어찌나 잘 숨어 있는지 낯짝도 안 보여요. 그 낯짝을 재현시키는 것조차도 안 된대요. 붙잡히지 않으려고 마피아들을 풀어서 막잖아요. ······로자 아줌마를 도와주지 않는 더럽고 멍청한 의사들은 비난받아야 해요. 그건 범죄라구요······." - P264
"모모야, 너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어. 넌 어른이 되어서도 딴 사람들과는 다를 거야. 나는 언제나 그걸 알고 있었다." "고마워요. 카츠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이야.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다. 너는 언젠가 특별한 사람이 될거야."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내 아버지가 정신병자였기 때문일 거예요." 카츠 선생님은 환자처럼 보일 정도로 안색이 안 좋아졌다. "그렇지 않아,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넌 너무 어려서 이해를 못 하겠지만······." "선생님,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 - P267
"아, 그래. 너는 아주 영리하고 예민한 아이야. 너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해야겠지. 종종 로자 부인에게 말했지만, 너는 정말 남다른 사람이 될 거다. 훌륭한 시인이나 작가나, 아니면······." 그는 또 한숨이었다. "반항아가 되거나······ 하지만 안심해라. 네가 정상이 아니라는 말은 결코 아니니까." "나는 절대로 정상은 안 될 거예요, 선생님. 정상이라는 작자들은 모두 비열한 놈들뿐인걸요." "정상인을 말하는 거다." "나는 정상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예요, 선생님······." - P268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 P275
"난 너무 추한 꼴이 되었구나, 모모야." 나는 화가 났다. 늙고 병든 여자에게 나쁘게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니까. 하나의 자로 모든 것을 잴 수는 없지 않은가. 하마나 거북이 다른 모든 것들과 다르듯이 말이다.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슬퍼서 우는 건지 근육이 풀려서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P276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 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은 셈이니까. 더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구역질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 P295
"나는요, 자연의 법칙 따위에 얽매이지 않아요. 롤라 아줌마."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자연의 법칙 같은 것은 개나 물어가라고 해요.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어요. 구역질나는 그 따위 것은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요."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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