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맹세해라, 모모야." "맹세해요." "카이렘?" 우리끼리 맹세한다는 뜻이었다. "카이렘." 그리고 나서 아줌마는 마치 아주 먼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는 듯 내 머리 위로 시선을 던진 채 중얼거렸다. "모모야, 그곳은 내 유태인 피난처야." "알았어요." "이해하겠니?" "아뇨.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런 일엔 익숙해졌으니까."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 P69
나는 종종 카츠 선생님의 병원 대기실에 가서 앉아 있곤 했다. 로자 아줌마가 그 의사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늘 말했기 때문인데, 정말로 내가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거기에 충분히 오랫동안 앉아 있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항상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니까 때를 잘 맞춰서 지켜보아야 한다. 기적이란 없다. - P70
대기실에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좋았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카츠 선생님이 나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기분이 좋아졌다. 의학은 바로 이런 때 소용 있는 것이다. - P71
건강한 아이의 경우에도 위험은 있었다. 법적인 출생서류가 없이는 누군지도 모르는 부모에게 아이를 다시 데려가라고 강요할 수가 없으니까. 자식을 버리는 엄마들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인간이다. 로자 아줌마는 동물세계의 법이 인간세상의 법보다 낫다고 말하곤 했다. 인간세상에서는 아이를 입양하는 문제도 쉽지 않다. 입양된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친엄마가 아이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나서면 아이를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땐 위조서류가 최고다. 만약 자기 아이가 남의 집에서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이 년쯤 뒤에 그 사실을 알고 나타나서 아이를 찾아가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파렴치한 엄마가 있다면, 위조서류를 내보이며 쫓아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친엄마는 절대로 아이를 되찾지 못하고 오히려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 P73
로자 아줌마는 꿈이 오래되면 악몽으로 변한다고 했다. - P75
내 친구 르 마우트 역시 창녀의 자식이었는데, 그애는 늘 우리 같은 아이들에게는 비밀이 많은 게 어울린다고 말하곤 했다. 법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일을 잘 처리하는 여자라도, 어쩌다 사고로 아이를 낳게 되어서 그 아이를 기르려고 하면 당국의 조사를 받을 위험이 항상 있는데, 그건 정말 최악이라는 것이다. 일단 걸리면 가차없이 아이를 빼앗긴다고 했다. 이런 경우, 표적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항상 엄마 들인데, 아버지들은 여러 가지 법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이라나.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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